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 과정에서 생긴 인권 침해를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 관련 공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송부한 데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인권위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청와대는 그러나 "저희는 저희 입장이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독립성 침해 비판을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으로, 논란이 수그러들기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저희에게 청원이 들어온 부분을 성실히 답변한 것"이라며 "가급적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은 답변하겠다는 원칙하에 저희가 (청원 유관기관인 인권위) 답변을 받아서 (청원 답변을 만들어서) 전달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국민 청원의 내용이 '인권위 조사'를 촉구한 것이기 때문에 인권위로부터 답변을 받기 위한 공문을 보냈을 뿐이라는 취지의 답변이다.
청와대 설명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지난 7일 '협조 공문'을 작성해 인권위 측에 송부했다. 인권위는 입법·사법·행정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다. 이에 청원 관련해서 '답변을 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협조 요청을 공문을 통해 했다는 것. 타 기관 등에 관련 내용을 넘기는 '이첩'이 아닌 '협조'를 했다는 점에서 인권위 독립을 침해한 행위가 아니란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인권 활동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첩이든 협조 요청이든 공문을 보낸 행위 자체가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단 얘기다.
이날 오전 인권운동사랑방 등 15개 인권 단체는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인권위에 국민청원을 전달하는 공문 발송은 그 자체로 인권위에 대한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청와대는 사법부나 입법부의 권한과 관련된 청원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라는 태도를 견지하였고, 방송사와 관계된 청원에서도 방송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답변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인권위에는 비서실장 명의로 공문을 발송함으로써,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지시로 보이게끔 조치했다"고 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해 3월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법정 구속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전원 사퇴를 촉구한 국민청원에 대해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 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에는 자유한국당·더불어민주당 해산 요구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면서도 정당 해산 심판 권한이 있는 헌법재판소에 협조 요청 등은 따로 하지 않았다.
또 지난 2018년 10월에는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해선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 분립에 맞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전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사건을 조사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인권위의 판단이어야 하며 그 판단에 대한 책임 역시 인권위가 져야 한다. 그게 독립성"이라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이런 식의 노골적인 독립성 침해 시도는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권위 "청와대 공문 반송"에 靑 "잘못된 공문 보내 폐기 요청한 것"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인권위에 잘못된 공문을 보내 반송되는 일도 벌어졌다.
인권위는 전날 "청와대가 13일 국민청원 관련 문서가 착오로 송부된 것이라고 알려와 반송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인권위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이 일자 황급히 발을 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잘못 전송된 공문이 있어서, 그것은 그날 폐기 처분 요청 공문을 보낸것"이라고 해명했다. 반송된 공문은 9일 보내진 것으로, 청와대가 7일 보냈던 협조 요청 공문이 아닌 만일에 대비해 작성한 '이첩' 공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이첩 공문을 따로 만들었던 이유는 7일 협조 요청 공문에 대해 8일 인권위 관계자가 난색을 보이며 '청원 내용을 이첩하면 조사할 수 있다'고 답하자, 혹시 모를 경우를 위해 마련했다는 것. 그러나 이 공문을 실수로 발송한 것이라며 '단순 해프닝'이라고 청와대는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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