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분단된 지 60여 년이 흘렀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삼으니 분단된 지 두 세대가 훌쩍 넘은 것이다. 분단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더 많다. 북쪽과 왕래하고 교류하는 것보다 적대시하고 단절된 상태가 더 익숙하다. '통일 이후'는 기대보다는 두려움을 준다. 경제적 격차부터 정치체제의 차이, 문화적 단절 등. 이런 상황에 통일이 꼭 필요할까. 만약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보다 앞서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을 살펴본 책이 나왔다. <환상 너머의 통일>(숨쉬는 책공장 펴냄)은 <프레시안>의 이대희, 이재호 두 기자가 지난 해 연재한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를 보완해 책으로 엮은 것이다. '통일'의 막연한 환상도, 두려움도 걷어낸다. 대신 통일 이후의 당사자들의 '삶'을 담담히 들여다본다. 서구 정치인들의 시각이 아닌 동독 주민의 삶을 통해 또 다른 독일 통일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남북한 주민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외에도 국내외 통일 전문가, 북한 이탈 주민 등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우리가 말하는 '독일 통일'은 정확히 말하면 '독일 재통일'이다. 독일 통일은 1871년 프로이센 제국에 의한 독일 제국 성립을 말한다. 이 책에서는 '재통일'이라고 표현한다.
2019년 10월 3일은 독일 재통일 30주년이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는 시작일 뿐, 독일은 아직 재통일의 과정 중에 있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동서독의 통일은 서독의 일방적인 흡수통일로 완성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동독 내에 독재에 저항해 민주화 운동의 일어났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동독의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유와 민주화를 갈망했다. 그러나 동독 사람들이 원한 '자유'는 '통일'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통일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했고 사회는 이들을 충분히 보듬지 못했다.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는 극우화 바람, 그 기저에 깔린 동서간 격차, 높은 실업률과 해체된 공동체, 동독 출신들의 좌절감은 이런 맥락에 이어진다. 2015년 독일 재통일 25주년을 맞아 독일 공영방송 ARD의 보도 제목은 '하나가 되었으나 결코 같아지지는 않았다'였다. 한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독일 재통일 후 독일 사회는 내부 식민지화를 이뤘다. 옛 서독인과 옛 동독인, 그리고 이민자와 난민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계층이다.
분단 이전에 태어나 청소년기에 분단과 동독의 독재를 겪고 다시 통일한 독일에서 살고 있는 카를 하인츠 리히터 씨의 말이 인상깊다. "한반도 통일은 긴 호흡으로 보되, 디테일한 문제까지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문제는 북한 스스로 풀도록 남한이 기다려야 한다. 경제적 격차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북한의 민주화일 것", "통일이 되면 북쪽 사람들이 많이 내려올 텐데 원래 가진 것 없던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더 미워할 것이다. 우리가 다 경험한 일이다. 재통일 후 독일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을들의 싸움, 약자가 다른 약자를 혐오하는 사회 현상이 일어났다. 남북한도 비슷하지 않을까"
<환상 너머의 통일>은 모두 3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 세대별 통일 이야기'는 독일 통일이 각각의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기억되고 있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2장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에서는 독일 통일 당시의 혼란과 그 시행착오, 통일 30년 후 독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3장 미래'에서는 독일 통일이 남북한에 시사하는 점과 현재와 미래의 남북통일 이야기를 담았다.
독일 통일이 그랬던 것처럼 남북통일도 순식간에 이뤄질 수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환상 너머의 통일>은 통일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독자는 물론 북쪽의 사람들과의 공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환상이 아닌 현실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데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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