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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녹색 마을' 알고 보니, '로또' 마을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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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녹색 마을' 알고 보니, '로또' 마을이었네!

가구당 3억원 쏟아붓기…"에너지 자립, 주민 참여가 핵심"

#1. 독일 괴팅겐 인근에 위치한 윤데는 '에너지 자립 마을'의 모델로 꼽힌다. 이 마을 사람은 농사가 끝나고 들판에 버려진 각종 부산물과 가축 분뇨를 모아 메탄을 만들고, 그 메탄을 태워 열병합 발전을 한다. 주민이 조합을 결성해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는데, 생산된 전기는 전력 회사에 판매하고 열은 난방에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전기는 마을에서 사용하는 양의 2배. 정부가 발전 차액 지원 제도를 통해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구매하기 때문에 조합원은 출자한 만큼 돈을 벌게 된다.

#2. 오스트리아의 무레크는 인구 1700명이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에너지 자립도는 무려 170퍼센트에 이른다. 이 지역 농부는 유채와 폐식용유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공장, 가축의 분뇨를 이용한 열병합 발전소를 직접 운영한다. 이런 방식으로 마을의 일자리도 창출하고, 자신들이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서 에너지를 구입하고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석유 값이 폭등하더라도 이 마을 주민들은 그 어떤 걱정도 하지 않게 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두 '에너지 자립 마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마을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주민이라는 점이다. 주민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시민발전소를 세워 에너지 생산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은 물론 일자리도 창출했다. 이런 '유인'이 있었기 때문에 온실 가스 감축은 물론, 재생 에너지 산업도 덩달아 성장하게 된 것이다.

▲ 독일 괴팅겐 근처의 윤데마을. 인구가 750여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은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에너지 자립도가 200퍼센트에 이른다. ⓒ프레시안(이지윤)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 시대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9위의 탄소 배출국이자, 화석 연료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대부분을 충당하는 한국의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세계 각국이 화석 에너지 고갈에 따른 '에너지 안보 전쟁'을 앞 다퉈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최근 5년 동안 에너지 소비의 연평균 증가율(3.77퍼센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95퍼센트)의 무려 4배에 달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노력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독일 윤데와 같은 지역의 재생 가능 에너지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지난해 정부는 2020년까지 에너지 자립도를 40퍼센트 가까이 끌어올리는 '저탄소 녹색 마을'을 전국 600여 곳에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로 조성되는 저탄소 녹색 마을 정책의 한계가 정작 에너지 자립 마을을 조성한 지역 주민으로부터 제기된다. '주민 참여'가 빠진 에너지 자립 마을은 결국 '재생 가능 에너지 종합 전시장'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녹색연합과 도농상생연대 등 환경단체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토론회를 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었다.

'설비'만 있고 '주민'은 없는 정부의 '저탄소 녹색마을'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 마을에는 한마디로 '주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저 사업을 추진하는 동의서에 도장을 찍고,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설치하는데 마을 부지를 내주는 정도로" 주민의 역할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 정책위원은 "정부는 현재 저탄소 녹색 마을 시범 사업으로 4군데 지역을 선정해 2년 만에 사업을 끝내겠다고 하지만, 이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매우 짧은 시간"이라며 "독일 윤데 마을이 에너지 자립까지 걸린 시간은 총 7년이었는데, 그 시간의 대부분은 시설 건설이 아니라 주민의 참여와 재원 마련에 걸린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저탄소 녹색 마을 시범 사업지로 충청남도 공주시 월암 마을·전남 광주시 승촌마 을·전북 완주군 덕암 마을·경북 봉화군 서벽리 등을 선정해, 약 50~146억 원에 이르는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행정안전부·환경부·농림수산식품부·산림청 등이 각각 나눠 지원하고 있는 이 시범 사업은 가축 분뇨나 음식물 폐기물을 활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100퍼센트 가까이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사업의 규모 및 적정성에 문제가 제기된다. 예컨대 농식품부는 덕암 마을 49가구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146억 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쏟아 붓고 있는데, 이는 한 가구당 3억 원 가까이 지원하는 셈이 된다.

▲ 가축의 분뇨와 건초를 이용해 전기와 난방을 해결하는 윤데마을의 열병합 발전소. ⓒ프레시안(이지윤)
마을의 지리적·환경적 특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예산을 쏟아 부어 무분별하게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문제다. 덕암 마을만 보더라도, 태양광·소수력·풍력·지열·바이오가스 등 온갖 재생에너지원이 모두 들어가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은 157메가와트시인데, 이렇게 사업이 끝나면 1612메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과잉 투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유진 정책위원은 "정부는 돈을 쏟아 마을을 '재생 가능 에너지 종합 전시장'으로 만들고 있다"며 "앞으로 조성할 600개 저탄소 녹색 마을에 그만큼의 예산을 투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지금처럼 사업이 진행된다면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설 회사만 배불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책위원은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이 끝나고 결국 에너지 생산 시설이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에너지 자립 마을이 창출·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의 '윤데'로 불리며 주민들 스스로 에너지 자립 마을을 조성했던 부안 등룡리 마을의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장도 생각을 같이했다.

이 소장은 "독일·스웨덴·덴마크·오스트리아 등 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공한 에너지 자립 마을의 공통점은 '에너지 시설'이 주인공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라며 "부안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정작 주민의 참여와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쏟아진 이런 관심은 마을 자치에 오히려 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의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작된 녹색마을 '조성' 사업은, 결국 시설만 여러 개 만드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부안 등룡리의 시민발전소 모습. 에너지 자립 마을에 중요한 것은 '시설'이 아닌 '주민'이다. ⓒ프레시안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전기도 만드는 사람들

그렇다면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유진 정책위원은 발전 차액 지원 제도를 그 핵심으로 꼽았다. 외국의 주요 에너지 자립 마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혜택, 즉 발전 차액 지원 제도라는 '유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 제도의 효과는 가시적이다. 제주도 안덕면 화순리 주민들은 16억 원의 마을 재원을 투자해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공사에 1킬로와트시 당 677.38원에 판매한다. 이 마을 주민들은 10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그 이후부터 생산하는 전기의 수익은 마을 운영비로 사용한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1리 주민들 역시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300킬로와트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다. 이렇게 전기를 판매해 얻는 수익은 월 2400~3000만 원에 이른다. 이렇게 얻은 돈으로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상환하고, 나머지는 마을 일을 한 사람들에게 인건비로 지급한다. 자연스럽게 마을 일자리가 창출된 셈이다.

이유진 정책위원은 "어느 태양광 발전소가 화순리처럼 한 달에 두 번 전지판을 청소하겠느냐"며 "발전 차액 지원 제도는 주민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매력이 있어, 지역 에너지의 관점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멋진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서 "정부는 2011년까지만 이 제도를 유지할 방침이지만, 오히려 이 제도를 더 확대해 주민이 중심이 된 에너지협동조합이나 시민발전소를 활성화하는 것이 에너지 자립도 앞당기고,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진희 에너지정치센터 공동대표 역시 "중앙 정부의 지원으로 지역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춘다고 해도, 이들 설비를 지역 주민이 활용하지 않을 경우 지역 에너지 시스템 구축은 어려워진다"며 "에너지에 대한 지역의 자치는 시스템 구축의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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