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는 도서관과 서점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보물들'을 찾은 뒤, 그 안에 적혀 있는 '지혜의 말들'을 머릿속에 담는 것일 테다. 20세기의 스승들 중 한 사람인 헬렌 니어링은 그렇게 고른 '지혜의 말들'을 엮어 책으로 내면서 다음과 같은 루이즈 이모젠 기니(Louise Imogen Guiney)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위대한 옛 작가들을 인용하는 것(적절하고, 진부함이 없을 때)은 인용하는 측은 자식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행위요, 피상적이고 외면적이게 된 대중에게는 축복이다."(<헬렌 니어링의 지혜의 말들>, 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 16쪽)
하지만 불행히도 현대인들은 헬렌 니어링처럼 수십 년 동안 여러 도서관의 희귀 장서 열람실을 돌아다니면서 수천 권에 이르는 훌륭한 책들을 접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힘들게 손에 든 책에서 '지혜의 말들'을 찾아낼 안목도 자신할 수 없다.
이런 현대인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바로 <프레시안>에 2년이 넘게 '5Vitamins A Day'를 연재하고 있는 40대의 평범한 남성 Maximus다. 그가 연재물 중 일부를 모아 최근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편견>(이른아침 펴냄)을 펴냈다. 지난 연말에 펴낸 <농담>(이른아침 펴냄)에 이은 두 번째 묶음이다.
***왜 Maximus는 이 책을 썼는가?**
Maximus는 <농담>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편견>의 서문에서 남의 말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또 그것을 엮어 책을 내는 이유를 바로 '남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인간이란 남을 모방하는 채무자들에 불과하며, 인생은 연극이고 문학은 인용해 불과하기 때문입니다."(에머슨), "새로운 것에서는 진실을 찾기 어렵고 진실한 것에는 좀처럼 새로운 것이 없다."(리히텐베르크)
"밝은 빛을 널리 퍼뜨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화튼), "짧지만 뜻 깊은 말들은 좋은 생각을 돕고 그 말의 원전을 찾아 읽게 합니다."(처칠)
"좋은 말을 만들어낸 사람 다음으로 가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인용한 사람입니다."(에머슨),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독창성이라고는 별로 없는 한 인간의 부족함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에머슨)
자기의 역할을 "무엇인가 새로운 말"을 하기 보다는 "좋은 생각을 반사하는 조그만 거울"에 한정하겠다는 솔직하고 겸손한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편견>과 <농담>을 넘기면서 그가 인용한 말과 짧게 붙인 비평을 읽다보면 그의 이런 겸손이 결코 솔직한 게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겸손은 모두 거짓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닐 것이다."(베넷)
그렇다. 그는 널리 읽히는 톨스토이(Leo Tolstoy)의 <지혜의 달력>(많은 번역본이 있으나 가장 최근의 것은 <톨스토이와 함께하는 사계절>, 산수야 펴냄)이나 날카로운 독설로 유명한 비어스(Ambrose Bierce)의 <악마의 사전>(정민미디어 펴냄)에 필적할 만한 '삶의 비타민'을 쓰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그와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톨스토이나 비어스보다 Maximus가 인용하고 비평한 글이 더 마음 깊이 공명한다.
개원을 앞둔 국회의원들의 가슴을 써늘하게 할 다음 말들을 보자.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농담을 하면 법이 되고, 법을 만들면 농담이 된다."(로저스)
"흔히 멍청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보다 정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은 실제보다 더 멍청하게 행동함으로써 이런 편견을 악용한다."(러셀)
"정직한 정치인이란 한번 매수당하면 끝까지 매수당하는 자이다."(캐머런)
그렇다고 이런 국회의원을 용인한 우리들도 Maximus의 쓴 소리를 비켜 갈 수 없다.
"너무 잘나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멍청한 인간들로부터 지배당하는 벌을 받는다."(플라톤) "바보들의 놀이라고 거기서 빠지면 바보들끼리 알아서 결정하고 바보가 지배하게 됩니다...바보들이 나설 때 똑똑한 당신은 어디서 뭘 하고 계셨는데요?"(Maximus)
***왜 Maximus인가?**
<프레시안> '5Vitamins A Day'의 애독자들이나 책을 접한 사람들은 맨 처음 'Maximus'가 누구인가, 왜 필명이 Maximus인가, 이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현재까지 'Maximus'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그가 밝힌 단편적인 정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40대의 남성, 한국과 외국의 대학과 대학원 여러 곳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며 영문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을 기웃거렸다는 사실,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번역했다는 사실, <프레시안>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 등등.
그가 확실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같이 인용할 글을 뽑고, 번역한 민족사관고등학교 IVY반 이지예와의 관계도 궁금하다. 하지만 그가 굳이 밝히길 꺼려하니 호기심을 참기로 하자. 그는 분명히 자기가 인용한 다음 말을 기억하지 못함이 틀림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자신을 감추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니체)
다만 그는 필명이 왜 Maximus인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Maximus는 러셀 크로우 주연의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고대 로마의 명장군 막시무스에서 따온 것이다. "막시무스와 인격적, 신체적, 이념적 유사성이 없는" 평범한 한국 남자 Maximus는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 쾌도난마의 칼을 휘두른다. 그는 좀더 상식이 통하는 세상, 우격다짐보다는 합리적인 소통이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낙관론자는 모든 곳에서 청신호를 본다. 비관론자는 단지 적신호만 본다. 그러나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슈바이처)
***Maximus를 믿지 말라**
이 책은 모든 인용문의 원문을 실어놓았다. (아쉽게도 출처는 안 밝혀 놓았다. 종종 독자 중에는 원전을 찾아 읽고자 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배려 덕분에 독자들은 Maximus의 번역보다 더 나은 해석을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단 "원본이 번역본에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보르헤스)는 말을 상기하면서.
Maximus는 다음과 같은 경고도 덧붙인다. 독자들이여 Maximus를 믿지 말지어다.
"모든 말은 사용되었던 원전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정직하지 않다. 원전의 맥락에서 벗어난 말은 인용하는 사람의 의도나 인용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새로운 맥락에 따라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될 위험을 항상 갖고 있다...(그러니)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라 해도 원전의 맥락에서 벗어난 말은 문자 그대로 믿지 말라"
"아무리 그럴듯하다고 해도 인용구만으로 무엇인가를 설득하려는 사람은 집을 팔기 위해 견본으로 그 집의 벽돌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같다"(존슨)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