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동지석묘는 그 규모와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지석묘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연구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최근 김해시에서 다시 발굴조사하여 보존 관리와 활용 방안을 수립 중에 있어 이 거대한 고인돌이 10여년만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될 것 같다.
5일 오후 김해문화원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구산동 고인돌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존 활용 방안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김해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의 철저한 보존과 관리를 통해 문화적 가치를 활용한 다채로운 문화상품을 개발해 지역 문화산업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어 의미가 매우 크다.
먼저 주제발표에 나선 강동석 국립문화재연구소 위원은 "구산동지석묘는 김해분지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며 "이는 대형 지석묘를 축조하여 물리적 경관을 지배하고 경작지 등의 토지 활용에 있어서 배타적 점유권을 소유·행사하고자 하는 수장층의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구산동지석묘는 근접중심성이 높은 지점에 위치하여 김해분지에 형성되어 있었던 네트워크 조직 내에서 자원과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강 위원은 "구산동지석묘는 거석기념물로서 이를 축조한 집단에게 특정한 체험과 기억의 장소로 작용했다고 보여 진다"며 "대형 묘역식지석묘의 축조과정은 투입인력, 시간과 비용으로 볼 때 축조집단에게 집단적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은 "구산동지석묘는 한반도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무덤 중 가장 규모가 크다"면서 "그 규모에 걸맞게 불평등사회의 지배자로서의 수장의 등장을 웅변하는 지석묘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연구원은 "이렇게 중요한 유적이 훼손되지 않고 원래의 자리에 보존되어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또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현재 지하 5m 아래 감추어져 있어 김해 시민들이 그 존재조차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성주 경북대학교 교수는 "구산동 2A-1호와 대성동 구릉 그리고 봉황대 구릉의 지석묘는 각각 지형적으로도 우월하다. 이 세 지점의 지석묘는 축조된 이후에도 중요한 문화경관으로서 원삼국 초기 국읍의 형성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김규정 전북문화재연구원은 "구산동지석묘는 지표상에 나타나 있는 지석묘의 흔적이 전혀 없이 안내판만 가지고 과연 일반인들이 구산동지석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김 연구원은 "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공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구산동지석묘를 인식할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활동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