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 기획위원회'는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에 대한 처리방안을 발표했다. 일부 보는 철거하고 일부는 상시개방을 권고한 것이다. 지은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댐을 철거하다니,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유례없는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애초 용도가 없는 댐을 16개나 만든 일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4대강 자연성회복 위한 거버넌스 시작
2017년 장미 대선이 끝나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전 대통령의 탄핵 후 탄생한 정부였기 때문에 인수위원회를 꾸리지 못하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운영했다. 당시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의 면담을 통해 대통령 산하에 4대강복원위원회를 꾸리고 2018년 수문개방을 위한 예산을 즉각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물 관리 일원화 법안 통과와 지방선거 등을 이유로 위원회 구성과 예산 편성을 한참이나 미뤘다. 결국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뒤인 2018년 11월, 환경부 내에 수문개방과 모니터링, 보 처리방안 마련을 지원하는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이 꾸려지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40여 명 규모의 '전문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장은 조사평가단의 홍정기 단장과 전문위원회의 홍종호 교수가 민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전문위원회는 보 처리방안이라고 하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평가체계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수질과 수생태, 수리, 수문, 사회, 경제, 거버넌스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보가 없을 경우 수질과 수생태계, 하천의 홍수와 가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보 구조물은 안전한지, 보를 해체하는 것이 과연 더 경제적인 선택인지를 검토했다.
홍종호 위원장은 전문위원회 위촉식에서 위원들에게 "역사적 책임감과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합리적인 논의를 충분히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4대강사업이 첨예한 갈등으로 국론을 분열시켜온 만큼, 위원회는 국민들을 충분하게 납득시킬 만큼 매우 보수적인 접근을 해야만 했다.
모든 분과의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필자가 참여한 수리수문분과의 경우, 많은 위원들과 담당 공무원, 국책연구기관, 분야별 연구 용역팀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모여서 하루 종일 이어지는 학술적인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치열한 위원회가 또 운영될까 싶을 정도로 성실하게 운영되었다. 또한 환경부는 16개 보마다 민관협의체를 꾸려서 농민, 어민, 환경단체, 지역주민, 전문가 등 각 이해당사자들을 모았다. 보별 협의체마다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애초부터 잘못 설계된 4대강 보
지난 2월, 4대강조사평가단 전문위원회는 4대강 중에서 우선 금강과 영산강 5개 보에 대한 경제성을 평가했다. 경제성 평가는 사업을 추진할 때 비용(cost)보다 편익(benefit)이 큰지를 확인하는 과정인데, 비용보다 편익이 상대적으로 크면 이른바 '경제성이 있는 사업'이다. 전문위원회는 세종보와 죽산보 해체, 다리로 이용되는 공주보의 부분해체, 백제보와 승촌보의 상시개방을 보 처리방안으로 제시했다.
보 해체라는 사업에는 직접적인 해체 비용과 수위 저하에 따른 물이용 대책 비용, 물활용성 감소 불편익, 공도교(다리) 해체에 따른 교통시간 증가 불편익, 소수력발전 중단 불편익 등이 비용(cost)으로 산정되고, 수질 및 생태 개선, 친수 활동 증가, 홍수조절능력 개선 편익, 보 유지관리비용 절감 등이 편익(benefit)으로 고려되었다.
수리수문분과와 경제성 평가 연구팀 사이에서는 양수장과 취수장, 관정에 대한 조정 비용을 보 해체비용에 반영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천설계기준과 농어촌시설정비기준에 따르면 '가동보를 전부 개방해서 최저수위가 되더라도 양수장 등의 시설이 운영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4대강사업 당시 이 설계 기준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즉, 가동보 수문을 열어서 조금만 수위가 낮아져도 취양수시설이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취양수시설이 수표면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보에 가둔 많은 물이 사실상 수자원으로서의 의미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리수문분과는 이 부분이 4대강사업 당시의 하자라고 판단했다. 보에 물을 가둔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설계 기준에 맞게 취양수장을 다시 공사해야 하기 때문에 보 해체에 대한 비용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4차 감사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결국 경제성 평가 최종안에는 취양수장 조정에 따른 비용이 반영되었다. 취양수장을 다시 바꾸는 공사는 아직 지출되지 않은 예산이므로 기존 4대강사업에 대한 하자보수 개념보다는 앞으로 수문개방에 따른 비용으로 보는 것이 시민들이 보기에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매우 보수적인 결정이다. 만약 이 정도로 보수적인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해체되는 보의 숫자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보가 없으면 농사가 망한다는 가짜뉴스
보 처리방안이 발표되자 정치적 공세가 시작되었다. 보 해체에 대한 핵심문제로 제기된 것은 농업용수에 대한 부분이었다. 실제로 백제보 대책위나 낙동강 광암뜰의 경우 수문을 열고 수위가 낮아짐에 따라 관정이나 양수장에 영향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보에 물을 가두면서 이용할 수 있는 물이 많아진 것은 아니지만, 수위가 높아지면서 취수가 용이해진 시기에 새로 만들어진 관정이 매우 얕은 깊이로 개발된 것이다. 이 경우 보 수문이 열리면 즉각적인 영향을 받았다. 환경부는 농민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농업용수 공급대책을 만들어나갔다. 백제보 대책위는 2년에 걸쳐서 협의와 공사를 진행했고, 올해에는 백제보까지 수문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농업용수 문제는 취수방식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에 충분히 해결 가능한 과제였다.
그런데 좀 다른 농민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농사를 지으려면 공주보에 반드시 물을 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4월 MBC <피디수첩>의 보도('4대강, 가짜뉴스 그리고 정치인')에 따르면, 공주보가 개방된 이후에도 농업용수의 부족함 없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4대강 본류가 아닌 지류에서 물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역구 보수 정치인과 결합해서 정치적인 공세를 이어갔고, 그들의 근거 없는 주장은 최소한의 검증조차 없이 수많은 언론에 보도되었다.
특히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조선일보>는 수년 전 경작하다가 수확하지 않은 채 버려진 밭을 마치 보 개방 때문에 농사를 망친 밭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최소한의 보도윤리를 져버린 것이다. 근거 없는 주장과 보도는 다시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는데 이용되었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역시 가짜 뉴스에 편승했다. 공주보에서 가짜 농업용수 논란이 불거지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정섭 공주시장과 시의회가 보 해체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 세종보 역시 마찬가지다. 세종보는 이미 수문을 연 지 1년도 넘은 상태로 수질은 크게 개선되고 흰목물떼새와 흰수마자가 돌아오고, 보 구조물만 생뚱맞게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런데 환경부가 세종보 해체 방안을 발표하자 갑자기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지역주민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소속 이춘희 시장과 의회도 이를 거들고 나섰다. 민주당의 이 같은 기류에 대해서 중앙당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가짜뉴스에도, 시민들은 보 처리방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쿠키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 해체 방안에 대해서 전체 또는 일부 해체 찬성이 64퍼센트로 나타났다. 또한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전문여론조사기관인 (주)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한 설문조사(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19년 4월 17일부터 2019년 4월 22일까지 진행, 표본오차는 ±3.1%p)에서도 환경부 보 처리 방안에 대한 찬성 여론은 80퍼센트 수준이었다.(☞ 관련 기사 : 4월 3일 자 '국민 64% 4대강 보 전체·일부 해체…반대 25.6%')
앞으로 과제가 산적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방안은 이제 국가물관리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새로 제정된 물관리기본법에 의해 지난 8월 구성된 국가물관리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중에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방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금강과 영산강에 대해서 보 처리방안 원안을 가결한다면, 이후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이번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한강, 낙동강 11개 보에 대한 처리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 2018년 낙동강이 수돗물 정수 중단 위기까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보 처리방안보다도 무조건적인 보 개방이 더 시급할 수도 있겠다.
행정적인 절차 외에 정치적 동력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4대강 자연성 회복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인 국정과제이며, 20대 국회 민주당의 정당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 4대강 복원을 위해서 뛰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민주당 내 환경 비례대표가 전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4대강 국정과제에 대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여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진정성 있게 이 이슈를 선도하는 여당 의원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2006년 환경부가 곡릉천 공릉2보의 시범해체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10년 뒤 같은 자리를 찾아가 본 현장은 안내판이 없었다면 보가 있었던 자리를 찾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강변에 구조물을 뜯어낸 자리에는 버드나무 군락이 자리를 잡았고, 강바닥도 전혀 낌새를 찾을 수 없었다.
4대강 보 역시 해체된다면, 언제 그 자리에 보가 있었냐는 듯이 지금의 한바탕 소동도 잊히게 될 것이다. 반면 해체되지 않고 남겨진 보는 아주 오래 우리 곁에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는 그때 왜 해체하지 못했는지 원망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2019년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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