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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최지우가 수놓는 일본 TV…한국서 답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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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최지우가 수놓는 일본 TV…한국서 답 찾겠다?

[김성민의 'J미디어'] '한국 배우기' 열풍이 흐뭇하지만은 않은 이유

"너희 나라에도 음악 시디가 있니?"

1990년,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전 한 일본인 친구는 필자에게 그렇게 물었었다. 물론 악의는 없었다. 단지 그 어린 친구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매우 낯선 존재였던 것 뿐이었다.

많은 평범한 일본인들이 그랬다. 서울올림픽, 조용필, 김치…따위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한국은 오랫동안 그와 그녀들에게 잘 모르거나, 혹 알더라도 별다른 좋은 감정이 없거나, 좋은 감정이 있더라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는, 그냥 물리적으로 가까울 뿐인 나라였다.

침체된 일본 "한국은 왜 강한가"

▲ 전쟁 이후 한일 민간 관계는 겨울연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겨울연가가 전파를 타고 있다. ⓒKBS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서, 잠시 후 지상파 채널인 <후지 TV>에서는 한국 드라마 '태양의 여자'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대에 역시 지상파 채널인 <TBS TV>에서도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겨울연가' 재방송이 전파를 탔다.

김연아와 최지우와 김지수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는데, 격세지감이란 말을 바로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올림픽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불을 붙인 것은 올림픽이었지만 그 대상은 스포츠만이 아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한국팀'의 선전이 때마침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대비되면서 '한국은 왜 강한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각종 미디어는 앞다퉈 한국을 배우라고 주문하고 나섰고, 일본 정부는 아예 경제산업성 산하에 이례적으로 '한국실'을 설치, 한국 기업에 대한 리서치를 맡기겠다고 한다.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하던 한국이 몇 년 전엔 한류라는 문화 현상을 통해 누구나 잘 아는 나라가 되었다면, 이제는 적지 않은 분야에서 싫던 좋던 배워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국가' 추켜세우는 불안한 광풍

그런 변화를 지켜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 특히 일본에서 오래 생활해 온 사람들이 기뻐하고 흐뭇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떤 이는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달라졌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요즘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때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최근 일본의 한국 배우기는 어딘가 이상하다. 답을 구하는 방식이 그렇고, 답으로 간주되는 것들이 그렇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가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 직후 일본의 미디어는 한국팀의 금메달 14개와 김연아 선수의 228.06점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연일 그 분석으로 분주했다.

엘리트 스포츠 교육, 부모들의 교육열, 군면제나 연금 같은 당근책, 기업들의 지원, 한국인 특유의 승부욕, 거기에 스태미나에 좋은 한국 음식까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단골 메뉴들이 줄줄이 올라오는 가운데 그들이 내린 결론은 결국 '국가' 였다.

한국이 강한 것은 국가가 나서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일본이 다시 강해지기 위해서는 한국처럼 국가가 나서서 선수들을 키우고, 국가가 나서서 큰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김연아 선수의 완벽한 연기가 마치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겨울 스포츠의 저변이나 생활 스포츠 환경의 양과 질 측면에서 뛰어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일본이 단지 올림픽의 메달 수만으로 마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며 국가가 나설 것을 주문하는 데에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이래저래 좌절을 맛보고 있는 일본에 '한국 배우기'를 부추기는 존재가 됐다. ⓒ연합뉴스

"왜 이겨도 행복하지 않나"

그러나 당장 태릉선수촌이라도 옮겨올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올림픽에서 이겨야만 스포츠 강국인가',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기기만 하면 좋은 방법인가' 등이 질문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정작 한국에서는 소수의 엘리트만을 길러내는 스포츠 교육이나 스포츠에 투영되는 지나친 국가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분야 역시 다르지 않다. 대기업 중심 문화, 정치인의 리더십, 교육제도, 외모지상주의 등등 한국 내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며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을 단지 (경쟁에서) 이긴다는 이유로 부러워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있자면 기뻐하고 흐뭇해하고만 있을 수가 없다. 지금 일본이 한국에 던지고 있는 물음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가'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로 바꿔보면 어떨까. 그래도 한국은 일본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실업률, 자살율, 빈곤율, 빈부격차 등 몇몇 수치만 놓고 보아도 한국과 일본은 답을 주고 받을 처지가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올림픽에서 메달을 쓸어담고 소수의 대기업이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우리는 충분히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본의 한국 배우기의 긍정적인 측면,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아니 있다. 이미 수도 없이 이겨본 일본이나 한참 이기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한국이나, 이제는 과거와 다른 동등한 관계에서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공통의 물음을 가질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이 진정 구해야 할 답은 어쩌면 그 질문에 있는지도 모른다.

"왜 이겨도 이겨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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