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부안군수가 지난 7월14일 산업자원부에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신청을 한 것으로 시작된 '부안 사태'가 7개월만에 사실상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2ㆍ14 주민투표에서 70%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해 90% 이상의 주민들이 반대를 표명했고, 주민들이 그 결과에 따라 생업 복귀를 선언한 상태다.
정부나 전라북도, 부안군은 아직도 "법적 효력이 없다"고 연일 주민투표 흠집 내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번 주민투표가 법적 효력을 넘어서는 '사실상의 효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투표이후 그동안 부안 사태에 관한 한 주민편에 서지 않았던 언론의 보도 태도로도 짐작할 수 있다.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인 15일 각 언론은 "부안 방폐장에 미련 갖지 말라"(중앙일보), "부안 방폐장 사실상 물 건너 가"(한국일보) "다수 주민이 한사코 반대한다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동아일보), "주민투표로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조선일보) 등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주민투표 결과가 갖고 있는 힘을 인정하는 사설과 칼럼을 실었다.
***부안 '갈등의 불씨', 정부와 김종규 군수**
이같은 '게임 끝'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다름아닌 정부와 김종규 부안군수의 안쓰러운 옹고집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담당 장관을 사퇴시킬 정도로 문제점을 인정하고서도 끝까지 투표결과를 인정치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는 것도 안쓰럽기는 하나, 김종규 부안군수의 경우는 안쓰러움을 넘어 안타깝기까지 하다.
16일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공은 김종규 군수에게 넘어갔다"고 말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미 정부는 김종규 군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김종규 군수를 치하했던 그 때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이제 김종규 군수의 운명을 좌우할 이들은 노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바로 그를 군수로 뽑아준 부안군민들인 것이다.
***'사탕군수' 김종규**
김종규 군수는 잘 알려진 대로 위도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4년 동안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교편을 잡았다. 1993년 한나라당 부안 지구당 위원장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2002년에 민주당 텃밭인 부안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군수로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선 후에는 군수실 출입문을 모두 투명한 유리문으로 개조해 언론들로부터 "투명행정 앞장서는 개혁 성향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가 군수가 되기까지에는 좌절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1998년에는 부안 군수로 출마해 낙선했고, 그후 4년 동안 그는 세칭 '사탕군수'가 됐다. 그가 '사탕군수'로 불린 일화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김 군수는 4년내내 승용차에 고무장화와 사탕을 싣고 다니면서, 부안군 곳곳을 다니다 지역민들이 보이기만 하면 논, 밭을 가리지 않고 고무장화를 신고 들어가 주민들 목소리를 듣고, 도와줄 일을 찾았다. 헤어질 때면 꼭 손에 사탕을 쥐어 줬다고 한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부안주민들은 2002년 현직 군수 대신 김종규 군수를 선택했다.
그는 사탕군수 시절에 지금 핵폐기장 유치 찬성을 주도하고 있는 '부안사랑 나눔회'를 조직해 지역 봉사 활동을 이끌었고, 지역의 숱한 문제에 자기 일처럼 나서기도 했다.
***"기대만큼 배신감도 컸다"**
이처럼 부안군민들이 김종규 군수에게 걸었던 기대가 남달랐던 만큼 그에 비례해 배신감도 컸다. 지난 7개월 동안 김종규 군수는 군민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줬다.
김종규 군수는 지난해 7월10일까지도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안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7월9일 주민 대표들과 면담에서는 "유치를 절대 안 하겠다"면서 "이런 군수의 의견을 주민들에게 잘 전달해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루가 지난 7월11일 김종규 군수는 말을 바꿔 "핵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겠다"면서 기자회견을 했고, 7월14일에는 산자부 장관에게 정식으로 유치 신청을 했다. 하루 만에 김종규 군수가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서도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설사 본인의 말처럼 "'지역 발전을 위해 핵폐기물처리장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고심 끝에 내렸다" 하더라도, 군수가 되기 전처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마땅했다. 미흡하나마 김 군수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부안 주민들의 그에 대한 분노가 오늘날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김 군수에 대한 부안 주민들의 분노는 결국 지난해 9월8일 김종규 군수가 내소사에서 주민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최악의 사태로 발발했다. 그를 뽑아줬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폭도'로 매도됐고, 그 뒤 부안 주민들은 김종규 군수를 마음에서 지웠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났다.
***'자진 사퇴'만이 김종규 군수가 살 길**
지난해 9월8일 내소사 현장에 있었던 주민들은 "김종규 군수가 더 심한 꼴을 안 당한 것은 일부 주민들이 나서서 억류됐던 김종규 군수의 보호를 자청한 탓"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부안 주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김종규 군수에게 '애증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바로 본인들이 군수로 내세웠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탕군수' 일화에서 보듯 그동안 쌓았던 일말의 신뢰감도 김 군수가 눈에 밟히는 이유다.
더 이상의 갈등은 부안 주민들은 물론 김 군수 본인에게도 결코 좋지 않다. 김 군수를 받쳐줄 든든한 '백'도 없다. 주민투표로 인해 더이상 '참여정부'라는 단어를 쓰기에 남사스러워진 중앙정부는 모든 책임을 김종규 군수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객관적 상황도 좋지 않다. 부안 주민들은 앞으로 활동의 중요한 방향을 '김종규 군수 퇴진 운동'으로 잡고 있다. '퇴진 운동'이 본격화되면 사실상 지난 7월 이후 야기됐던 행정 공백은 더욱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가을에 주민투표를 강행해본들 그 결과는 뻔하다. 김 군수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부안의 여론을 돌리기란 불가능하다.
김 군수가 올해를 근근이 버티더라도 지난해 12월29일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특별법으로 그 근거가 마련된 '주민소환제'가 올해 말이나 2005년초 실시되면 김종규 군수가 그 첫번째 소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김종규 군수는 주민소환제로 자리에서 물러난 최초의 지자체장이란 불명예를 안게 될 게 확실하다.
지금이야말로 김종규 군수가 부안 주민을 위해 '마지막 책임'을 다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김종규 군수가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의 용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더 늦어지면 김 군수는 주민들에 의해 끌려내려질 것이다. 벌써부터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얘기가 오고가고 있다.
김종규 군수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자진 사퇴한다면, 부안 주민들은 김 군수의 실책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부안 공동체로 김 군수를 품어줄 것이다. 한때 그는 부안군민들의 '사탕군수'였기 때문이다. 김종규 군수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린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