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중앙일보가 기습적으로 구독료 인하 공세를 펴자 조선일보가 울며 겨자먹기로 맞대응에 나서는 등, 신문업계에 치열한 1위 쟁탈전이 재연됐다. 지난 몇년간 '조중동'이라는 정파적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경쟁을 자제했던 메이저 언론들 사이에서 전쟁이 재연된 양상으로, 그 배경과 향후 언론판도에 미칠 파장에 언론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앙일보의 기습적 '대(對)조선 전쟁 선언'**
전쟁의 포문은 중앙일보가 먼저 열었다. 중앙일보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6일 앞으로 구독료를 자동납부하는 독자에게 현재 월 1만2천원인 구독료를 1만원으로 낮추겠다고 선포했다.
중앙일보는 사고를 통해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고...안팎으로 경제가 어렵다. 중앙일보는 가계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자동납부하는 독자에게 구독료를 낮춰주기로 했다"며 "오르기만 하던 구독료 인하는 국내신문 역사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사고는 이같은 구독료 인하는 기존의 판촉경쟁비를 독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신규-기존독자 모두에게 오는 4월27일까지 1백일동안 자동납부를 하면 구독료를 낮춰주겠다"며, 이같은 내용을 중앙일보 온-오프라인은 물론, 메트로 등 무가지와 포털사이트, 케이블TV 등을 통해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폈다.
중앙일보는 특히 사고를 통해 이번 구독료 인하가 조선일보를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일보는 "중앙일보를 2년 구독할 경우 월 1만원X24=24만원으로 A신문의 월 1만4천원X24=33만6천원과 비교할 때 9만6천원이 절약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A신문이란 지난해 11월 신문사 가운데 유일하게 월 구독료를 1만2천원에서 1만4천원으로 인상했던 조선일보를 가리킨 것으로, 누가 보기에도 분명한 '대(對)조선일보 전쟁 선언'이었다.
***조선일보의 '울며 겨자먹기' 따라가기**
예기치 못한 중앙일보의 기습공격을 받은 조선일보의 대응은 그로부터 나흘 뒤인 지난 20일 나왔다. 그 내용은 중앙일보의 뒤를 그대로 따라가는 '울며 겨자먹기'였다.
조선일보는 20일 '조선일보 구독료 인하'라는 사고를 통해 "4월30일까지 앞으로 1백일동안 조선일보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월 1만4천원인 구독료를 2천원 인하와 함께 추가로 2천원을 할인, 월 1만원에 구독할 수 있다"며 구독료 4천원 인하 방침을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어 "보고는 싶은데...비싸다고요? 품질이 좋은 신문이 비싸다는 편견을 버리십시오. 조선일보는 판촉비를 대폭 줄여 보다 합리적으로 구독료를 낮췄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신문 조선일보를 즐거운 가격에 보십시오"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와 단 하나 다른 점은 '구독료 자동이체 대박 이벤트'를 병행해 자동이체독자 가운데 추첨해 50인치 PDP 벽걸이 TV와 노트북, 세탁기 등의 경품을 주겠다는 것뿐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명백한 중앙일보 따라하기였다.
***신문업계 "중앙일보 뒤에 거대물주 있는 게 아니냐"**
판매부수 1위신문인 조선일보는 그동안 구독료 인상을 사실상 주도해왔다.
지난 2002년 3월 월 구독료 1만원에서 1만2천원으로 올려 다른 신문들의 구독료 인상 러시를 몰고 온 것도 조선일보였고, 지난해 11월에는 광고불황에 따른 경영난 타개 차원에서 또다시 1만2천원이던 구독료를 1만4천원으로 인상하자 한층 경영난이 심각했던 다른 신문들도 구독료 인상을 적극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중앙일보가 기존 흐름을 깨고 정반대로 구독료 인하 공세를 펴고 나오자, 조선일보가 받은 충격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월 구독료 1만4천원을 전제로 짜놓았던 올해 경영계획에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자사보다 경영실적이 나빴던 중앙일보가 이처럼 구독료 인하라는 '출혈전쟁'을 선언한 배경에 대해 다각적 조사-분석 작업을 실시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동아일보 등 다른 신문사들도 출혈전쟁 개막에 비상이 걸리기란 마찬가지이다.
동아일보 판매국 관계자는 "지금 모든 신문사 판매국은 중앙일보 때문에 초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중앙일보가 치고 나오고 조선일보가 따라가니 다른 신문사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신문사의 최대 관심은 왜 중앙일보가 이같은 출혈전쟁을 감행했느냐로 쏠리고 있다"며 "출혈전쟁을 통해서라도 조선일보를 제치고 신문업계 선두를 차지하겠다는 속셈으로 분석되는데 중앙일보 결정의 이면에 출혈전쟁을 뒷받침해줄 '거대 물주'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신문업계는 심각한 광고불황 외에도 최초로 신문을 구독하는 가구 비율이 50% 밑으로 떨어지고 인터넷매체와 무가지 확대로 계속해 구독률이 저하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최악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마당에 출혈전쟁이 시작되면서 조선일보도 적잖은 타격을 입겠으나 다른 마이너신문들은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조중동외 마이너신문들은 구독료 인하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기면서도 이에 따른 적자규모 확대 해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조중동 전선 해체되나**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지난 몇년간 강고히 유지돼온 '조중동' 전선의 해체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조중동이라는 정파적 전선이 구축되면서 3사는 물밑에서는 부단히 부수 확장을 펼치면서도 극한적 대립은 서로 피해온 양상이었다"며 "하지만 지난해 후반부터 중앙일보 보도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읽히기 시작하더니, 이번의 중앙일보의 기습적 구독료 인하를 통해 조중동 전선이 근본적으로 깨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계에서는 노무현정부 출범후에도 조중동 전선이 계속 작동하면서 정권과 언론간 긴장이 심화되자 지난해 가을께 모 그룹이 중앙일보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고, 그후 중앙일보 논조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앙일보의 이런 판단에는 젊은세대의 신문 혐오감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계속해 구세대 독자의 구미에 맞는 정파적 보도로 일관하다간 최악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며 "중앙일보의 이번 결정은 홍석현 회장이 언론계 안팎의 여러 정황을 고려해 내린 신문업계 1위 쟁탈전략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과연 중앙일보의 구독료 인하 결정으로 촉발된 신문전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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