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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불한당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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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불한당들의 시대

그림소설 <불한당들의 시대> 제1부 이야기의 서막 ⑯

이우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노길상 작가의 픽션 <불한당들의 시대>를 연재합니다. <불한당들의 시대>는 7세기 경의 한반도 역사를 극화(劇畫:그림이야기) 형식의 판타지 소설로 창작한 것입니다. 부석사의 연기 설화를 바탕으로 의상과 선묘, 그리고 두 사람과 관계된 실존 또는 가상의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



17. 무명(無名)이라 불린 아이


국통(國統:승려와 사찰을 총괄하는 최고 승려) 원광법사는 월성(月城) 서남쪽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법사의 무덤은 국통의 명성답게 많은 이들이 참배하며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제정한 세속오계(世俗五戒)는 나라의 근간이 되었고 국인(國人)들의 행위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몸은 썩어 문드러질 것이나 그의 말과 이름은 만고에 길이 청청(靑靑)할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靑天)에 난데없이 천둥 벼락이 치며 비가 쏟아졌다. 억수 같은 비는 수일 동안 계속되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법사의 무덤이 휩쓸렸다. 돌무지가 몰골사납게 드러났다. 흰그림자가 나타난 것은 그즈음이었다. 천둥 벼락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흰그림자는 법사의 무덤 위에서 발을 구르며 기광을 떨었다. 사도태후의 복수는 원광의 죽음에도 단념되는 것이 아니었다. 흰그림자의 출몰은 연일 이어졌다.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 돌무지 위에서 흰그림자의 행짜는 비가 그치고서야 멈추었다.

죽은 아기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그 이후였다. 파헤쳐진 돌무지 속에서 아직 피멍이 가시지 않은 갓난이의 시체가 계속해서 드러났다. 무덤을 보수하던 인부들은 국통의 무덤에 지실이 들었다며 손사래를 치고 달아났다. 인부들 중 누군가가 장대비 속에서 국통의 무덤 위로 흰여우가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말은 왕에게 보고되었다.

저자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시체들은 모두 법사의 씨를 받은 아기라는 것이었다. 승려들이란 태생적 욕정을 절연하며 숭고해지는 법이거늘, 국통의 아랫도리는 시정잡배와 다름이 없었다는 말이 횡행했다. 늙은이가 노망하여 황룡사의 시녀들을 겁탈하고 다녔다는 소문도 있었다. 급기야 수제자 원안(圓安)과 남색을 즐겼다는 말이 나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문은 세상을 참담케 하고 절망케 했다. 매일 새로운 풍문으로 서라벌의 저자는 들썩였다.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을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인자했던 법사는, 일생을 청정한 삶을 지키며 일체의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오직 용맹 정진했던 국통 원광법사는 어느새 오입질까지 일삼았던 천하의 난봉꾼이자 파계승이 되고 말았다.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풀려지고 더욱 흉흉해지기 마련이었다.

김용수가 남녀 두 사람을 우악스럽게 끌고 동시(東市:월성 동편의 저잣거리)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국통의 무덤 주변에 살던 늙은 부부라고 했다. 그들의 꼴로 보아 모진 고문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김용수는 구경거리를 찾아 몰려드는 국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자들이 바로 국통의 유택(幽宅:무덤)에 시체를 내버린 놈 년 들이다. 늘그막에 얻은 갓난이가 죽자 다시 태어날 것을 소원하며 법사의 무덤에 시체를 묻었다고 한다.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있나!"

비형랑, 아니 김용수는 눈을 부라리며 몰려든 국인들을 향해 호통 치듯 말했다.

"이 놈년들과 같은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복이 있는 귀인(貴人)의 무덤에 갓난이를 묻으면 자손이 끊이질 않는다는 속설을 믿고 국통의 유택에 갓난 시체를 내다 버린 자들이 이 중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당치도 않은 자들에게는 엄벌이 내려질 것이니, 오늘 일로 그 반면교사를 삼으라는 어명이 있으셨다!"

김용수의 손짓에 늙은 부부의 목이 달아났다. 참수된 머리는 장대에 달려 저잣거리의 입구에 내걸렸고, 몸뚱이는 짐승들의 먹이로 내던져졌다. 저자에는 국인들이 더 이상 함부로 나다니지 않았고, 소문은 잠잠해졌으나... 그로부터 왕이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왕은 국통의 무덤에 흰그림자가 나타난 것을 불길하게 여겼다. 한동안 잠잠했던 흰그림자였다.

"태후할미는 정녕코 손자의 죽음을 보고서야 앙심을 거둘 것인가!"

왕은 흰그림자를 원망했다. 의외의 말이었다. 정반왕(淨飯王:석가모니의 아버지)의 운명을 타고 난 선택된 인간으로서, 스스로 춘추(春秋)라 이름하며 자신이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을 강력하게 통치하고 마음대로 재단했던 절대군주의 언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왕은 애원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단 한 번도 내뱉은 적이 없었으나, 몸이 쇠약해지며 그에 따른 불안은 왕의 예전 모습을 잃게 했다. 그것은 왕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전광석화 같은 실행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기도 했다.


왕은 덕만(德曼)공주와 천명(天明)공주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했다.

"너희들은 지금까지 배운 음사(陰事:성교의 기술)의 기술로 남정네들을 지배해야 할 것이다. 여인의 몸으로 대신과 장수와 승려들의 충성을 이끌 수는 없을 것이기에... 대원신궁의 음사 만이 너희들의 왕위와 성골(聖骨)의 안녕을 보장할 것이다."

숨을 고른 왕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아비는 성골을 지키기 위해 대원신궁의 여인들을 모조리 척결했다. 요망한 태후할미의 망령이 아직 월성을 어지럽히고는 있으나, 그것은 나의 당대에 끝날 것이니라. 너희들을 여왕으로 내세운 것도 다시는 대원신궁과 같이 요사한 무리들로부터 왕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서로 힘을 모아 아비의 뜻을 받들라!"

왕의 말은 장황하였으나, 마치 유언을 남기듯 비장했다.

"음사의 기술로 비형랑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너희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비형랑을 너희의 수족과 같이 부릴 것이되... 절대 후사(後嗣:대를 잇는 자식)를 남겨서는 아니 된다. 만약, 후손이 생긴다면 대원신궁보다 더한 우환이 될 것이니... 이 아비의 말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리하여, 밤늦게 대궁으로 불려온 비형랑에게 공주들이 번갈아 가며 음사를 시전(施展)하였던 것이었다. 한동안 비형랑은 공주들의 잠자리에서 헤어날 줄을 몰랐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 일도 왕의 뜻대로 모든 것이 순탄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비형랑은 외관상으론 전혀 분간을 할 수 없는 덕만과 천명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천명공주가 입실하는 날만 대궁으로 찾아들었다. 천명 또한 음사의 시행에만 몰입하는 언니와는 다르게 비형랑을 진심으로 대하고야 말았으니...

천명공주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던 것은 그즈음부터였다.

후사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정반왕의 신신당부는 허사가 되었다. 공주의 배는 급격하게 불러왔다. 천명은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아이를 지우려 무던히 애를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배가 한참 부르고 나서야 사실을 알게 되었던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딸의 목숨을 해치면서까지 아이를 없애기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예전의 왕이 아니었다. 공주의 배는 점점 불러 결국 만삭이 되었다.

공주는 새벽부터 몸을 틀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진통이 이어졌다. 견디다 못한 공주는 실신하듯 잠이 들었고, 산통(産痛)은 이레 동안 계속되었다. 공주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에도 왕은 어의를 보내지 않았고, 언니 덕만공주 또한 동생의 고통을 개의치 않았다. 시녀들의 도움으로 고비를 겨우 넘기고 넘겼다. 왕의 명에 의해 김용수의 출입도 엄격하게 금지되었으나, 김용수는 저항하지 않고 왕의 명을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세이레가 지났다. 월성 주변을 배회하던 김용수에게 입궁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왕은 신하들의 조하(朝賀:주요 절기나 즉위일, 탄일 따위의 경축일에 신하들이 조정에 나아가 왕에게 하례하는 의식)와 외국 사신의 접견 시에 사용되는 조원전(朝元殿)으로 김용수를 불렀다. 왕은 읍을 하며 들어서는 김용수를 골똘히 내려다보았다. 김용수가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정적이 이어졌다. 김용수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왕이었다.

"데리고 나오너라."

내관들이 보자기에 싸인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천명공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관으로부터 아기를 전해 받은 김용수는 왕을 우러러보았다. 왕은 김용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일은 함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 아이의 출생에 대한 연원도, 어미에 대한 것도... 지밀에서 네가 한 모든 일은 이제 모두 잊어야 할 것이다."

김용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의 출생도 잊혀 져야 하는 것이었으나, 어미의 간곡함이 있어... 부자(父子)의 인연만은 내 허락토록 하마."

이어서, 왕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단호한 어조로 이와 같이 말했다.

"앞으로 아이의 어미에 대한 어떤 의문도 있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만약 네가 그것을 지킨다면 너의 가족은 무사할 것이나, 그렇지 않는다면 너의 목숨 또한 부지하지 못할 것이니라."

김용수는 부지불식간에 왕의 엄명에 대답을 하였으나, 무엇이라 했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정신이 혼란한 가운데 오로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픈 욕망만이 뇌리에 가득 차 있을 뿐, 제정신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용수는 왕에게 자신의 마음이 읽혀서는 아니 된다고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왕은 아이에게 붙일 이름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용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주저할 뿐이었다. 당혹해하는 김용수를 굽어보며 왕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무명(無名)이겠구나. 무명... 그렇다. 그 아이는 앞으로 아무 이름도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하느니..."

김용수는 뒷걸음을 치며 조원전을 빠져나왔다. 그는 귀정문(歸正門)을 거쳐 존예문(尊禮門)을 거쳐 남문(南門)을 빠져나왔다. 예전 같으면 한달음의 거리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하였다. 남문을 거쳐 저잣거리에 들어서서야 김용수는 한 숨을 쉬며, 보자기에 싸인 아기를 확인했다. 아기의 멀쩡한 코가 만져졌다. 몰랑몰랑한 아기의 콧살이 손끝을 간지럽혔다. 김용수는 다시 한 번 아기의 코를 만졌다. 멀쩡했다. 김용수는 아무도 모르게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다. 김용수는 아이에게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란다. 아기야. 너의 이름은 무명(無名)이 아니라... "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짙은 노을 너머로 저녁 어스름이 깔려오고 있었다. 김용수는 아이를 하늘을 향해 받들듯이 들어 올렸다. 김용수는 다시 숨죽이며 아이에게 말했다.

"춘추(春秋)... 너의 이름은 춘추이다. 왕이 세상을 지배했던 바로 그 세월이 너의 이름이니라..."




계속...

글 그림 : 노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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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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