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문에 버티지 못하고 '낙동강변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지낸 피해 당사자 2명에 대해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렸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김문관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뒤 모범수로 출소한 최인철(59), 장동익(62) 씨가 제기한 재심청구 재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뒤 최 씨와 장 씨는 부산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유원지 공터에서 무면허 운전교습 중 경찰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금전을 갈취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으며 이들은 이후 낙동강변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다.
당시 경찰은 두 사람으로부터 자백을 받았다며 부산지검으로 송치했고 검찰은 경찰에서 조사된 내용을 보완해 두 사람을 기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끝에 지난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그러나 첫 재판과정에서부터 "경찰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두 사람은 지난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경찰의 고문, 가혹행위 등 직무상 범죄와 수사기록 상 나타난 공문서 위조, 연행 과정에서의 불법성 등을 제시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를 맡았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심 청구 결정 여부에 대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인 지난 2016년 SBS에 출연해 이 사건을 떠올리며 "변호사 생활을 통틀어 한이 남는 사건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해 지난해 5월 23일부터 11월 14일까지 6차례에 걸쳐 경찰과 최 씨 등에게 심문을 진행했으며 경찰의 고문이 있었지 여부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다뤘다.
최 씨 등은 경찰에 강제연행된 이후 수사관에게 물고문을 당하는 등 고문 장소와 방범, 당시 수사관들의 언행을 일관되게 진술했으나 증인으로 나선 당시 수사관 4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장 씨와 최 씨의 진술만으로도 실제 고문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구체적이다"며 "무려 28년간 일관되게 경찰 수사관의 가혹 행위를 재심사유로 주장하고 있다"고 최 씨 등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이같은 결정에는 현장 사진도 영향을 미쳤다. 경찰이 작성한 현장검증 조서에는 지난 1990년 11월 15일 하루에 진행됐다고 나와 있었으나 전혀 다른 시간대 사진이 찍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최 씨 등은 당시 현장 검증을 끝낸 늦은 오후 경찰 수사관에게 또다시 물고문을 당한 뒤 다음날 다시 현장 검증을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들은 진술을 번복하거나 고문사실을 묻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 다고만 말하는 등 문제점들이 있었다"며 "증언에 나선 한 수사관은 두 사람의 범행을 확신한다면서도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증언을 하는 등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같은 경찰서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진술 등을 볼 때 경찰이 재심 청구인들에게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최 씨와 장 씨가 30년간 가혹 행위를 호소해 왔는데 사법부의 일원인 재판부가 이제서야 재심 결정을 내렸다"며 "장 씨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포함해 재심 청구인의 모든 가족에게 '늦어진 응답'에 대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고 최 씨 등에게 고개를 숙이기고 했다.
한편 경찰청과 부산지방경찰청은 이번 법원의 판단에 대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결정과 관련한 공식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