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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문제는 동성애가 아니라 인권이야!

[안종주의 안전사회] 동성애자 탄압, 고대 그리스 ‘No’ vs. 기독교 ‘Yes’

에이즈는 20세기 후반기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최악의 감염병(과거에는 전염병으로 불렀음)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21세기 들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감염병이다. 에이즈가 한국에 상륙한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에이즈를 둘러싸고 공포가 번진 것은 물론이고 환자와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 등 인권이 종종 문제가 됐다.

다행히 에이즈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이나 아프리카 국가, 일부 아시아·유럽 국가와는 달리 크게 확산하지 않았다. 이 세기의 감염병은 배우 록 허드슨, 세계적 가수였던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천재 농구 선수 매직 존슨 등 유명 인사들이 에이즈로 숨지거나 에이즈에 걸려 더욱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끈 감염병이 됐다. 하지만 에이즈 발병을 멈출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돼 선진국에서 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진 뒤인 2000년대 이후 일반인들의 공포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이 감염병의 정체를 잘 모르던 1980년대 초기와는 달리 전파 경로 등이 정확하게 드러나면서 선진국에서는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차별은 크게 줄어들었다. 에이즈는 바이러스 감염병의 하나일 뿐이며 성병의 일종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양성애자 등 남녀노소 모두 이 감염병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일반 대중의 뇌리에 굳건히 자리 잡아 갔다.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에이즈 감염을 걱정하지 않는다. 특히 혈액 관리를 잘하고 있는 선진국과 한국 등에서는 바이러스를 보유한 에이즈 감염인 또는 환자와 안전하지 못한 잦은 성접촉을 하지 않는 한 사실상 에이즈를 걱정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적어도 에이즈는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에서는 만성질환처럼 취급되고 있다.

에이즈, 동성애자 등 특정집단에만 문제 되는 질병 아냐

세계적으로는 에이즈가 여전히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주요 감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문맹률이 높고 에이즈가 유행하고 있는 아프리카 등에서 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이들 저소득, 후진국에서는 에이즈에 걸릴 경우 치료제를 마음 놓고 사용할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에이즈 확산을 막은 대표적 모범국가에 속한다. 최근 에이즈에 감염되는 사람 수는 연간 1천 명가량이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성적 활동이 왕성한 20~40대이다. 물론 감염자라고 해서 모두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발병해 환자가 되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적다. 에이즈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결핵처럼 심각한 감염병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에이즈 예방을 위한 경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즈와 관련해 최근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에이즈로 인한 사망이나 건강 위험이 아니라 에이즈 감염인·환자와 관련해 일부 집단의 비뚤어진 시각과 이러한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에서 나오는 발언과 행동이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과 싸우는 사람들

지난 1일은 유엔에이즈가 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다. 올해로 32번째를 맞았다. 이 날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는 에이즈 예방과 우리 사회가 에이즈 감염인·환자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방송인 홍석천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붉은 리본 이미지와 해시태그를 게재하며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가수 슬리프, 래퍼 디액션도 캠페인에 동참하며 무관심과 편견 속에 힘들어 하는 에이즈 감염인들을 따뜻하게 감쌌다.

이러한 흐름과 달리 지난달 2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에이즈와 관련해 ‘웃픈’ 설전이 한 야당 의원과 국가인권위원장 사이에서 벌어졌다. 의원은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 발생한다. 동성애를 조장하고 이런 부분 인권위원회가 대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권위원장은 “인권위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할 때마다, 저는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지 동성애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 문제도) 기본적 인권 범주에 들어간다.”고 맞섰다.

에이즈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나쁜 이미지를 떠올린다. 지금도 여전하다. 에이즈는 오랫동안 죽음과 감염병의 상징 언어였다. 에이즈가 세계적 유행을 시작했을 때인 1980년대에는 ‘신의 형벌’ ‘20세기 흑사병’ 등 온갖 부정적이고도 비과학적인 비유를 이 세기의 감염병에 붙였다. 초기 에이즈 환자 가운데 남성동성애자가 많았다는 것이 발단이 돼 이 감염병을 ‘게이병’이라고 잘못 부르기도 했다.

이로써 대다수 비동성애자는 자신은 에이즈와는 무관할 것이라는 위안을 삼으려 했다. 여기에 동성애를 죄악시해온 기독교가 가세했다. 하지만 에이즈는 바이러스가 옮기는 일종의 성병이다. 에이즈바이러스는 동성애자와 비동성애자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에이즈 확산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동성애 문제로 국한해 접근하면 에이즈와의 전투에서 백전백패다. 동성애든, 비동성애든 안전한 성관계를 하는 사회 문화가 중요하다.

동성애자 탄압, 고대 그리스 ‘No’ vs. 기독교 ‘Yes’

동성애는 인간 세계에서든, 동물 세계에서든 오랜 옛날부터 있어왔던 현상이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널리 펴져있던 사회문화이자 성문화였다. 고대 그리스 레스보스섬 신전의 여사제들이 동성애를 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여성동성애자를 이 섬의 이름을 따 레즈비언이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 가운데 상당수도 동성애자였다. 당시 사회에서는 동성애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어서 죄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독교가 유럽 사회를 떠받치는 기본 신앙이 되면서 동성애는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의학계도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취급했다.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1969년 6월28일 뉴욕 경찰이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들이 모여 친교해온 공간인 ‘스톤월 인’을 습격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정치적 운동이 본격 일기 시작했다. 합법적 결혼과 상속 인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불거졌다. 실제로 이를 인정하는 국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정도 단계는 아니지만 홍석천, 김조광수 등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히는 문화연예인들의 ‘커밍아웃’이 이제는 그리 큰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가 됐다.

동성애자 부도덕집단 매도는 반인권적 행태

한국인들의 뇌 DNA에는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히 단단하게 각인되어 있다. 일부 기독교인과 극우보수단체 인사들이 이를 이용해 몇 년 전부터 동성애가 에이즈 확산의 주경로이며 동성애자를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를 마구 퍼트리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가인권위와 서울역 등 상징적 공간과 다중이 오가는 곳에서 동성애 혐오를 표출하고 규제 법안 제정 등을 요구하는 시위와 서명운동 따위를 줄기차게 벌여오고 있다. 야당의원의 발언도 그런 최근의 맥락을 반영해 나온 것이 아닌가싶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 1980·90년대 일부 국회의원들이 정부에 에이즈 감염인·환자들을 시설에 집단수용해 관리하라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기도 했다. 국회 운영위에서 있었던 에이즈·동성애 관련 질의를 보노라면 아직 인권과 관련해 우리의 갈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이즈 환자와 동성애자는 혐오와 낙인, 그리고 차별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더불어 함께해야 할 우리의 이웃이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인권의 대상이다. 에이즈는 동성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에이즈는 인권의 문제다. 동성애 또한 그렇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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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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