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예술'이라고 한다. 피사체의 어느 한순간을 네모난 프레임 안에 가둬 놓으면서, 그 찰나에서만 존재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종이신문 1면을 채우는 사진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한 단면을 예술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가끔 그렇게 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사진 속 피사체의 이면에는 어떤 모습들이 있었을까."
우리 사회의 단면이 아닌 이면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취재현장에서 찍는 사진은 정형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도를 목적으로 하기에, 행사 성격에 부합하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보도사진이 지면을 채운다.
하나의 사안에는 여러 복잡한 이유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마련이다. 그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한다는 건, 말 그대로 예술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선입견(?)을 깨는 책이 한 권 출시됐다.
'소심한' 사진기자의 '소심한' 사진, 그리고 글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사진기자가 현장을 누비며 찍은 사진을 모아 책을 한 권 냈다. <소심한 사진의 쓸모 :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북콤마 펴냄)이다. 2005년부터 사진기자 생활을 해온 그는 한국의 주요 현장을 대부분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주류 언론들이 주목하는 현장은 아니다.
콜텍, 톨게이트 요금 수납노동자, 유성기업,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하이디스 정리해고, KTX, 기륭, 쌍용차, 동양시멘트, 한진중공업, 세월호 광장, 알바노조... 정 기자는 사회가 주목하는 현장이 아니라, 사회가 주목해야 할 현장에 집중했다. 그의 카메라 파인더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향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현장에서조차도 그의 카메라는 '쓸모없는' 곳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사진기자들의 문법이 아닌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그는 사진을 찍는다. 이를 두고 당사자는 '소심한' 사진이라고 표현한다.
"사진은, 자주 무례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 앞에 설 일이 많은데 부끄럼 많은 나는 다가가길 망설였다. 무작정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건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 (중략) ~ 거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아름다운 거리가 얼마쯤일지를 늘 고민한다. 정답은 아마도 없을테니 또 묻고 묻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 뒤에 웅크린 채, 피사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한 발짝 물러나 주변을 조망할 수 있기를 그저 바란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피사체들은 우리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각도'와 '빛', 그리고 '순간'에 얽매여 있지 않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를 찍으면서 그를 사진의 메인으로 내세우지 않고 '내가 김용균이다, 더이상 죽이지마라'는 피켓의 배경화면처럼 드러낸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108배를 하는 현장도 마찬가지다. 절을 하는 엄마의 등판을 빤히 쳐다보는 어린 딸에 포커싱을 맞추기도 한다. 2010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반올림 황상기 씨와 이종란 노무사도 마찬가지다. 당시 국감 증인으로 나온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 모습을 마뜩잖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사진에서 주요 순간이다.
기존 언론의 보도사진과는 성격이 다른 '사진'인 셈이다. '소심한' 정 기자가 피사체와의 거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정 기자는 보도 사진을 찍는 일 말고, 행사와 사건이 끝난 뒤 남아 또다른 '쓸모'를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적었다고 한다. 앞모습 사진은 골라 매체용 사진으로 챙긴 뒤, 가만히 선 모습이나 뒷모습 사진은 따로 챙겼다. 어두침침한 사진, 보도에는 마땅치 않은 사진이지만, 쓸데없는 사진이어도 문득 쓸 곳이 떠올라 여러 장 찍었다고 한다. 그런 사진에 글을 붙여 낸 책이다.
"보는 각도가 달라지면 종종 다른 것들이 보인다"는 말로 정 기자는 이런 자신의 사진을 설명한다.
우리 사회를 비추는 '소심한' 사진들
이 책의 묘미는 정 기자의 파인더가 사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기자는 자신이 '소심한'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단상을 촘촘히 정리했다. 단순 사건정리가 아니라, 흡사 르포기사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의 세련된 문장으로 표현했다.
"사진뿐 아니라 그들(노동자들) 사이에 오간 가슴 저미는 대화들이나 통계 속 숫자에 묻혀버릴 뻔했던 사실들을 이 사진집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것이다. ~ (중략) ~ 사진을 보는 것으로, 그리고 그가 친히 쓴 설명을 꼼꼼히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정 기자가 주로 다루는 피사체는 노동자들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아니다. 하청, 그리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해고자, 파업자, 천막농성자 등이 그가 다루는 주요 대상들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은 어둡다.
물론, 책 곳곳에는 귀엽고, 재기발랄한 사진들도 들어가 있다. 엄마와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찾은 아이가 어른과 다른 방향으로 손을 짚고 고개를 땅 가까이 숙이고 있는 사진이 대표적이다. 정 기자도 자기 사진이 어둡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살짝 우스꽝스러운 장면인데, 마냥 진지하자면 또 숨이 턱턱 막힌다. 블랙코미디가 그런 장르일까. 더 많은 유머가 담겨 내 무뚝뚝한 잿빛 사진도 좀 달라지기를 바란다."
정 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우리 사회의 가장 얇고 취약한 곳이다. 그의 시선은 앞으로도 그런 곳을 향하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정 기자의 무뚝뚝한 잿빛 사진이 조금은 밝게 바뀌길 바란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그의 사진이 밝아진다면, 우리 사회도 조금은 나아지는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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