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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작가, 노벨문학상 받게 하겠다"

<인터뷰> 지영석 랜덤하우스 아시아 회장의 '야심'

새해 벽두부터 한국 출판계의 미래를 가늠할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1월6일 미국 최대의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와 국내의 간판출판사 중 하나인 중앙M&B가 합작투자로 랜덤하우스 중앙을 설립한 것이다. 최대 기업들이 연합해 더 큰 규모를 만드는 세계 출판계의 경향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랜덤하우스는 세계최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베텔스만의 계열사로 연간 1만2천여종의 신간을 출간, 4억5천~5억부의 판매량과 20억달러(약 2조4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회사로, 미국, 영국, 독일 등 전 세계 16개국에서 출판사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토마스 만, 윌리엄 포크너, 엘리 위젤, 토니 모리슨, V.S. 네이폴 등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 존 그리샴, 다니엘 스틸, 이창래(재미교포 작가) 등 수준 높은 인기 작가들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발렌타인, 크노프 등의 출판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2년 전부터 국내 여러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국 진출을 추진해온 랜덤하우스는 2003년 1월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샤와 합작해 랜덤하우스 고단샤를 설립한 데 이어, 이번에 랜덤하우스 중앙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아시아 시장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프레시안은 이번 합작이 한국 출판계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 랜덤하우스 중앙이 기대하고 있는 효과 등을 점검하기 위해 랜덤하우스 아시아 진출을 총괄하고 있는 지영석 랜덤하우스 아시아 회장(43)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지영석 회장은 "이번 합작 법인 설립은 규모를 키워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한국 출판계가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랜덤하우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한국 작가가 쓴 책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해 가까운 미래에 노벨문학상을 한국에서 수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벨문학상을 만들어낼 경우 국내 작가들이 대거 랜덤하우스 중앙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국내출판계 판도를 일거에 바꿀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다국적 출판사의 한국 진출이 앞으로 몰고올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영석 회장은 "랜덤하우스가 그간 쌓아 온 합리적인 시스템을 국내에 적극 도입·확산시켜 한국 출판계의 질적 성장을 선도하겠다"면서 "특히 작가 발굴, 유통 시스템의 개선, 편집인에 대한 획기적인 대우" 등을 제시했다. 지 회장은 "현재 미국에는 재직기간이 60년이 된 편집인이 있는가 하면, 신입사원 가운데 20~30%는 해마다 탈락시키는 합리적 경영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며, 한국에도 이같은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 또한 한국출판계에 커다란 파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 회장은 이밖에 한국 출판계의 영세성과 불투명성, 도서정가제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해, 앞으로 국내출판계가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지 회장 인터뷰에 이어 국내출판계 경영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출판계에 몰아닥친 '도전과 응전'의 현장을 점검하고자 한다.

다음은 지난 1월30일 랜덤하우스 중앙 집무실에서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지영석 회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세계 7개 언어권에서 선도적 출판사 될 것"**

프레시안 : 이번에 세계적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와 국내의 대표적 출판사 중 하나인 중앙M&B가 합작투자로 '랜덤하우스 중앙'을 설립한 이유는?

지영석 : 알다시피 랜덤하우스는 이미 세계 15개국에서 단행본을 출판하고 있는 세계적인 출판사이다. 랜덤하우스의 장기적인 계획은 세계의 가장 큰 10개 언어권 중 적어도 7개 언어권에서 선도적 출판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영어, 영국 영어, 독어, 스페인어권에 진출을 했고 지난해 1월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크고 세계 3위권의 단행본 시장을 가진 일본에 합작법인 랜덤하우스 고단샤를 설립했다. 이번에 일본에 이어 세계 10위권의 단행본 시장을 가진 한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이제 중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중이다. 세계 7위권의 단행본 시장을 가진 중국은 출판에 대한 회사 단위 투자가 현재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에는 투자가 허용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향후 3∼4년 안에는 본격적인 진출이 가능할 것이다.

프레시안 : 합작을 위한 준비를 꽤 오랫동안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중앙M&B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지영석 :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한국의 주요 출판사 20여 곳을 방문했다.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어떤 분들이 경영을 하는지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출판계의 현황을 파악했다. 많은 출판사들과 얘기가 오고갔지만 그 중에서 특히 중앙M&B를 선택한 이유는 중앙M&B의 전문경영진들과 호흡이 잘 맞았던 게 컸다. 중앙M&B가 출판을 오로지 문화로만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즈니스로만 보지도 않는 모습, 양쪽을 잘 결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출판과 비즈니스를 잘 조화시키는 모습에 신뢰가 갔다고나 할까?

***"한국 출판계, 열정에 걸맞는 양적 성장 도모해야"**

프레시안 : 한국 출판계의 현황을 살피면서 보고 느낀 게 많이 있었을 것 같다.

지영석 : 솔직히 얘기하자면 단행본을 출판하는 모습이 여전히 '영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반면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출판계 사람들의 책에 대한 열정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흐뭇한 모습이었다.

단 출판에 대해 그렇게 많은 열정을 가진 분들이 자본을 끌어들이고 규모를 키우는 것과 같은 자원을 확보하는 데 외국 출판사만큼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떤 분들은 오히려 '출판사가 규모가 크면 안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가 조금만 커지면 쪼개지고 또 조금 더 커지면 쪼개지고, 이런 모습이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미국, 독일, 프랑스를 보면 출판사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자꾸 자본을 끌어들인다. 작가를 발굴·육성하고, 고급인력을 확보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춰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자본이 들어오고 회사를 키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출판사를 통해 꿈을 실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면 그 지점에서 안주해도 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한국 출판계가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 열정에 맞는 규모가 꼭 필요하다.

***"작가를 개발하고, 알리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프레시안 : 한국의 작가나 출판물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랜덤하우스는 다수의 노벨 문학상 작가들을 포함해 수준 높은 출판물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데...

지영석 : 작년 11월 한 대형 서점에 들렀을 때, 베스트셀러 중에 소설 1권, 비소설 2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번역서였다. 너무 실망스럽고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 작가가 없는 것인지, 출판사들이 작가에게 투자를 안 하는 것인지,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마케팅을 못 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한국 작품은 매우 수준이 높아, 누가 읽어도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 현재 한국의 작품에 계속 관심을 가지면서 보고 있는데 새삼 그 높은 수준에 놀라곤 한다. 충분히 세계의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다.

반면 한국 작가들은 외국에 너무 알려져 있지 않다. 작가들을 외국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유가 아직 한국의 출판사에는 없는 것 같다. 일본 같은 경우 고단샤를 보면 일본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고 진출시키는 것을 출판사의 큰 책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출판사는 그것을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고, 정부도 그에 맞는 많은 보조를 하고 있다. 한국은 그런 점에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 작가, 노벨문학상 받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

프레시안 : 국내서와 번역서의 비중을 8대 2의 비중으로 펴내겠다고 발표했다. 작가 개발에 최우선을 두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지영석 : 맞다. 출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를 개발하는 것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편집자와 호흡을 잘 맞춰서 좋은 글을 생산해 내면, 그들의 목소리를 가장 적합한 마케팅으로 널리 소개할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는 작품들은 적극적으로 외국 시장으로 소개해야 한다. 기존의 좋은 작가들과 함께 독특한 스타일이나 차별화된 새로운 목소리(fresh voice)를 낼 수 있는 작가들도 찾아서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것이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도 일부 작가들이 계속해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고 있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작가들이나 일반 독자들의 관심도 매우 크다.

지영석 : 물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의 우수한 문학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하나의 목표이다. 한글은 매우 발달한 언어이며 표현도 풍부하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한국의 문학 작품은 세계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것이다. 이제 한국도 노벨상을 받아야 할 때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전 세계에 구축돼 있는 랜덤하우스의 네트워크는 이런 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국내 작가를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어 등 전 세계 언어권에 번역·출판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돼 있는가?

지영석 : 물론이다. 여기서 그 시간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보여 줄 수는 없다. 기존의 작가들과 우리가 새롭게 발굴해낸 작가들을 아주 규칙적으로 외국어로 번역해 출간할 생각이다. 우선 영어로 번역해 미국, 영국에서 출판할 계획을 갖고 있다.

프레시안 : 그 계획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면,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랜덤하우스 중앙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할 것 같다.

지영석 : 물론이다. 그것은 우리가 추진할 중요한 사업 계획 중 하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가 외국에 소개할 작가들은 일부 문학 작품에 국한된 계획이 아니다. 노벨 문학상은 아주 문학적이고 또 정치적인 작품에게 수여되는 특수한 상이다. 그런 작가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또 특정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들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문학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한 작가들을 외국으로 소개할 것이다.

프레시안 : 현재 진행중인 작가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유명한 작가들이나, 아무도 모르지만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도 포함해서.

지영석 : 물론이다. (웃음)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예스(Yes)'다.

***"낙후된 한국의 출판 유통, 출판 발전 발목 잡는다"**

프레시안 : 출판 유통에 관해서 전문적인 경험과 식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출판 유통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영석 : 한국의 출판 유통은 매우 낙후돼 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때, 출판 유통이 큰 타격을 받은 이후 아직 제대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한국 출판의 발전을 위해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프레시안 : 새로운 유통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고 바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한가?

지영석 : 미국과 같은 경우는 유통, 출판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 서로 컴퓨터 시스템이 연결돼 있을 정도다. 어떤 책이 어떻게 팔리고, 재고가 얼마나 되고. 모든 것이 투명하다. 이런 투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신뢰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 마련됐다.

일단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면 출판사들이 계획을 세우고, 경영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이런 시스템에는 누구든지 자신 있게 투자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유통계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특히 자본이 필요하다. 자본 없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프레시안 : 출판 유통에서 최종 소비자와 책을 대면시키는 서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특히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으로 양분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지영석 : 일본의 경우 97%가 서점에서 유통된다. 오히려 한국의 책 유통은 상당히 다양화됐다고 볼 수 있다. 대형 서점과 같은 대규모 서점이 성공한 것은 소비자에게 다양하고 많은 종 수의 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단, 도서정가제는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도서정가제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지영석 : 일단 책값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율성이 부여돼야 한다. 예를 들어서 잘 팔리는 책들은 할인해서 파는 것이 소비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이익인데, 현행 도서정가제에서는 그 할인 비율과 기간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3년 정도면 이 제도는 많은 부작용을 남기고 없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프레시안 : 책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외국의 사정은 어떤가?

지영석 : 한국의 책값은 외국에 비해서는 비교적 싼 편이다. 그래도 독자들이 많이 찾는 도서의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출판 시장 편중 현상, 장기적으로 문제 낳을 수도 있어"**

프레시안 : 외국과 비교해 특별히 눈에 띄는 한국 출판 시장이 특징이 있는가? 1998년 이후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는 어린이 책과 실용서 시장이 아주 큰 성장을 보였다.

지영석 : 한국에서는 책을 읽는 것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일종의 투자로 보는 독자들이 많다. 이런 독자들이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투자를 한다든가, 언어를 배운다든가, 실용적인 기술을 배운다든가... 이런 실용적인 목적은 책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책이란 것이 가까운 시일 내에 꼭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책은 독자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오랫동안 옆에 둬야 할 친구이기도 하다. 오늘 읽어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책들 외에도 다른 책들의 출간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프레시안 : 현재 출판 시장의 경향이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긴가?

지영석 :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독자들의 삶에 오랫동안 개입할 수 있는 책의 출간이 위축되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일단 그런 책을 쓸 만한 저자들의 자신감이 상당히 상실될 것이다. 자기가 쓸 책을 대중들이 찾고, 또 호소력이 있다는 판단이 설 때 작가들은 글을 쓴다. 실용적인 책들만 넘쳐난다면 좋은 내용을 갖고 있는 작가들은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책은 많이 나오고 있다. (웃음)

***"책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

프레시안 : 출판 기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책의 질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지영석 : 그렇다. 솔직히 이렇게 성의 없게밖에 출판을 못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책들도 많이 봤다. 책을 어떻게 두드러지게 하느냐, 책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눈에 확 띄지 않는다. 누구한테 보여도 창피하지 않을 질을 갖춘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영석 씨는 한국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창비사, 민음사, 해냄, 문학동네 등 대여섯 개 출판사를 열거했다. 그리고 포부를 밝혔다.)

지영석 : 예를 들어 일본의 자동차 기업에 대한 책 10권이 서점에 나란히 있다. 이 때 독자들이 주저 없이 랜덤하우스 중앙의 책을 빼 들 수 있도록 질적인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능력있는 편집인이 대우 받는 시스템 만들겠다"**

프레시안 : 좋은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작가들만큼이나 능력 있는 편집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영석 : 전적으로 동감한다. 편집인이 책을 살리고 죽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작가들 중에 자기 원고를 편집인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재미있는 일이다. (웃음)

프레시안 : 그런 작가들이 아주 많다.

지영석 : 그런 잘못된 인식은 바뀌어야 하고 또 바꿀 것이다. 편집인은 작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중요한 코치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 편집인들이 출판계에 꽉 차 있으면 작가들도 기꺼이 자기 책을 쓰기 전에, 쓰는 중에 또 쓰고 나서 편집인의 좋은 충고를 기꺼이 받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랜덤하우스 중앙을 포함해 이미 그런 편집인들이 꽤 된다.

프레시안 : 사실 한국의 편집인들은 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 이익의 일정 부분을 편집인에게 보상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영석 : 강구 중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편집인들이 대우를 받는 것이 꼭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에는 경제적 대우, 사회적 대우, 사내에서의 존경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 문제이다. 한국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 약한 게 사실이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론 시간이 걸린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미국의 빌 클린턴 前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을 랜덤하우스 자회사인 크너프에서 출판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바로 크너프의 편집인 때문이었다. 이런 능력 있는 편집인을 단지 경제적 보상 때문에 잡아 둘 수는 없다.

그런 능력 있는 편집인들이 어떤 책을 출판하고자 할 때, 재정적으로 시간적으로 마케팅 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밀어줘야 한다. 편집인들에게 '내가 원하는 좋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이 곳에 있어야겠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경영자를 비롯한 소수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출판사가 태반이다.

지영석 : 한국에서 그런 '1인 기획'이 통하는 것은 아직 한국의 출판계가 영세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편집인에게 완전히 맡기는 시스템을 갖췄다. '당신 책은 당신 책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결과에 대해서도 모든 것이 편집인의 몫이다. 잘 되면 그 편집인의 명성이 올라가는 것이고, 잘못 되면 그 책임도 그가 져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책이 성공할 수는 없다. 일정 부분의 위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이 역시 편집인의 권리이다.

일단 편집인이 기획을 추진하기 시작하면, 어떤 책을 언제 누구와 함께 출판할지에 대한 전적인 신임을 줘야 한다. 단순한 기획뿐만 아니라 책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특히 작가와의 관계는 편집인의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책무이다.

***"랜덤의 편집인 연령은 22~85세"**

프레시안 : 한국에서 능력 있는 편집인들은 출판사로 새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편집인으로 정년을 마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영석 : 그것은 큰 문제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출판사의 경우에는 밑에서 올라오는 능력 있는 사람이 어떤 선에 올라가면 더 이상 성장하는 길이 딱 막힌다.

랜덤하우스나 랜덤하우스 중앙과 같은 회사는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능력 있는 편집인들은 계속해서 자기 능력을 펼 수 있도록 수평으로 확장해준다. 랜덤하우스 같은 큰 회사가 능력 있는 편집인을 많이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능력 있는 편집인들이 어떤 시점이 되면 회사를 떠나 새로운 출판사를 만든다. 여기서 그는 기획, 편집은 물론이고 마케팅을 비롯한 경영에 신경을 써야 한다. 책을 좋아하고 편집인으로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결국 경영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22살 된 사람부터 85세가 된 다양한 연령대의 편집인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이렇게 돼야 한다.

프레시안 : 랜덤하우스 중앙의 등장을 보면서 외국 출판계의 합리적인 시스템이 한국에서 정착돼 다른 출판사로 파급될 것을 기대하는 편집인들도 꽤 있다.

지영석 : 당연히 그래야 한다. 편집인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수하게 해야 한다. 편집인들에게 한계가 없는 성장, 자라면 자랄수록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편집인들이 자기 작가를 한계 없이 키워 편집인과 작가가 같이 클 수 있는 조건을 출판사가 만들어 줘야 한다.

프레시안 : 한편에는 이런 식의 시스템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도 있다. 미국에서도 도태되는 편집인들이 많지 않은가?

지영석 : 물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떠나는 사람들은 경영 쪽으로 가는 사람이나 책에서 잡지, 잡지에서 책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계속 성과가 안 좋은 책들만 내는 사람도 떠난다. 여기서 성과가 나쁘다는 것은 많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책에 맞는 노력을 했느냐, 바로 이 점이다.

선인세를 터무니없이 많이 줬느냐, 편집을 너무 느리게 해서 출간 시점을 놓쳤느냐 등이 그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또 무조건 많이 팔린 책이 성공한 책은 아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인정을 받는 책, 예를 들어 상을 받거나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어낸 책 등은 상업적 성공과 무관하게 성공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출판 편집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지영석 : 물론 현재도 잘 하는 편집인들이 많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변화 받아들일 각오가 없다면 두려워해야 할 것"**

프레시안 : 아직 랜덤하우스 중앙의 출발에 대한 한국 출판계의 반응은 조용하다. 한국 출판계의 반응에 주목할 만한 게 있는가?

지영석 : 아주 조용하다. 일본과는 틀리다. 2003년에 랜덤하우스 고단샤가 출발할 때, 일본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출판계에 변화가 필요한데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았는데, 랜덤하우스 고단샤가 손을 들었으니 따라가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프레시안 : 랜덤하우스 중앙의 출발을 보면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지영석 : 한편에서는 기대도 있고, 한편에서는 불안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변화는 항상 불안한 것 아닌가? 예를 들어 '랜덤하우스 중앙이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는데, 변화에 동참해야 하는데 우리는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고, 언제부터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할 것인가' 이런 식의 불안감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또 한국의 출판계는 랜덤하우스 등이 그간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한 가지 확실히 할 것은 랜덤하우스 중앙이 한국의 출판계를 지배하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작가의 적극적인 개발, 편집인의 역할, 출판 유통의 개혁과 같이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할 변화를 따라오는 것을 기존 출판사들이 주저할 경우에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 후기**

랜덤하우스 아시아 회장인 지영석씨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권위와 실력을 자랑하는 랜덤하우스의 새로운 개척지인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자신감일 것이다.

지영석씨는 1961년 외교관 아버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서울과 외국을 오가면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재미교포다. 1974년 이후에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떠나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은행 미국본사, 영국지사, 멕시코지사, 프랑스지사, 싱가포르지사를 순환하며 8년 동안 근무했다.

그 후 1992년 세계 최대의 컴퓨터 판매업체인 잉그람마이크로사에 입사했고, 그곳에서 잉그람의 자회사 3개를 창업하는 동안 유통 분야에 정통하게 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잉그람북그룹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인연으로 결국 2001년 랜덤하우스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지영석씨는 특히 회고록, 자서전, 전기, 수필과 같은 사람에 대한 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외교관 아버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접해 왔고,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 세계 굴지의 기업에서 인정받는 경영인으로 성장한 지영석씨가 '사람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인 출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좋아하는 국내외의 작가들 10여명의 이름을 읊으면서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서 즐겁게 얘기하는 그는 전형적인 '책에 미친 사람'으로 보였다.

지영석씨는 '한국의 출판물이 세계적인 호소력을 갖기 위한 조건'을 묻자 바로 "훌륭한 이야기(story)가 필요하다"고 바로 답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지영석의 이야기'를 쓰고 싶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한국에서 랜덤하우스 중앙을 통해 '그의 이야기'에 어떤 극적인 내용을 더 추가할지 새해 벽두부터 한국과 세계의 출판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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