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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프리즘] '세밑' 세상을 설레게 하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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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프리즘] '세밑' 세상을 설레게 하는 '당신은'...

19년째 사랑을 달군 '전주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의 20년 발걸음엔 과연


한 해의 끝무렵.

이 세밑에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기다리는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산타를 기다리는 동심(童心)만큼이나 늘 설레인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눈을 떠 머릿맡에 어떤 선물이 놓여 있을까 하고 전날 밤 뒤척거리며 잠을 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기다림의 설렘엔 늘 선물이 환호를 부른다. 하지만 우리의 눈동자에 익숙하게 그려져 있는 산타는 항상 만나지 못해 가슴 한켠이 늘 허전할 때가 많다.

전북 전주에서는 이 세밑에 산타같은 사람을 항상 손꼽아 기다린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선물을 놓고 자리를 뜬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산타보다도 더 신비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를 20년 전부터 '얼굴없는 천사'라 부르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지칭하면 '전주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가 맞다.

2019년의 해가 저물고 있는 무렵. 우리는 또 그 천사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올 것이라고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얼굴없는 천사의 남몰래 사랑보내기가 처음 시작된 해이다. 당시는 4월이었다. "심부름 왔다"는 한 초등학생을 통해 전해진 돼지저금통이 천사의 선행 스타트였다. 돼지저금통엔 58만 4000원이었다.

그 때 이후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세밑이 되면 얼굴없는 천사는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복사용지 박스나 쇼핑백 등에 수천 만원의 돈다발과 동전을 놓고 사라진다.

단, 두가지의 철칙이 있다. 하나는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를 알린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에 힘이 돼 달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또 하나는 박스나 쇼핑백 안에 늘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짧은 메시지도 남긴다는 것이다.

분명 올해도 그럴거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전주시

지난해인 2018년에는 12월 27일 얼굴없는 천사가 다녀갔다. 오전 9시 7분이었다.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놓고 간 기부금액이 5020만 1950원이다. 5만 원짜리 지폐 100장, 500원 동전 232개, 100원 동전 827개, 50원 동전 38개, 10원 동전 135개였다.

58만 4000원으로 시작된 기부금액을 더듬어보면 기부금액은 실로 놀랍다. 19년째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간 기부금액은 모두 '
6억 834만 원'이 넘는다.

이처럼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면서 늘 이맘 때가 되면 전주시민은 물론, 전북도민,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의 출현을 기다린다. 모든 언론의 눈과 귀도 노송동으로 한데 모아진다.

한 때는 언론들이 그의 얼굴을 반드시 카메라에 담겠노라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그런 비생산적인 경쟁도 눈녹듯 사라졌다. 조용한 선행을 방해하지 말자는 암묵의 동의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얼굴없는 천사의 기부선행으로 현재까지 4800여 세대에게 도움의 손길이 뻗쳤다. 또 '천사장학금'이 만들어져 관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주어지고 있다.

받기만 했다. 그래서 시민들은 그에게 무엇이라도 감사함을 화답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지금 전주 노송동에는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 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천사비가 놓여져 있다.

또 주민들이 손수 함께 만든 벽화, 그리고 꽃길로로 단장된 '아름다운 천사의 거리'가 생겼다. 전주의 뿌듯한 자랑거리다.

세상 사람들이 올해도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그런데 그 속마음은 괜시리 그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이 아닌지 하고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전주시

20년째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전주시민들의 마음은 천사장학금을 받고 얼굴없는 천사에게 보낸 편지에 녹아든 바로 이 초등학생의 마음과 같을 것 같다.

"얼굴없는 천사님께, 장학금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도 잘 듣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얼굴없는 천사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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