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지역인재
대학이 지식기반의 도시 및 지역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고등교육을 통해 길러진 우수한 인재는 최첨단산업 분야에서 인적자본 형성의 기초가 되고, 대학에서 펼쳐지는 연구, 기술사업화, 창업 활동은 지역혁신의 핵심적 자원의 되며, 이러한 발전의 결과로 도시와 지역은 더 많은 인재와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나 보스턴의 루트128 지역이 대학과 지역발전 간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한 대표적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시카고, 클리블랜드, 볼티모어, 말뫼, 요코하마 등 쇠퇴를 경험한 구산업 도시에서도 대학 중심의 도시부흥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대학-도시 상생을 위한 산·학·연·관·민의 유기적 노력은 몇 해 전 포항공과대학교에서 발간한 <유니버+시티>에 상세히 소개되었고, 최근 국가균형위원회에서 발간한 <포용국가와 국가균형발전정책>에서도 지방대학이 포용 성장의 핵심 주체로 부각되었다. 두 연구는 공통적으로 지방대학이 수도권 중심의 국토 공간구조를 재편해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런 전망을 현실화하고자 한다면 지방대학 입장에서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인재 유치와 유출의 이분법적인 제로섬(zero-sum) 사고를 뛰어 넘지 못하고 인재의 이동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것은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지역인재에 대한 개방적 인식의 중요성을 경제지리학 문헌을 바탕으로 살피고, 이것이 우리나라 지방대학의 역할에 던져주는 하나의 시사점을 논하고자 한다.
인재와 도시 및 지역 발전 : 3Ts 이론을 중심으로
우선 도시경제지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꾸준히 주장해 온 '3Ts 이론'을 살펴보자. 이 이론은 도시 및 지역 발전에서 인재(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tolerance)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의이다. 미국의 탈산업 도시에 대한 면밀한 통계분석을 토대로 마련되었고 이론의 타당성은 캐나다와 유럽의 도시에서도 검증되었다.
제조업의 상대적 중요성이 약화되는 탈산업 사회에서 도시의 경제적 번영은 우수 인재, 즉 '창조계층' 유치를 통한 혁신의 창출과 기술의 발전에 좌우되고, 대학 졸업자, 전문직 종사자, 문화산업 인력 등을 포함한 창조계층 유치에서 관용성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자산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3Ts 이론의 핵심이다.
플로리다는 도시의 관용성을 인종/민족의 다양성과 동성연애자의 인구 비율로 측정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학계에서는 지역 간 경쟁을 부추기며 불균등 발전의 문제를 괄시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 정책을 양산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3Ts 이론이 인간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중시하고 문화적 자산을 도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파악하며,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도시 발전 정책의 '문화적 전환'을 이끄는데 커다란 기여한 것만은 사실이다.
창조 계층론의 유명세와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산업환경'의 조성을 중시했던 과거와는 달리 도시 어메니티(amenities)의 개선 등 '사람기후(people climate)'의 증진이 최근 도시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창조 계층론으로 도시 및 지역 발전에서 대학의 역할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대학의 역할은 '지식공장(knowledge factory)'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으로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면, 그것이 학습, 혁신, 사업화 등의 과정을 거쳐 도시경제의 번영을 이끄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지식확산(knowledge spillover)' 기능에 주목하며 기술사업화와 벤처기업 지원 등 창업 생태계에 조성에 힘쓴 담론이자 정책 전략인데, 선진국의 첨단기술산업 클러스터나 우리나라 대전의 대덕연구단지 발전의 경험을 보면 충분한 의미를 가진 논의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대학과 도시발전 간의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실리콘밸리처럼 전형으로 언급되는 대학-도시발전 관계는 극히 일부의 예외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며, 다양한 발전의 과정과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 문제가 전통적 지식공장 담론에 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론토 대학의 혁신정책 연구소(Innovation Lab)를 중심으로 창조 계층론을 접목해 대학의 역할을 재고찰하였는데, 핵심 주장은 대학이 다양한 인적 관계망의 연결 공간으로 작동할 때 도시발전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는 지역인재의 창출 및 유치, 해외 창조계층의 유입과 세계적 지식의 유통, 지역에서 공동체적 분위기의 조성, 토착 기업과의 일상적 학습 및 혁신 네트워크의 형성 등을 대학이 창출하여 도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개방적 '글로컬(glocal)' 관계망으로 강조한다.
인재의 유동성
논의의 밑바탕에는 지역인재를 '토착(rooted)계층'이 아니라 '유동(mobile)계층'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토착계층은 특정 지역 및 장소와 결속력이 강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반면, 유동계층은 자신의 역량과 야망에 최적화된 장소와 지역을 찾아 이동하는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고 두 계층 간에는 양립불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대체로 출신지보다 이동할 수 있는 역량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으며 잠재력이 크고 젊은 인재일수록 직업의 기회나 장소의 질을 찾아 이동하는 유동계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향성은 멀리서 사례를 찾지 않더라도, 주거비가 높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가 서울에서 지난 10년 간 30대 청년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으로 나타난 최근의 인구센서스 집계 결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재의 유동성은 지방대학과 인근 도시에 위해요소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지방대학이 우수 학생 유치와 유출 방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입시에서 수도권 대학에 밀리는 안타까운 지금의 현실에서 지방대학은 학생들의 역량 및 경쟁력 강화에 보다 많은 노력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지방대학에서 육성한 인재 유출의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역과 지방대학의 입장에서도 지역 인재에 대한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함양할 필요가 있다.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 찾을 수 있는 경제적 기회와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면, 지역 인재의 이동을 굳이 발전의 저해요소로 인식할 이유는 없다.
인간에게는 회귀본능과 '장소애(topophilia)'의 감정이 있고, 이런 것들 또한 인재 유치와 도시발전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지난 10~20년 간 대만, 중국, 인도는 최첨단산업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는데, 해외에서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인력들의 귀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제지리학자 애너리 섹서니언(AnnaLee Saxenian)이 그리스신화에서 차용해 '신원정단(New Argonaut)'으로 칭한 글로컬 '지역' 인재들이다. 그리고 기업가의 최초 창업의 장소에 대한 연구에서는 연고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고향이나 고등교육 수학의 장소에 대한 애착의 감정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역인재에 대한 개방적 사고
그래서 '지역' 인재에서 지역의 의미를 개방적인 방식으로 재정립하면 보다 밝고 긍정적인 지역과 지방대학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역 인재 유출을 우려하는 우리의 일상 담론에는 인재는 토착계층이 되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사고가 깔려있고, 여기에서는 지역의 폐쇄적 분위기를 조장하며 다른 장소에서 취할 수 있는 기회와 이익을 놓치게 할 위험성마저 존재한다.
이는 지역인재 개인의 입장에서도 불행한 일이지만, 도시와 지역의 차원에서도 인재가 신원정단의 일원이 되어 출신지로 가져올지도 모르는 학습과 경험의 이득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역으로 지역인재의 개념을 경계를 초월하여 활동하는 유동계층으로 재인식한다면, 지방대학을 통해 창출될 수 있는 다양한 효과와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타 지역이나 해외 출신 인재의 지역화 과정, 탈 지역화된 인재들과 맺어질 수 있는 혁신 네트워크, 지역 출신 인재들의 귀환 및 재이주 등을 통한 지식과 노하우의 전수 등도 지식기반의 도시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상당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래서 지역인재의 유출 자체보다 지역 간 인재의 순환 및 교류의 결핍이 더 우려스럽다. 지방대학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지역인재의 순환 고리를 창출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갖고 진행되었으면 한다. 지방대학이 도시-지역, 국가, 세계의 차원에서 인재 순환의 '스위치' 역할을 하며 불균형발전 문제 해결의 디딤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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