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이라크포로 성고문 및 학대행위에 대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결국 국제사회 여론에 굴복, 사과했다.
전날 아랍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과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않았던 부시가 인터뷰이후 워싱턴포스트가 새로운 학대사진을 공개하면서 국내외 거센 비난의 파고가 더욱 높아지자, 마지못해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시는 사임압박에 내몰리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그의 사과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부시, 반미여론에 불만 토로하며 마지못해 사과**
AP통신의 표현을 빌면“그렇게도 실수를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데 질색인 성격의” 부시 대통령이 6일 미국을 방문중인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과의 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미군에 의한 이라크인 포로 학대행위에 사과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인 포로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가해진 모욕에 대해 요르단 국왕에게 유감스럽다(sorry)고 말했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부시는 이어“나와 같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본 것들을 절대 높이 평가하지 않으며 이는 오히려 속을 메슥거리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이러한 사진을 본 사람들이 미국의 본질과 진심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찬가지로 유감스럽다(sorry)”고 말해, 이라크 포로 성고문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미감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는 우리 미국의 명예와 평판에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이번 사태의 중차대성을 시인한 뒤 “이로 인해 바른 심판이 내려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는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다. 그는 “이러한 일이 다시금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전체 시스템을 다시 점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외 여론 쇄도에 마지못해 굴복**
이날 부시 대통령의 사과발언은 전날 아랍위성방송인 알-아라비야와 미국의 재정지원을 받는 알-후라와 인터뷰를 할 때와는 전연 딴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이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보다는 더 낫다는 식의 발언을 하며 사과라는 단어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었다.
그는 도리어 “이라크인들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도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고 실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라크인들에게 자못 뻔뻔한 훈계조의 '민주주의 강연'을 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들 방송과의 인터뷰 이후에도 아랍권의 분노가 폭발한 데다가, 인터뷰직후 미 여군이 나체의 이라크인 포로 목에 끈을 묶고서 끌고가려는 새로운 학대사진이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공개되고 지지율이 취임후 최저로 급락하자 끝내 '사과'라는 단어를 언급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부시 "럼즈펠드는 정말 훌륭한 장관"**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국내외에서 사임압력을 받고 있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경질설을 일축, 그의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부시는 “럼즈펠드 장관은 정말로 훌륭한 장관”이라며 “럼즈펠드 장관은 우리 국가를 위해서 잘 일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럼즈펠드 장관은 지난 2차례의 전쟁동안 장관직을 수행해 왔다”며 “그는 우리 정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는 우리 정부내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시도 지난 5일 럼즈펠드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이들 사진과 국방부 보고서에 대해 알고 있었어야 했다고 질책했다”고 밝혀, 우회적으로 럼즈펠드 장관에게 책임이 있음을 시인했다.
이에 워싱턴 정가에서는 부시가 일단 럼즈펠드 경질 가능성은 부인했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럼즈펠드를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부시는 국방부가 CBS 방송의 학대사진 입수사실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이들 사진에 대해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은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럼즈펠드의 빈약한 정보량에 대해서도 “언짢게 여겼다”고 전하고 있다.
부시와 럼즈펠드간 갈등 노출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그동안 강고한 모습을 보였던 네오콘(신보수주의) 진영내 갈등설까지 낳고 있다.
***민주-공화 한 목소리로 럼즈펠드 사임 요구**
하지만 부시의 럼즈펠드 방어에도 불구하고, 야당인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도 럼즈펠드 경질을 요구하고 나서 럼즈펠드의 유임은 불확실한 상황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개인적으로 럼즈펠드 장관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그가 자신들과 미리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당연히 럼즈펠드 사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톰 하킨 민주당 상원의원과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미국과 우리 군대의 안전 및 우리의 이미지를 위해서 럼즈펠드 장관은 사임해야 한다”며 “만일 그가 사임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그를 경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럼즈펠드는 7일 미 상원 위원회에 출석해 이번 사태에 대한 증언을 할 예정이어서, 그의 유임 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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