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만두' 파문으로 식품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만두에 이어 라면, 유아 이유식도 문제가 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도대체 무엇을 식탁에 올려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더구나 이번 '쓰레기 만두' 파문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을 지킬 의무가 있는 정부 관료의 무능력과 뻔뻔함이, 이윤만 추구하는 업자들의 비윤리적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도 정작 식탁에 올릴 것은 없는 이런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현실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위험한 화학물질의 조사와 검사를 위해 1984년에 일본 소비자들의 기금으로 설립된 후, 18년 동안 충격적인 식품 제조와 유통 실태를 고발해온 '일본자손기금'과 환경 문제와 다음 세대 아이들의 건강 문제를 위한 활동을 전개해온 어머니들의 모임 환경정의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다지사)'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자손기금'은 레몬이 일본 점포에서 사라진 계기를 만든 1990년 '일·미 레몬 전쟁', 벌레가 유전자 조작 감자의 잎을 먹고 죽은 1997년의 '충격 영상' 공개, 환경 호르몬이 용출되는 것을 지적한 1998년의 '컵라면 논쟁' 등을 주도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으로부터도 주목받고 있는 시민단체이다.
다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유해 화학 물질 반대 운동을 통해 최근 문제가 된 '새집 증후군'을 이미 1999년부터 제기한 다지사 어머니들은 최근에는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 운동, 광고 모니터링, 환경 학교 등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일본자손기금'의 <먹지마, 위험해!>(이향기 옮김, 해바라기 펴냄)와 다지사의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시공사 펴냄)는 우리들의 식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경고장이자, 그 대안을 찾는 이들의 노력이 담긴 책들이다.
***"식탁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오렌지 처리 공정은 다음과 같다. 처리장에 들어온 오렌지를 먼저 솔질한다. 이때 오렌지 껍질에 붙은 연한 갈색의 상처 딱지 등이 깎여 나가 깨끗한 상태로 난다. 이 처리를 거치는 동안 오렌지 껍질에는 많은 상처가 난다. 세포막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그냥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처리한다. 살균제를 분무한 다음 흰곰팡이를 죽이는 OPP가 들어간 왁스를 바르고, 열풍으로 건조시킨다. 그리고 나서 녹색곰팡이를 죽이는 물질 TBZ, 이마자닐을 분무한다. 오렌지의 껍질이 깨끗하고 윤기가 나는 것은 바로 농약이 포함된 왁스 때문이다."(<먹지마, 위험해! 中)
옅은 오렌지색의 윤기가 나는 오렌지에 쉽게 유혹당했던 소비자들은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오렌지에 손을 못 댈 것이다. '일본자손기금'은 "캘리포니아 오렌지는 장마철에도 곰팡이가 절대 생기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오렌지 표면에 바르는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독극물이 든 왁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이미 1990년 캘리포니아의 썬키스트 레몬 처리장에서 고엽제의 주성분인 2·4D를 레몬에 살포하는 것을 영상에 담아 고발해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일본자손기금'의 고발은 과일에 그치지 않는다. 닭고기(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발생되는 내성균), 수입 쇠고기(합성 호르몬과 광우병에 감염된 미국산 쇠고기), 양식 방어·복어(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포르말린 사용), 새우(표백제·항생물질·대장균 등의 집합체), 감자(수확하기 전 독극물 제초제 첨가), 샐러리·파슬리(농약이 가장 많이 잔류하는 채소), 밀가루(신경독성과 면역독성이 있는 수입 밀가루), 컵라면(발암성이 있는 내분비계 장애물질 용기, 환경호르몬 용출) 등 충격의 연속이다.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책 뒤에 한국소비자연맹이 작성한 꼼꼼한 '식품 표시 보는 법'이 덧붙여 있기는 하지만 '일본자손기금'의 책의 장점은 고발해 있다. 이런 점에서 다지사의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는 적절한 보완이 된다. 어머니들이 직접 생활 속에서 아이들과 가족들이 자주 접하는 먹을거리의 위험성을 꼼꼼히 조사한 내용에 덧붙여 그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라면의 문제로 이 책은 크게 네 가지를 꼽고 있다. 수입 밀가루와 각종 첨가물, 기름에 튀기는 문제, 스프와 화학 조미료, 과다한 나트륨의 섭취 등이 바로 그것이다. 더구나 앞에서 '일본자손기금'도 지적했듯이 컵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20분 정도 놓아두면 용기로부터 생식 기능 등을 저하시키는 환경호르몬과 발암물질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일부 종이컵으로 대체가 됐지만 이 역시 용기 내부가 비닐로 코팅돼 있어 마찬가지라는 게 이 책의 지적이다.
그럼 좀더 안전하게 라면을 먹는 방법은 없을까? 면을 한 번 데쳐낸 후 끓이면 착색제나 산화 방지제 같은 유해 물질이 줄어들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라면을 먹는 회수를 줄이고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을 이 책은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몸에 안 좋은지 뻔히 알면서도 각종 '패스트푸드'와 '가공 식품'에 손이 가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지사 어머니들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다.
"우선 식탁을 간소하고 소박하게 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쉬는 날에는 일주일 정도 먹을 밑반찬 두세 가지를 마련하고, 제철 김치 한두 가지, 깻잎 장아찌나 마늘 장아찌 등 장아찌 류 한두 가지에 김이나 야채 및 해조류 쌈 등을 번갈아가며 차리세요. 김도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구워 먹기보다는 먹을 때 살짝 구워 먹거나 생김 그대로를 간장에 찍어 먹는 게 간편하고 좋습니다. 또 두부를 살짝 데쳐 기름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다면 그리 많이 손이 가지 않아도 훌륭한 밥상이 되지요. 그리고 멸치 다시마 육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면 국을 끓이거나 찜을 할 때, 그리고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버섯과 두부를 넣어 먹기만 해도 좋습니다. 되도록 요리하지 않고, 조리 방법을 단순하게 하는 것이 영양을 풍부하게 하면서 간편하게 식탁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이지요."(<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 中)
***'패스트푸드'에서 '슬로푸드'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슬로푸드 국제본부 부회장 자코모 모욜리는 "몸에 나쁜 음식을 대량 소비하는 '패스트푸드'에서 적게 소비하되 질 좋은 음식을 추구하는 '슬로푸드'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런 '슬로푸드' 운동이 단순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식품 원료 생산·가공·유통의 문제 더 크게는 사회구조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지향하는가는 어떤 문명을 지향할지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본지 2004년 5월24일자)
식탁에 차마 올리기 두려운 식품들이 범람하는 현 세태가 초래할 위기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먹지마, 위험해!>와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는 이런 근본적인 성찰을 통한 시민들의 과감한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미래의 식탁을 어떤 식품으로 채울 것인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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