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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이번엔 '상식밖 유신예찬론' 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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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이번엔 '상식밖 유신예찬론' 물의

"유신때 언론의 정부공격 가능" "국회기능 약화시켜 정치부패 척결"

<월간조선> 조갑제 대표 겸 편집장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시대(1972~1979)를 평가하는 과정에 당시 언론상황을 상당한 비판의 자유가 있었다고 왜곡하는 동시에, 국민의 선거권을 원천봉쇄한 유신헌법이 정치부패와 공무원부패를 크게 줄였다는 상식밖 궤변을 펼쳐 빈축을 자초하고 있다.

조 대표는 지난 2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띄운 '유신시대는 암흑기였나'라는 글을 통해 유신시대의 정치적 자유 및 언론 자유와 관련, "1972~79년 사이 정치적 자유와 언론자유가 억압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북한식의 전면적인 억압은 아니었다"며 "여전히 야당과 언론의 정부 공격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다만 대통령과 군대 및 정보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은 제약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의 이같은 주장은 1972~1974 '동아투위 사태'를 계기로 언론의 암흑기가 도래한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며 "대통령과 군대, 정보부를 제외한 정부에 대한 공격은 가능했다"는 궤변으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투위-조선투위 등의 반발은 물론 앞으로 언론계 안팎에서 커다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 대표는 또 대통령에 대한 선거권을 박탈하고 전체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정회 의원들로 채우며 1구2인 선출제로 사실상 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한 유신정권의 헌법유린 독재에 대해서도 "국민이 정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크게 제약되었으나 선거와 국회의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정치부패도 줄고 공무원의 부패도 이 기간에 크게 줄었다"고 주장하며 "박대통령은 정치코스트를 줄이고 행정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를 꾀했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의 이같은 주장은 박정희 유신독재 합리화를 위한 궤변의 극치로, 조 대표의 사고체제가 얼마나 '독재친향적인가'를 극명히 드러내준다 하겠다.

또한 조 대표의 이같은 논리대로라면 노무현정부 역시 박정희정권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 등에 대해 "북한식의 전면적 억압"이 아닌 수준에서라면 "대통령과 군대, 정보부에 대한 비판을 제약"해도 되며, "정치-공무원 부패 척결" 차원에서 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해도 된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기도 해, 조 대표의 자가당착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하겠다.

다음은 문제의 조대표 칼럼 전문이다.

***유신시대는 암흑기였나?**

요사이 집권세력이 6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친일문제, 30년 전으로 올라가 유신시대를 정쟁의 主題로 삼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가하다고 할까 한심하다고 할까, 어쨌든 먹고사는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세계 각국의 지도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태이다.

집권세력은 유신시대를 들추어내면 박정희도, 박근혜 대표도 코너로 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이들은 유신시대를 민주주의가 억압된 암흑의 시대라고 회칠하고자 하겠지만 유신시대를 민족사의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이었던 시기로 보는 사람들도 엄청 많다.

***정치-외교적인 면**

-1972~79년 사이 정치적 자유와 언론자유가 억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식의 전면적인 억압은 아니었다. 여전히 야당과 언론의 정부 공격은 가능했다. 다만 대통령과 군대 및 정보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은 제약을 받았다.

-대통령 선거가 간접선거로 바뀌고 국회의원 선거가 1구2인 선출제로 된 데다가 대통령이 국회의석수의 3분의 1을 지명하는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국민이 정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크게 제약되었다. 선거와 국회의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정치부패도 줄었다. 공무원의 부패도 이 기간에 크게 줄었다. 朴대통령은 정치코스트를 줄이고 행정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기간 대학생, 야당, 기독교,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이 거세졌다.

-韓美 관계가 악화되었다. 한국의 민주화와 코리아게이트 사건과 주한미군 철군계획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으로 박정희의 리더십이 국내외로 도전받았다.

***남북관계**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는 강화된 권력으로써 고도 경제성장을 성공시켰지만 김일성-김정일은 강화된 권력을 우상숭배에 집중함으로써 국력을 분산, 소진시켰다.

-1976년부터 군사비 지출에서도 남한이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남한에서도 자주국방력 건설을 위한 방위산업 체제가 구축되었다.

***경제 사회 부문**

-새마을 사업의 성공
-중화학공업 건설의 성공
-포철 건설의 성공
-중동 건설 시장으로 진출 성공
-오일 쇼크 극복
-종합상사 중심전략으로 수출의 획기적인 증가
-의료보험 제도의 도입
-거대한 중산층의 등장
-서울 올림픽 구상
-세계가 한국인의 활동공간으로 확대되다.

*결론: 유신시대 7년간 대한민국은 경공업 국가에서 중공업 국가로 바뀌었다. 이때 세운 공장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기반이고 이때 닦고 놓은 도로와 댐들이 국가의 근본이 되었다. 한국인은 해양화 전략에 편승하여 세계로 뻗어나가 민족의 활동공간을 넓혔다. 남북관계도 남한의 우세로 역전되었다. 유신시대의 민주화 운동과 새마을 운동은 모두가 한국인의 자랑이다. 집권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민주화 운동을 높이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죽이려든다면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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