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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정미소 공동체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진가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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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계남정미소 공동체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진가 김지연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김지연 씨는 1948년생이다. 60세를 넘긴 나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하는 활동이 독특하고 젊다. 신선하다.

몇 년 전부터 그녀는 마을에 하나씩 있는 정미소를 문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정미소를 주목하는 건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그의 아주 독특한 작가적 집착(?) 때문이다. 주위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안타깝다. 이를 보존할 수 없을까?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 옆에 불쑥 계남정미소가 나타난다. 오래된 정미소를 조금씩 보수해

서 그대로 보존했다고 한다. 낡은 지붕과 벽, 주변의 마을과 논밭이 어우러져 한결 정취를 자아낸다.


정미소도 그렇지만, 그녀의 '추억 수집'의 품목엔 없는 것이 없다. 그녀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자기와 집안의 추억, 마을 주민들의 옛날 사진들, 졸업식, 수학여행 사진들, 학교나 분교, 자꾸만 없어지는 정미소들, 이발관, 구멍가게들….

이런 없어지는 것들을 수집하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에도 그러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용담댐으로 수몰되기 전의 풍경을 담아 만든 책이 손에 들어 왔다고 한다. 김 관장은 이것을 스캔 받아서 다시 책으로 만들고 전시를 했다.

▲ 이 정미소를 얻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 안에는 실제로 사용했던 정미 기계가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도 작동을 해서, 아이들이 견학을 하러오면 작동 과정을 보여준다고 한다. 공간을 제법 차지하고는 있지만, 이것 자체가 박물관의 훌륭한 전시품이다.
마을의 대소사가 빼곡하게 담겨있는 책을 발견한 김 관장은 이런 훌륭한 자료가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서, 또 직접 발품을 팔아 일일이 스캔하여 전시를 했다고 한다. 마을에 애정을 가졌던 한 사람이 남겨 놓은 기록물이 마을의 역사를 담는 훌륭한 자료가 되었고,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본 한 사람이 만들어낸 전시로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분은 돌아가셨지만 수몰 전의 마을 풍경을 찍고 그 지명을 우리말로 다시 고쳐 꼼꼼하게 기록 해 놓았다고 한다. 이 없어진 풍경을 김지연 씨가 고생 끝에 재생을 해 놓은 것이다.

수집 사진 가운데는 50~70년대 마이산에 놀러가 찍은 사진을 수집한 것도 있다. 사진 수집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일일이 찾아다니고, 달라고 하면 사진 주인이 "당신을 뭘 믿고 주냐?"며 거절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마을의 대소사가 빼곡하게 담겨있는 책을 발견한 김 관장은 이런 훌륭한 자료가 묻히는게 안타까워서

또 직접 발품을 팔아 일일이 스캔하여 전시를 했다고 한다. 마을에 애정을 가졌던 한 사람이 남겨 놓은 기록물이 마을의 역사를 담는 훌륭한 자료가 되었고,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본 한 사람이 만들어낸 전시로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수집 사진을 보니 1980년대 지금은 민예총 이사장인 김용태 회장 생각이 난다. 그는 나와 같이 1980년에 시작한 '현실과 발언' 동인이었다. 1984년 6·25를 주제로 전시를 하기로 했는데, 작품을 만들기 전 동인들은 6·25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던 동두천 미군 기지를 답사하기로 했다.

동인들 대부분이 화가인지라 기지촌의 분위기만 보고 머리속으로 구상만 했는데, 김용태는 달랐다. 미군들을 상대로 사진관에 내걸린 희한한 사진들을 주목했다. 미군들은 벌거숭이 육체미를 과시하며 한반도나 DMZ가 그려진 배경 스크린 앞에서 팬티 바람에 사진 찍기를 좋아 했다. 정말 다양한 그림을 배경으로 별의별 야한 포즈가 다 있었다.

그는 이런 사진들을 수집하여 <현발>의 6·25 역사전의 한 벽면을 DMZ이라고 꼴라주해 붙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김용태의 수집 사진은 미8군 영내에 어찌어찌하여 초대되어 전시되었는데, 미8군 사령관이 이를 보고 노발대발하여 그 다음부터 이런 사진을 수집하기가 어려워 졌다고 한다. 김용태의 수집 사진은 그 다음해에 미국의 <민중 미술전>에 초대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수집 사진의 효시였다.

김 관장의 할아버님께서 모아두셨던 옛 문서들도 함께 전시 중이었다. 이러한 문서들이 모여서 하나의 역사를 이룬다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흔히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려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모아 마을마다 마을 공동체 박물관을 만드는 것을 꿈꿔본다.
김지연 씨의 사진 작업 중에는 이런 수집 사진 말고도 사라지는 것들을 미리 찍어 놓은 정미소, 이발관, 구멍가게 시리즈들이 있다. 그 중에 백미는 '이발관' 시리즈다.

그녀는 전국에 있는 상당히 많은 오래된 이발관들을 찾아다니며 찍고 기록했다. 이발관을 배경으로 그 앞에 이발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자기 이발관의 역사를 증언하듯이 서있다. 대부분이 나이들이 지긋하게 들어 보인다. 이 이발관들은 언제 사라질 줄 모른다. 또 이런 이발관을 운영하는 이발사들은 언제 대가 끊길 줄 모른다. 아마도 이 이발사들 다음엔 틀림없이 대가 끊기고 이발관은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빨강 파랑 띠가 섞여 뱅뱅 돌아가는 이발관 표지 사인과 함께.

김관장은 이 정미소 공동체 박물관을 구입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농촌에 있는 정미소라 싼 줄 알고 덤볐다가 싸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의 정미소가 땅 주인과 건물의 임자가 다르거나 마을에서 공동 출자를 해서 임자가 여럿인 경우가 많아 애를 먹다가 겨우 이 계남정미소를 얻었다고 한다.

정미소 박물관 안에는 전에 쓰던 기계들이 마치 설치 미술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놓여 있고, 그 주위를 홀처럼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쪽으로도 자그마한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수집 사진 작품들이 대부분 작아 전시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녀는 전시만이 아니고 도록을 겸한 관련 책들을 정성스럽고도 꼼꼼하게 잘 만든다. 도록에다 글도 쓰고 편집도 손수 한다. 사진에 캡션을 달고 전시 기획과 디스플레이도 일일이 자기가 다 한단다. 만능 선수다. 그 동안 몇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왔었다가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우리와 자리를 같이 한 이 마을의 귀농인 강민경 씨가 미술관 관리부터 모든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남편이 서울대 조경학과를 나왔다는데 이 부부는 거의 무소유의 삶을 산다고 한다. 이 전시장의 구조를 작년 여름에 바꿨는데 그것도 다 이부부의 도움이었다고 한다. 과연 '공동체 박물관'답다.

전시실 안쪽 작은 방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관장은 어릴 적 추억들을 멜랑꼴리하지않게 기록물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녀는 정미소과 이발소 등 사라져가는 공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왔다. 오는 7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는 다른 공간이 주제라고 하는데, 이번엔 또 어떤 곳일지 궁금하다. 가운데가 김지연 관장.

그녀는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민속 인류학자 같다. 현장을 중심으로 발품 팔아가며 뛰는 모습이며, 사진과 옛날 기록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모습이나 영락없는 민속 인류학자다. 그의 멘토는 나도 잘 아는 사진 아카이빙의 전문가 이경민인데, 그가 많은 힘을 보탠다고 한다.

그녀는 올 7월에 서울의 쿤스트독이라는 화랑에서, 점점 대형 마트 등에 밀려 없어지는 '구멍 가게'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나는 그 전시회에 꼭 간다고 약속했다. 그녀의 이런 소중한 작업과 활동이 지역만이 아니라 서울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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