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정부 때 정말 어이없이 해직돼 누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한동안 분신을 생각할 정도로 시쳇말로 ‘개고생’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명박 정부 때 쿨했다”는 발언에 귀를 의심했고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 총장의 이 발언은 거의 모든 언론에서 “MB 때가 가장 쿨했다”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 물론 윤 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MB정부가 가장 중립적이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MB정부부터 순차적으로 말하면서, 현 정부에서는 과거와 달리 법무부 보고도 하지 않고 있고, 청와대에서 구체적 사건처리에 대해 일체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려 했지만 다른 질문이 이어지며 답변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정부 시절 부당한 검찰 수사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다”는 표현은 마치 ‘이명박 정부 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가장 잘 보장됐다’는 소리로 들려 큰 충격과 함께 깊은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쿨하다[cool--]’는 ‘꾸물거리거나 답답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다’라는 뜻이다. 과연 MB정부 시절 검찰이 이랬을까? 오히려 반대가 아니었을까? 윤 총장은 “MB 때가 가장 굴했다”고 하려다 잘못 발음한 것은 아닐까? ‘굴하다[屈--]’는 ‘맞서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나 주장을 누그러뜨리거나 철회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MB 때 검찰은 굴하다 못해 비굴했다. ‘비굴하다[卑屈--]’의 뜻은 ‘(사람이나 그 언행이)겁이 많고 줏대가 없어 떳떳하지 못하다’이다.
어미늑대 잡는 방법으로 노 전 대통령 잡은 MB정부 때 검찰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시절을 ‘검찰 전성시대를 열었던 가장 추악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실제로 외환위기를 은폐하려 미네르바를 구속했던 일을 비롯하여, 정연주 KBS 사장과 PD수첩 수사, 용산참사와 민간인 불법사찰, 그리고 고 장자연씨 사건 등 MB 정부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제1기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검찰의 과오로 꼽은 17건의 사건 중 7건으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았다.
참여연대도 ‘MB 5년 검찰보고서’를 통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나서서 대통령의 뜻을 받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허물어뜨리기도 하고, 검찰 스스로 살아 있는 권력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 5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고통을 받았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무지막지한 권력에 참혹하게 인격살해를 당했다”고 토로했고, 한학수 피디는 “윤 총장이 쿨하다던 시기에, <PD수첩> 피디들과 작가들은 체포되고 수갑을 차야 했다”며 “당신의 쿨함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검찰의 문제점은 가장 큰 문제점은 ‘영혼 없는 이중 잣대(편향성)’이다. 즉 막강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틀어쥐고 철저하게 권력·금력 편에 붙어 기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공정성과 형평성은 일찌감치 집어던지고, 전관예우·유전무죄 원칙에 입각하여 살아있는 권력과 재벌 등 있는 자들에게는 면죄부, 또는 솜방망이 수사와 기소로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고,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과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먼지털이식 수사, 별건 수사, 피의사실 공표로 망신주기 수사 등을 통해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하게 수사하거나 아예 개돼지 취급하여 거의 투명인간 취급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을까?
MB정부 시절 검찰을 떠올리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주변사람들에 대해 먼지털이식 수사에 나섰고, 피의사실 공표와 논두렁시계로 대표되는 언론보도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을 한껏 망신주고, 압박해 끝내 벼랑 끝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대통령 인기가 오르자, 자기 주머니에는 바윗덩어리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현미경을 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지 속에 있는 먼지를 찾기 시작했다. 뒤지고 또 뒤지자, 드디어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측근들을 잡아들이고, 가족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연일 언론과 손잡고 노전 대통령을 부도덕한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다. 국민들도 덩달아 분노와 배신감을 드러내며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입장에서는 해명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빠지자, 당초 법적 투쟁을 하겠다던 생각을 접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진 것으로 보인다. 구차하게 살 것인가? 깨끗하게 죽을 것인가? 고심하고 또 고심한 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어미늑대의 선택이 떠오른다. 유목민들이 어미늑대를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참 치졸하고 잔인하다. 어미늑대의 모성애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기에.
먼저 늑대 굴에서 새끼늑대를 잡아와 집 근처에 묶어둔다. 새끼늑대가 신음소리를 내도록 성기부분을 끈으로 동여매 오줌을 누지 못하게 한다. 어미늑대는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잡힐 것을,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차마 새끼늑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새끼늑대에게 다가간다. 그러다 그만 사람들이 만든 덫에 걸려 꼼짝없이 죽고 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도 어미늑대처럼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그들을 핍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사학비리 공익제보자가 경험한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
10년 전 나는 대표적인 비리사학인 서울 양천고의 급식·시설비리 등 사학비리를, 힘없는 학생들을 대신하여 교육청에 공익감사 요청했다가,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해직 당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공익제보한 사안에 대해 2008년 5월 서울시교육청이 감사했다. 그러나 당시 비리사학과 한통속이었던 교육청(공정택 교육감)은 소소한 것 몇 가지만 지적하고 정작 급식·시설비리 등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에 불복해 전교조 서울지부가 양천고 구성원을 대신해 검찰에 고발했다. “교육청과 경찰은 못 믿어도 그래도 대한민국 검찰인데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의 밥값’은 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믿는 도끼가 발등 찍는다 했는가? 최소한의 밥값은커녕 결과적으로 검찰은 한술 더 떴다. 서울남부지검은 이 사건을 양천경찰서 경제팀 통해 겨우 ‘고발인 조사 1회’ 하고 서둘러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어떻게 수사다운 수사 한번 안하고 비리사학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검찰관계자는 “MB 정부에서 어떻게 전교조가 고발한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고발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수사여부를 결정하는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편향성의 극치)’을 극명하게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멀쩡한 학교를 문제 삼은 셈이 되어, 2009년 3월 9일 어이없이 해직됐다. 내 부당한 파면에는 3자의 잘못이 있었다. 첫째는 교육기관답게 학교를 운영하지 못한 상록학원 양천고, 둘째는 사학비리를 지도·감독하기는커녕 한통속이었던 서울시교육청, 그리고 제대로 된 수사 한번 하지 않고 확인 사살한 남부지검이었다.
사학비리는 학생들의 꿈을 훔치는 중대한 도둑질이다. 이에 교육자적 양심으로 도둑을 신고했더니, 검찰은 도둑을 잡기는커녕 신고자를 파면하도록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9년 3월 10일부터 나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또한 양천고 사학비리 수사 촉구를 위해 1인시위에 돌입했다. 학교 앞에서, 교육청 앞에서, 검찰청 앞에서.
1년 넘게 계속되는 1인시위에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어 120회 정도 크고 작은 보도를 했다. 전교조가 고발해 수사할 수 없다고 하여, 양천고 졸업생·학부모, 그리고 시민단체가 연합해 3백 쪽이 넘는 분량으로 다시 고발했지만 여전히 수사하지 않고 있었다.
사학비리 공익제보자인 내가 경험한 검찰의 진면목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없이 길어질 것 같아 떠오르는 기억 몇 가지만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남부지검 박모 수사관에게 속된 말로 개무시당하며 태어나서 가장 모욕적인 말을 들었던 일 △검찰청 앞에서 분신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 대통령이 서거하신 일 △나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지인들이 “일국의 대통령이 죽어도 바뀌지 않는 세상인데, 선생님 죽으면 개죽음이다. 누구 좋으라고 죽느냐? 차라리 그 죽을 각오로 끝까지 싸워보자!” 그렇게 설득하는 바람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고 말겠다!”는 심정으로 임했던 일 △1인 시위가 13개월 넘어서자, 정모 검사가 나와 1인시위를 그만해 달라고 사정함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 수사다운 수사하겠다는 약속받고 1인시위를 중단 △2010년 6월 선거에서 내가 교육의원에 당선되자 그제야 양천고 사학비리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검찰 △교사채용비리 및 금융·부동산 차명을 통한 위법혐의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요구했지만, 진보성향의 사람에게는 이메일 추적,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 가리지 않고 수사하면서 ‘별건수사’라는 이유로 끝내 수사하지 않은 일 △상록학원 정모 이사장이 급식비리 등으로 모두 구속될 것이라 믿었지만,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자 불구속했던 일 △왜 구속하지 않느냐고 묻자 차마 전관예우·유전무죄의 힘이라는 말은 못하고, “나이든 사람을 어떻게 구속하느냐? 구속했다가 잘못되면 책임질 것이냐”고 호통치던 검사 △반대로 학교측이 수위아저씨 통해 나를 고소하자, 허위진단서 및 무고임을 잘 알면서도 “살펴보니 김 의원은 곽 교육감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 봐줄 수가 없습니다. 억울해하지 마시고 벌금 백만 원 내고 끝내시죠?” 라고 선심 쓰듯 내뱉던 고검의 원모 검사 △1인시위 중 수위아저씨 폭행했다는 죄를 벗기 위해 재판했고 피가 마르는 소송 끝에 마침내 혐의를 벗었던 일...
검찰, 병아리로 거듭날 것인가? 달걀프라이로 전락할 것인가?
의사가 수술할 때 무균 상태의 가장 깨끗한 칼을 사용하듯, 검찰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깨끗하고 공정한, 정의 실현의 칼’이어야 한다. 이것이 선출직도 아닌 검찰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이유이다. 그러나 MB정부 시절 내가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한 바로는 검찰은 검찰이기를 포기한 ‘썩은 내 진동하는 조폭집단’ 같았다. 정의 실현은 오간데 없고 간·쓸개 다 내어놓고 힘 있고 돈 있는 사람 편에 붙어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을 치졸하고 잔인하게 괴롭히는 정권의 시녀, 금권의 하수인이요, 일제 강점기 순사 같은 망나니였다. 오죽하면 ‘검사외전, 더킹, 피고인, 김과장’ 등 한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찰이 대표적인 풍자의 대상이었을까?
난 처음에는 검찰의 행태와 속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겨우 이렇게 한심한 검사노릇하려고 그토록 고시촌에 틀어박혀 머리에 쥐나도록 공부했을까?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다는 말처럼, 범죄와 싸우다 어느 순간 무감각해져서 어둠의 소굴 안에 갇혀버린 것일까? 머리 좋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왜 ‘대한민국 검사 선서’를 그렇게 쉽게 까먹은 것일까? 아니 왜 헌신짝 버리듯 ‘초심’과 ‘소명’과 ‘명예’를 내팽개친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 내는 용기있는 검사,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그러다가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겨쳐 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런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검찰 출신 이연주 변호사가 “검찰 조직 문화는 검찰 스스로가 못 바꾼다.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말에 열 번 백번 격하게 공감한다. “선배가 부탁하고 그러면 잘 봐줄 수도 있는 거지 왜 그러냐?”라고 말하는, 자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말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전관예우 관행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랴.
국민들은 이제 더는 참고 기다리지 못하겠다며 서초동에 이어 여의도까지 나가 검찰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달걀은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밖에서 깨면 달걀프라이가 되고 만다. 대한민국 검찰은 멋진 병아리로 새롭게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달걀프라이로 전락할 것인가? 국민들의 거룩한 분노와 명령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은 가장 낮은 자세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