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사업을 쇄신ㆍ개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그간 관리ㆍ감독을 소홀히 해왔던 정부가 직접 혈액 사업 쇄신ㆍ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혈액 사업, 적십자사에만 맡겨서는 안 돼"**
적십자사의 혈액 사업을 감시ㆍ비판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온 건강세상네트워크가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고 향후 혈액 사업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혈액관리의 총체적 부실,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28일 저녁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적십자사의 혈액 사업이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 <문화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의 보건복지 담당기자는 질병관리본부의 말을 인용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률은 아주 미약하니 수혈 받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 없고, 감사원 감사도 사실을 부풀린 곳이 있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면서 "이 기사들이 이번에 발생한 혈액 사업의 문제를 알고 보도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일부 언론의 적십자사 혈액 사업에 대한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강주성 공동대표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바로 기자들이 얘기한 것처럼 그렇게 '낮은 감염위험'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감염자가 발생하는가'에 있다"면서 "실제로 지난 1999년 1차 검사에서 AIDS 양성판정을 받은 헌혈자유보군(DDR)이 진양성 판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2차례나 수혈용으로 출고됐으며, 채혈을 하지 말아야 할 B형 감염 양성자의 혈액이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11차례나 채혈되고, 그중 1번은 음성 판정돼 수혈용으로 출고되기도 했다"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례들을 고발했다.
강 대표는 "이런 현실 때문에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ㆍ사회단체들의 비판도 혈액 사업을 독점해온 적십자사의 안이한 태도와 부도덕성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혈액 사업을 적십자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계기로 대안 마련에 나설 때"라고 지적했다.
***"혈액 사업의 최종 책임은 국가가 져야"**
다음 발표자로 나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영자 박사도 혈액 사업의 쇄신ㆍ개혁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한영자 박사는 "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00년에 혈액 사업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1980년 초와 1995년에 지적된 문제들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 혈액 사업이 도마에 오르는 것을 보니 지난 3년 동안도 개선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적십자사와 보건복지부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했다.
한영자 박사는 "외국의 경우 혈액 사업은 국민에게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 때문에 대부분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있으며, 사업을 위임할 경우에도 최종 책임은 정부가 지는 게 보편적"이라면서 "적십자사에 위임했기 때문에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영자 박사는 "혈액원을 적십자사와 실질적으로 분리, 독립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외국의 경우에는 적십자사가 헌혈 캠페인 업무를 전담하고 혈액 사업은 국가의 감시ㆍ감독과 내ㆍ외부의 감시 체제를 철저히 갖추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적십자사에서 재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한진단검사의학회 황유성 박사도 보건복지부 등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황유성 박사는 "지난 1백여년간 세계 각국이 혈액 사업을 추진하면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결론은 ▲정부가 혈액 사업의 큰 방향과 정책을 수립하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부, 의료기관, 사업자, 언론, 헌혈자(시민), 환자 등이 참여해 의견을 직접 반영하고, ▲혈액 사업을 할 때는 국가의 관리ㆍ감독, 조직 내ㆍ외부의 감시 체계를 확립하라는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가 혈액 사업 쇄신ㆍ개혁을 위해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3월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직후 국무총리실 산하에 혈액안전관리체계 개선기획단을 구성하고, 혈액 사업에 대한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부의 행위가 또 한 차례의 요식행위로 머무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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