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최종길 서울대 법대교수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의해 고문도중 살해된 뒤 자살로 조작됐다는 전 중정 직원의 최초의 법정 증언이 나온 데 대해 국정원이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 유가족 등 관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정원의 궁색한 해명**
국정원은 최교수 사건 당시 중정 제5국 공작과장이던 안모씨의 법정증언이 나오자마자 18일 오후 '최종길 교수 사망사건 관련 국정원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최종길 교수 사망원인의 정확한 실체적 진실 여부를 떠나 동 사건이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유가족을 비롯,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사과했다.
국정원은 그러나 이어 "국정원이 현재 보존하고 있는 문서로서는 최 교수의 사인을 밝히기에 부족하고, 이미 31년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이 오래 전에 퇴직 또는 사망한 관계로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매우 안타깝고도 답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따라서 "최 교수 사망사건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국정원 스스로 명쾌하게 밝히지 못하는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현재 법원에서 진행중인 재판 결과를 겸허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즉각 유가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교수의 장남은 19일 KBS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안녕합시니까 강지원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고문당사자가 아직 생존해있다"고 국정원의 해명을 일축한 뒤 "유족들이 알고자하는 것은 어떻게 고문을 받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며, 의식불명 상태의 아버님을 떨어트려 자살처럼 조작했는가 여부"라고 국정원의 분명한 진상 고백을 촉구했다.
국정원 해명처럼 문서나 증인 부족때문에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국정원의 '내 식구 감싸기'가 주요인이 아니냐는 반박인 것이다.
***국정원, 어두운 과거 때문에 전전긍긍**
국정원은 현재 최종길교수 타살사건외에도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는 과거 중정 또는 안기부시절의 불미스러운 역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국정원을 곤혹케 만들고 있는 사건은 최종길교수 살해사건외에도 안풍사건, 실미도사건, KAL기 폭파의혹, 장준하박사 의문사 등 수두룩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어두운 과거가 새롭게 태어나려 애쓰는 국정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며 "과연 이들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대응해야 할지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예로 최근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실미도>를 보면 중정이 부대원 살해지시를 내린 것으로 돼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그렇다고 해서 일일이 대응을 하자니 그렇고, 그냥 있자니 영화내용이 그대로 사실인 양 국민에게 각인될 것 같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현재 방침은 지난해 수지 김 사건의 경우처럼 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나온 뒤에나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두운 과거는 과감한 진상규명만이 해법**
그러나 국정원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종길 교수사건처럼 이미 당시 직원의 증언까지 나온 명명백백한 사건에 대해서까지 아직까지 국정원이 문서 및 증인 불충분 등의 궁색한 이유를 들어 진상고백을 기피하고 있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 눈총이다.
최근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입증하듯, 어두운 과거는 과감한 진상규명을 통해 청산돼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 감추고 싶은 과거의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고 그 결과 과거 중정직원들의 이름이 공개화되는 일들도 생기겠으나, 최교수 등 수많은 의문사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의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아울러 미국에서 채택하고 있듯 1급 비밀문서라 할지라도 30년이 지나면 반드시 자료를 일반에게 공개토록 하는 엄격한 '정보공개법'을 도입하는 제도개혁도 병행돼야 한다는 게 인권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이럴 때에만 역사의 준엄성을 인식, 평상시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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