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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 열광하는 당신은 '자본의 꼭두각시'!

[화제의 책]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

"당신이 이혼한 아내와 다시 잘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당신 자신을 긍정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미워했던 전처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겠죠. 당신은 그런 느낌에 중독돼 있어요."

날마다 33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심리 치료사는 전처를 잊지 못하는 한 출연자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한다. 남자는 곧 '환자'가 되고, 대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낸다.

비만이 고민이라며 이 쇼에 출연한 한 여성의 사례를 보자. 그의 비만은 심리 치료사에 의해 "바람기 있는 남편에 대한 무의식적 복수"라거나, "다른 남자의 잠재적 접근을 막음으로써 남편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 기제"라는 식으로 설명된다.

알코올 중독·마약 중독·이혼 등 정신적 고통을 이겨낸 유명 인사의 자서전이 불티나게 팔리고,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인 '금주회'같은 격려 조직이 생겨난다. 일반 시청자가 참여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TV 프로그램도 유행한다.

이 모든 현상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런 프로그램 속에서 심리학은 더 이상 단순한 하나의 분과 학문이 아니다. 갖가지 '치료 언어'가 안방 극장을 비롯해 개인의 일상에까지 뿌리내린 상황에서, 쇼의 시청자는 '잠재적 환자', 혹은 '잠재적 소비자'로 규정된다.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는 자본주의에 '감정'이란 사적 영역이 도입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책이다.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감정이 곧 '능력'이자 '자본'이 되는 사회에 대한 우울한 자화상이다.

'치료'의 대상이 된 감정들

▲ 감정 자본주의>(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최근 국내에 소개된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 노동>(이가람 옮김, 이매진 펴냄)은 항공사 승무원, 콜센터 상담원 등 '감정 노동자'의 현실을 소개하며 감정이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상품'이 돼 '관리'되는지, 그 과정에서 개인은 어떻게 소진되는지 분석했다. (☞관련 기사 : 웃어야 사는 사람들, 웃으며 병난 사람들)

그러나 이는 비단 서비스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일루즈의 주장이다. '웃으며 병들어가는' 감정 노동자와는 반대로, 우울하고 내성적인 사람들, 즉 감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이들은 이제 시장의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이들을 '잠재적 소비자'로 규정하며 이들에게 우울증 극복과 그로 인한 사회적 성공을 약속하는 거대한 치료 산업(Therapy Industry)과 행복 산업(Happiness Industry)의 실체를 까발린다. 바로 이 산업들이 우울하거나 내성적인 개인의 특성을 곧 '질병'으로 만들며 끊임없이 불안을 조성하는 주역이다.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양산되는 다수의 '낙오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현실을 갖가지 자기 계발이나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견뎌내도록 강요당한다.

과학성과 중립성의 이름으로 대중의 호응을 받는 각종 '치료 언어'는 어느덧 개인의 일상에까지 뿌려냈는데, 그 까닭은 바로 수요에 대한 충족이 가능하고, 각종 전문가들에 의해 가공·유통되면서 상품성 역시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정은 '과학'의 이름을 빌려 현대인의 정체성을 '치료'라는 언어 위에 옮겨 놓았다.

<감정 노동>이 '감정은 어떻게 상품화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면, <감정 자본주의>는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인 셈이다.

'관리'되는 감정과 '차가운 친밀성'

이제 심리학은 개인의 일상을 넘어 기업의 경영 전략과 국가 정책의 중요한 원리로도 부각되고 있다. 그는 '감정 자본주의'의 증거로 미국 기업 문화의 변화를 꼽는다. 포드주의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직장 내 위계 질서의 확립과 생산성 제고의 문제는 기업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찾은 대안이 바로 '심리학'이었다.

저자가 심리학적 경영 이론의 대표적 사례로 주목하는 것은 1920년에 행해진 엘튼 마요의 연구다. 그의 연구의 핵심은 한 마디로 조직 내 '소통의 중요성'이며, 노동자의 감정을 '배려'할 때 기업의 생산성 역시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소통'과 '배려'가 윤리적 이유가 아니라 생산력 향상, 이윤 확대를 위한 '업무' 차원에서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노동 쟁의를 막고 이윤을 늘리며, 더 나아가선 계급 투쟁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을 기대했고, 노동자는 반대로 그러한 해법이 직장 내의 승진과 출세의 통로를 열어준다고 여겼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정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심지어 등급화된다. 대표적인 '감정의 등급화' 사례가 바로 대니얼 골먼의 '감정 지능(EQ)'이다. EQ처럼 감정에 점수를 매기는 방법이 고안되면서, 감정은 급기야 승진이나 취업, 혹은 재산 증식 등의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일종의 '자본'이 되었다.

문제는 이를 기준으로 한 철저한 배제와 분리에 있다. 감정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치안과 관리의 대상이 됐고, 가족·연애 등 개인의 사적인 관계 역시 기업이 개입해 관리하는 영역이 됐다. 이렇듯 감정이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는 상황, 이것이 바로 저자가 비판하는 '감정 자본주의'의 현 상황이다.

"감정은 곧 사물이 되었다"

"감정 자본의 문화에서 감정은 평가되고 검토되고 논의되고 거래되고 계량화되고 상품화되는 사물이 되었다. 또 자아를 관리하고 변화시킬 다종다양한 텍스트 및 등급화 양식을 고안하고 배치하는 이런 과정에서, 감정은 고통 받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책의 3장에서 저자는 감정 자본주의 하에서 친밀성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감정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 관계, 가족 관계와 같은 사적인 관계는 탈육체화·탈낭만화된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차가운 친밀성'이란 바로 이런 감정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정서 형태이다.

이런 정서적 관계에서 육체적 매개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자신의 직업·취향·성격 등을 서술하는 '프로필 언어'가 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저자가 보기에,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인터넷 공간이다.

인터넷 커뮤네케이션, 그 중에서도 온라인 데이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차가운 친밀성'의 증상은 △만남을 위해 자신이 올린 '프로필'대로 자신을 관리하고 △(오프라인 만남과 반대로) 상대를 '파악하는' 과정이 상대에게 '끌리는 과정'에 앞서며 △무한한 '파트너 시장'에서 '효율적인 소비'를 하고 △최종적으로 오프라인 만남은 두 '소비자'의 상호 매매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온라인 데이트를 추구하는 익명의 잠재적 환자들(혹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수치화·계량화하는 심리학의 본질을 착실히 따른다"고 지적하면서 "과연 이렇게 규격화된 감정이 '진짜 감정'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통이란 '차가운 업무'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교감하는 자아'와 '낭만적 사랑'의 복원을 주장한다. 이것이 곧 '차가운 친밀성'에 대한 대안이며, 그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비판이론 가운데 자본주의의 제도 및 기구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비판을 포기하고 온갖 사회 영역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맞서고자 하는 시장 세력 못지않은 교묘한 '해석 전략'을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정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분석과 통찰은 아마 그 전략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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