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체류중이던 탈북자 4백50여명의 대규모 국내 입국이 성사되기까지에는 외교당국의 '조용한 외교'가 큰 힘이 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탈북자 입국에 대해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남북관계 경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탈북자 가운데 70%가 여성, 어린이도 20% **
27일 오전 아시아나 특별기 편으로 동남아 국가에 체류중이던 탈북자 4백50여명 가운데 약 2백30명이 1진으로 국내에 무사히 입국했다. 2진 2백20여명도 이날 오후 늦게 출발할 예정인 대한항공 소속 특별기 편으로 28일 오전 입국할 예정이다.
이날 입국한 1진을 포함한 총4백50여명 가운데 여성은 70%를 차지하고 나머지 30%는 남성으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 가운데 어린이도 전체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신 지역을 보면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함경도 출신이 80%에서 9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일부 입국자 가운데는 탈북자가 아닌 조선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여, 정부 당국은 이들은 조사결과 조선족으로 확인되면 강제추방시킨다는 방침이다.
정부 당국은 그러나 해당국가와의 외교적 문제를 감안, 1진 입국사실을 완벽하게 보안사항으로 부쳐 약 1달간의 합동심문 동안은 공식 발표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외교당국 노력 주효 **
이번 대규모 입국은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당국의 외교적 노력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동남아 국가에 체류하게 되면서 수명 내지 수십명 규모로 국내입국을 추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 지난 5월말 해당국가에 정식으로 ‘전원 한국행’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외교적 협상이 시작돼,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지난 달 현지를 방문해 해당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직접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갖는 등 3차례에 걸쳐 접촉을 가지고 협조를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현지 공관을 실무 협의 통로로 활용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국, 탈북자 한국행 ‘루트화’ 크게 우려**
동남아 해당국 정부는 이같은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비밀리에 일을 추진할 것을 당부하며 일을 추진해 왔으며, 이들 탈북자들이 누적돼 방치될 경우의 부작용을 우려해 국내 입국을 허용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들 탈북자들은 해당국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보호소에 분산 수용돼 있었는데 국내이송 대기시간이 길어지며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여러 소동이 발생하면서 양국간 외교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아졌으며 이러한 점이 이번 대규모 입국을 해당국이 받아들인 계기가 됐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해당국은 자국이 탈북자의 한국행 루트가 되는 것을 극도로 염려, 협상과정에 상당한 난색을 표명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몽골과 러시아 등 탈북자들의 북방 탈출로가 중국 공안 단속으로 사실상 봉쇄되면서 이른바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탈출로가 주요 루트로 등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과의 관계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루트’로 인정된다면 탈북자가 대거 몰려들면서 앞으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해당국은 탈북자 인도가 이뤄지기 전, 한국 정부의 '보안 실패'로 일부 언론에서 탈북자 보도가 이루어진 데 대해 대단히 강하게 불만을 표출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특히 일부 한국언론과 일본언론 등이 문제의 '동남아 해당국가 이름'을 직간접적으로 거명하면서 외교부는 반기문 장관까지 직접 나서 진화작업에 부심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탈북을 도운 대가로 해당국으로부터 쌀을 구입하는 문제와 관련, "협상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으나 북한 지원을 위한 쌀 30만톤을 구입해야 하는 만큼 고려사항이 될 수는 있다"는 게 정부입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 불가피, 장관급회담 개최 협의에도 응하지 않아 **
이번 대규모 탈북자의 입국이 성사된 데 대해서는 우선 국내 분위기는 환영 일색이나, 당분간은 북한의 반응 여하에 따라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현 남북관계는 '김일성 10주기 조문 파동'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건 등의 악재로 경색돼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대규모 탈북자 입국이 성사됨에 따라 당분간 쉽게 돌파구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게 정부측 관측이다.
김일성 사망 10주기를 맞아 남측 인사의 조문이 성사되지 않은 데 대해 남북해운실무접촉과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접촉 및 민간단체의 평양방문 무기한 연기로 반응했던 북한은 다음달 3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 15차 남북장관급회담 개최에 대해서도 아직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6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장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일정 협의를 북측에 제안했으나 북측 연락관은 “상부로부터 지시가 없다”며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 하원에서는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면서 탈북자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대북압력이 가중되는 양상이어서, 북한의 반발이 예상밖으로 거세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정부로서는 이번 대규모 탈북으로 북측으로부터 외교적 항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북측의 반응을 애써 작을 것이라고 ‘희망사항’을 말하고는 있으나 당분간은 경색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장기적인 관계 정상화에 정부가 좀더 노력해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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