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일각에서 소비진작책의 일환으로 정부예산으로 상품권을 구입해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빈축을 사고 있다. 이같은 상품권 살포는 일본에서 실시됐다가, 아무리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국민부담만 증가시킨 대표적 '정책 실패'이기 때문이다.
***KBS "재경부, 상품권 구입해 저소득층에 분배 검토"**
KBS는 12일밤 9시 뉴스에서 "재경부 고위관계자가 정부예산으로 상품권을 구입해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방안을 소비활성화 대책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는 재계의 소비 촉진을 위한 '소비세 인하' 요구에 대해 "정부가 현재의 소비침쳬가 미래소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중산층 이상에서 소비를 줄인 것이 원인이기 때문에 소득세를 낮춰도 저축이 늘뿐 소비는 늘지 않을 것이며, 특히 근로소득자의 47%와 자영업자의 51%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소득세 인하는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시킬 뿐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재경부 관계자가 '이런 부작용이 있는 소득세 인하보다는 정부 예산으로 상품권을 구입해서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것이 어떻겠냐' 이런 의견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야쿠자만 돈 벌게 하고 국민은 거덜낸 정책"**
KBS 보도를 보면 이같은 방안은 아직 '검토중인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상을 재경부 고위관계자가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가 더없이 개탄스런 상황이다. 문제의 상품권 무료배포 방식은 이미 1999년 일본정부가 시행했다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국민부담만 늘려,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일본관료의 대표적 실정(失政)이기 때문이다.
만성적 장기복합불황에 고민하던 일본 대장성(한국의 재경부)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민간의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관건이라고 판단,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절인 1998년 11월6일 23조9천엔 규모의 긴급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이 가운데 7천억엔의 예산을 상품권 무료배포에 책정했다.
일본 대장성은 실제로 다음해인 1999년‘고향쿠폰’이라고 명명된 이 상품권을 15세 이하의 어린이와 노인복지연금을 타는 사람 등 총 3천5백9만명을 대상으로 1인당 일률적으로 2만엔씩 모두 7천억엔 어치를 나눠줬다. 당시 일본 정부가 상품권 배포를 결정한 것은 재경부 고위관계자 주장처럼 "현금으로 지급할 경우 이를 소비하지 않고 저축해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만성적 불황에 신음하던 백화점 등 유통업계의 민원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상품권을 받은 대부분의 일본국민들은 일본정부의 발상을 비웃듯 상품권을 할인해 현금으로 다시 바꾸어 저축함으로써 했고, 정부가 기대한 소비진작 효과는 '전무(全無)'였다. 이 과정에 어부지리를 얻은 이들은 상품권 할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채업자와 야쿠자뿐이었고, 상품권 살포에 따른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일본국민에게 되돌아왔다.
***아직도 재경부에 살아있는 '일본관료 숭배신화'**
한국관료를 흔히 일본관료의 붕어빵에 비유한다. 개발연대에 경제발전계획이나 법령 등을 일본에서 베껴다썼던 역사적 경험에서다.
일본전문가들은 흔히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최강의 경제대국 운운하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장기복합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쇠락한 여러 핵심원인중 하나를 '관료'에게서 찾고 있다. 오마에 겐이치 같은 경제평론가는 <헤이세이(平成) 관료망국론>이라는 저서를 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천 경제부처청사에는 '일본관료 숭배신화'가 버젓이 살아있음을 이번 재경부 고위관계자의 '상품권 무료배포' 발상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