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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서 활짝 핀 '부마민주항쟁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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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서 활짝 핀 '부마민주항쟁 기억하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역사적 위상 제고ㆍ민주주의 발전 모색

"부마항쟁에서 보여준 저항과 투쟁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하고 계승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경남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17일 경남대학교 창조관 평화홀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국제학술대회'에서 학자들은 이렇게 정의하면서 성황을 이뤘다.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이 개회사를 하고있다. ⓒ프레시안(조민규)
이번 학술대회는 '1979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총 2세션으로 마산과 부산에서 열리며 우리나라와 해외 민주화운동 사례를 고찰하고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 제고와 향후 민주주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남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 첫날에는 문승욱 경제부지사를 비롯해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홍순권 부마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과 국내·외 교수 및 민주화운동 관련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개회사에서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드디어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며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송 이사장은 "앞으로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조사가 잘 진행되어 부마민주항쟁의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기를 고대한다"고 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 과정에서 헌신한 분들에 대한 마땅한 자리를 찾아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축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은 마산과 부산의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자랑스런 역사이다"며 "부마항쟁이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함께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민주 인권 평화의 부마정신은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나아갈 길을 일깨워 왔으며 민주화 운동의 힘이 되었다"면서 "그 힘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를 상식으로 여기는 세대가 자랄 수 있었고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은 "부마항쟁은 두 측면에서 그 의의와 위상을 평가하고 싶다"며 "이곳 마산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긴 역사적 흐름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역사운동이다"고 정의했다.

또한 안 원장은 "한국민주주의 발전과 성장을 가져온 민주화운동사에서 선도적인 문제 제기와 전국적 규모로 확산시킨 정항 투쟁의 위상이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1960년 4월 마산의거와 1979년 부마항쟁은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지난날 부마항쟁은 도무지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불가능해 보이던 박정희 유신독재를 무너뜨렸다"면서 "우리 역사는 부마항쟁으로 긴 독재의 세월에서 시간을 크게 단축해 빠져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은 "항거와 투쟁으로 이룩하는 역사발전의 동력을 부마항쟁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고 하면서 "10.26사건이나 전두환 등의 신군부 등장으로 부마항쟁의 성과와 의의가 축소될 수 없를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특히 박정희 공업화 발전모델에 내포된 모순들의 발현으로서의 위기가 부마항쟁을 발발을 가능케 한 경제적 배경을 밝히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라 서익진 경남대 교수는 "박정희 개발독재 발전모델이 작동할수록 그 속에 내포된 모순들은 누적되고 모델은 위기에 빠진다"고 규정했다.

즉 그 축적체계는 역동성을 상실하고 조절양식은 비효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1975년에 도입된 방위세와 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내 민중의 부담이 증대되는 속에서 1997년 4월 경제안정화 대책이 불황의 부담을 민중에게 전가하자 누적된 불만은 분노로 바뀌었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서익진 교수는 "유신체제의 탄압과 저항의 강화 과정속에서 부마 지역의 대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를 조직하자 민중은 이에 즉각 적극적으로 호응함으로써 생존권 보장까지 요구하는 민중민주항쟁으로 발전시켰다"고 피력했다.

소위 이 항쟁은 박정희 시대와 그의 공업화 발전모델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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