음모론은 늘 사람의 눈길을 끈다. 그 안에는 놀랍고 흥미로운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그 음모론에 펼쳐져 있어 감염병 바이러스만큼 확산 속도가 빠르다. 음모론은 유명인의 죽음이나 초과학적 현상에서 대유행 감염병의 병원체 기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대표적 음모론은 존 에프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히틀러의 죽음 등과 같이 세계적인 저명 정치지도자의 극적 죽음이나 외계인의 지구인 유괴, 로즈웰 UFO 추락 사건처럼 초과학적인 현상, 미국 우주인 달 착륙, 그리고 에이즈, 사스 등과 같은 세기의 감염병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런 음모론은 인간의 확증편향, 인지부조화, 편집증과 같은 숙주에 기생해 사람들의 뇌 인식 디엔에이(DNA)를 감염시킨다.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중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면서 이 바이러스의 진원지, 즉 기원과 관련한 음모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일부 전문가와 매스미디어 등은 이 바이러스가 중국의 생물무기 개발과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을 그럴듯한 일부 사실과 전문가를 등장시켜 퍼트리고 있다.
래리 로마노프(Larry Romanoff)도 음모론을 퍼트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저술가이자 은퇴한 경영 컨설턴트 겸 사업가인 그는 상하이 푸단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다. 그는 캐나다 글로벌리서치센터에 기고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의문 : 자연발생이냐? 조작된 사건이냐?'란 제목의 글에서 사스바이러스가 실수로 실험실에서 유출된 중국의 생물무기라는 미국 ABC방송을 소개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박쥐 등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생물무기일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두고 또 다른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유튜버 조던 세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의 '비밀 생물 무기 프로그램'의 일부였으며 우한의 바이러스학연구소에서 유출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빈약했다. 전직 이스라엘 군사 정보 요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생물학 무기가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최소 수백만 명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생물무기와는 결이 약간 다른 음모론도 제기됐다. 영국의 퍼브라이트(Pirbright)연구소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활용해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백신을 개발해 왔는데 이에 대한 특허 문건을 2015년 제출했고, 이 백신 개발에 돈을 기부한 미국의 빌 게이츠 재단한테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 이번에 중국에서 창궐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제조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음모론, 특히 신종 바이러스 등 병원체는 생물무기 개발이나 생명공학 기술 개발과 관련돼 등장한 것이라는 주장은 치명적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제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이즈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 지카바이러스, 사스코로나바이러스의 유래와 관련한 음모론이다.
에이즈 음모론은 다양한 갈래로 전개됐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당시 생물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에이즈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일본의 한 언론인이 자신의 저서 <계획된 공포>에서 제기했다. 그는 1969년 캘리포니아와 매사추세츠의 연구소에서 실험용 원숭이가 사람의 에이즈와 비슷한 증상의 괴질로 거의 동시에 사망한 사건을 그 근거로 꼽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생물학전에 사용하려는 병원체는 적군에게만 치명타를 가하고 아군에게는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아군에게 치료제 내지는 예방백신이 있어야 한다. 에이즈는 일종의 성병이다. 따라서 에이즈바이러스를 생물무기로 사용하려 했다는 주장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에이즈바이러스 생물무기 기원설의 진원지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1985년 10월 소련의 한 문학주간지를 통해 인도 뉴델리에서 발행하는 일간지 <패트리어트>가 "에이즈를 퍼트린 장본인은 미국 워싱턴 근교의 유전공학연구소로 모르모트 대신에 미군을 인체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보도를 했다며 이를 인용보도하는 방법으로 생물무기설을 퍼트렸다.
에이즈바이러스를 1970년대 들어 본격화한 유전공학의 산물로 돌리는 음모론도 있었다. 또 특정지역의 인종을 몰살시키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이 만들어냈다는 주장도 나왔다.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질병 자체가 아님에도 치료제를 팔아먹기 위해 다국적 제약기업이 가짜로 만들어낸 감염병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책도 발행돼 한국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에이즈바이러스의 출현을 백신 개발과 연관 짓는 음모론도 있었다. 유엔 직원으로 일했고 영국 BBC방송의 아프리카 특파원을 지낸 에드워드 후퍼는 그의 저서 <강: HIV와 에이즈의 기원을 찾아서 (The River: A Journey to the Source of HIV and AIDS)>에서 학자들이 침팬지에서 발견되는 SIV(Simian Immunodeficiency Virus, 유인원 면역결핍 바이러스)를 변형해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 위스타연구소의 폴란드 출신 바이러스학 박사 힐러리 코프로브스키(Hilary Koprowski)가 SIV에 감염된 침팬지의 조직으로 만든 경구 소아마비 백신을 벨기에 연구소 2곳을 통해 1957년부터 1960년까지 벨기에령 콩고지역 주민 약 1백만 명에게 나누어주어 에이즈가 시작되었으며 이 지역이 에이즈 초기 발병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 타보 음베키는 에이즈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즉 HIV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만성적 질병, 영양실조 등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비논리적인 음모론을 주장했다. 남아공은 이런 음모론에 깊이 빠져 에이즈에 걸린 자국민에게 치료제를 공급하지 않고 예방에도 소홀히 하다 많은 국민이 에이즈에 걸려 목숨을 잃자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두 차례나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만든 에볼라도 음모론을 비켜가지 못했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매우 강하고 치사율도 아주 높아 생물무기로서 눈길을 끄는 특성을 지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에볼라바이러스를 생물안전 수준 4등급 병원체 및 카테고리 A 생물테러 병원체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사람 몸 밖 일반 환경에서 빠르게 사멸돼 대량살상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국 BBC는 미국과 적대관계를 보이던 북한이 2015년 국영언론을 통해 에볼라바이러스가 미군에 의해 생물학적 무기로 만들어졌다는 보도를 했다고 방송했다. 북한은 미국 등에 의해 생물무기를 대량 생산·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낙인이 찍혀왔다. 에볼라바이러스의 미국 생물무기설은 이런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음모론적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스릴러물과 냉전과 냉전 이후 세계를 다룬 첩보 및 군사 소설가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의 톰 클랜시는 1996년 <행정 명령>이라는 소설에서 '에볼라 마잉가(Ebola mayinga)'라는 이름의 치명적인 에볼라바이러스 균주를 사용하여 미국에 대한 공격을 하는 아랍인 테러리스트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은 에볼라 관련 인기 책들에 담긴 잘못된 정보가 외려 질병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비판했다.
사스와 관련한 음모론도 다양하게 나왔다. 최초의 음모론은 러시아 과학자가 제기했다. 러시아의학아카데미의 세르게이 콜레스니코프(Sergei Kolesnikov)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가 홍역과 유행성이하선염바이러스의 합성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두 바이러스의 조합은 자연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냈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스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이고, 홍역과 볼거리는 파라믹소바이러스이다. 이 두 유형의 바이러스는 그 구조와 인체 감염 방법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두 개의 파라믹소바이러스로부터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콜레스니코프 등의 주장을 접한 많은 중국인들은 당시 인터넷 토론 게시판과 대화방에서 논쟁을 벌였다. 이때 중국인들은 사스바이러스가 미국이 제조한 생물학적 무기일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스 바이러스의 원천, 즉 진원지를 찾아냄으로써 생물무기설은 쑥 들어갔다. 사스 환자가 처음 발견된 중국 광둥성에서 중국인들이 종종 죽이고 먹기까지 하는 아시아야자사향 고양이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고양이에게서 사람이 전염됐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왔다.
사스바이러스의 미국 개발 생물무기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스가 중국 본토, 홍콩, 대만 및 싱가포르 등 대부분의 중화권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 반면 미국, 유럽 및 일본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매우 약하다. 거의 모든 유행병은 최초 진원지를 중심으로 펴져나가기 때문에 진원지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지금 겪고 있는 신종 코로나 유행에서도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완전히 밝혀졌다. 염기서열 어디에서도 유전공학의 산물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지만 이것은 유전자 조작의 결과가 아니라 동물 간 전파되면서 돌연변이가 되었거나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의 박쥐에서 사스코로나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한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이 박쥐가 사스바이러스의 자연 저장소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 사스바이러스 생물무기설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종 코로나 창궐을 계기로 다시 불거진 바이러스 생물무기 음모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과 새로운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불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과학적 근거가 매우 중요한데 거의 모든 신종 감염병 병원체를 둘러싼 음모론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분야 전문가의 눈에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에이즈바이러스를 베트남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미국이 만든 생물무기라는 음모론은 이미 최초 에이즈 환자가 1959년에 있었다는 과학적 연구조사 결과로 미루어 거짓임이 드러난 바 있다.
감염병 음모론은 이런 내용을 담은 허구의 감염병 재난 소재 소설이나 영화와 맞물려 증폭된다. 다시 말해 음모론 소설과 영화를 접한 일반시민들은 감염병 음모론을 누가 주장하면 그것에 쉽게 감염되어 이를 믿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를 악용해 바이러스 전문가와 연구소, 생명공학 기술 등을 적당히 버무려 많은 사람들이 혹할 수 있는 맛깔난 메뉴로 내놓는다.
이는 다시 1인 미디어나 블로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공신력 있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화제성 기사 또는 단순보도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된다. 앞서 소개한 래리 로마노프의 글도 이런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가 동물에서 인간이 감염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을 은연중에 내비친 그의 주장을 우리나라에서도 (사)다른백년 등 일부 집단이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감염병 음모론은 치명적 감염병의 창궐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일반시민들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이른바 '희생양 찾기' 차원에서 등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에이즈의 경우 냉전 시절 소련이 미국을 공격하고 공산주의의 도덕성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미국 생물무기설을 지어내어 퍼트린 것이다.
중국의 은폐와 늑장 대응 때문에 사스가 2002~2003년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각국이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졌다. 중국 생물무기 음모론을 만들어 중국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세력이있을 수 있고 중국이 비난받자 거꾸로 미국 생물무기설을 주장한 중국인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늑장 대응과 사실 은폐 등 때문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 이 때문에 중국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국가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 상황에까지 먹구름이 드리워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강한 책임을 지우고 싶은 욕구가 세계 곳곳에서 분출할 수 있다.
과거 1960~80년대 신종 감염병이 창궐할 때는 당시 치열하게 생물무기 개발 경쟁을 벌였던 미국과 소련이 음모론의 대상 국가였다면 2000년대 들어 러시아를 제치고 미국과 대립하는 새로운 패권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 사스, 신종 코로나 창궐 진원지라는 사실을 근거로 음모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 특히 감염병 음모론은 시민들이 정부나 전문가를 믿지 못하는 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바이러스처럼 적당한 때가 되면 고개를 들고 나와 창궐할 것이다. 따라서 감염병 음모론을 잠재우는 것은 가짜 음모론 뉴스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과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투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포와 음모론 바이러스에는 첨단과학기술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조차 면역력이 없다. 그때마다 총력을 기울여 소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처법이다. 그리고 일부러 음모론을 만들어내어 퍼트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련 글이나 사이트를 삭제하거나 처벌하는 등 강력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와 언론도 이 점을 새겨 들어야 한다.
신종 코로나 음모론과 관련해 트위터가 취한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트위터는 지난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해 중국 전문가가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음모론적 주장을 펼친 금융·시장 전문 블로거인 '제로 헤지(Zero Hedge)'에 대해 트위터의 규정을 위반했다면서 트위터 계정을 영구 폐쇄했다. 제로 헤지는 개인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할 정도의 파워블로거이며 최근 신종 코로나와 관련한 글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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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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