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이른바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국가 권력 감금·고문 피해자 5명 전원이 36년만에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대구지방법원 형사2단독 이지민 부장판사는 1일 1983년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전원 유죄 판결을 받은 박종덕(60), 함종호(62), 손호만(61), 안상학(57), 고(故) 우성수씨에 대한 재심 사건 공판에서 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83년 9월 22일 사건이 발생한 지 36년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들 자술서, 진술서, 심문 조서, 자백은 경찰의 불법구금과 고문 결과로 보인다"며 "검찰이 낸 증거만으로는 국보법·반공법·집시법 위반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고문에 대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36년만에 사과했다. 또 재판부는 집시법 위반에 대해서는 "종전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면소 판결했다. 면소란 형사소송 제기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을 때 재판부가 내리는 것으로 검찰의 기소 자체를 무효화한 것이다. 선고에 앞서 이날 검찰도 이들 전원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다만 검찰 차원의 사과는 끝내 없었다.
박종덕씨는 "30여년 전 고문 기억이 평생을 지배해 매일 악몽을 꿨다"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비루한 삶을 살았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때 공포를 이제사 벗어날 수 있게 돼 기쁘면서도 착찹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손호만씨는 "전원 무죄 선고 받기까지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면서 "재판부는 사과했지만 검찰은 끝내 사과하지 않아 아쉽다. 이후 국가 차원의 사과도 이어져 다시는 우리 같은 억울한 고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재심 청구 사건 담당 변호인인 김진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무죄 선고는 당연하다"고 했다.
이들 5명은 1983년 대구 중구 삼덕동 미국문화원 앞 가방에서 TNT 폭탄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 용의자로 몰려 전두환 군사정부 합동심문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합신조는 이 사건으로 1년 넘게 수 만명을 불러 수사했지만 진범을 검거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 용의자로 지목했던 이들 가운데 박종덕씨 등 5명을 이 사건과 무관하게 이른바 '불온서적(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로 '별건 수사'해 국보법·반공법·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은 불시에 경찰에 끌려가 한 달 넘게 불법구금을 당했다. 특히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 등에게 모진 가혹행위를 당해 자백을 강요 받았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5명에게 법원은 1984년 유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5명은 항소를 포기해 30년 넘게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사법부가 36년 전의 유죄 선고를 무죄로 바로 잡아 뒤늦게 누명을 벗게 됐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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