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중국 '인민'이 된 우리의 조선족 이야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중국 '인민'이 된 우리의 조선족 이야기

[신간]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

중국이 고구려를 소수민족 변방정권으로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 동북지역(동북 3성인 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은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발해 왕조가 세워진 곳이며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 있던 중국 길림성 집안시는 물론 길림성 동쪽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지금도 우리 동포들이 80여만명이 살고 있다. (중국 조선족 총인구는 2백3만여명. 그중 97%인 1백86만여명이 동북지역에 거주).

<사진1>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

***조선족은 동북아 평화시대를 위한 백년대계에 중요한 자산 **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임계순 지음. 현암사 간)는 이러한 민감한 시기에 조선족의 역사적.문화적 실체를 종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간도(중국에서는 연변으로 지칭)로 불리는 이 지역은 1909년 일본이 조선의 허락도 없이 불법적으로 중국에 팔아 넘긴 곳으로 이 지역에 살던 조선족은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으로부터 사실상 버림을 받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억지로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 임계순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족은 19세기 만주 벌판을 개척했으며, 20세기 동북3성 지역을 지켜내고 연변 자치주를 일군 대륙 동북의 터줏대감”이며 나아가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21세기 동북아 평화시대를 주도할 한반도 백년대계를 세우는 작업과도 깊이 연관됐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 중 오늘날 조선족이 어떤 의식을 갖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조명한 대목이다.

<사진 2> 중국 동북지역 지도

***조선족의 조국에 대한 이중의식**

조선족은 82년 4월 중국 정부가 고국 방문을 허가하면서부터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92년 8월 한중 수교 후 조선족에 대한 취업이 허용됐다. 조선족들은 한국과 중국의 엄청난 임금 격차 때문에 한국에만 가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조선족은 친척 방문이나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불법 체류자가 되고 위장결혼으로 농촌총각들을 허탈하게 하고 연변파 같은 폭력 조직도 생겨났다. 한편 조선족이 한국행을 갈망하자 이를 악용해 사욕을 챙기는 한국 중개인이 생겨났고 조선족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후 임금은커녕 신체적.정신적 폭행을 일삼는 한국인 고용주도 늘어갔다.

게다가 같은 동포로서 처음에는 ‘죽었다 살아온 가족’처럼 반겼던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는 오래가지 않아 이질감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조선족은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행동.표현,사고가 한국인과 다르고 또 조선족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국가관을 지닌 것을 알고 섭섭했다.

한때 따뜻한 눈으로 서로를 보던 한국인과 조선족은 서로 믿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한 중국인 변호사는 “한국인이 가장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중국 조선족이고, 중국 조선족이 가장 증오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한국사람이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필자가 2002년 6월 한국 대학생 3백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5% 이상이 조선족의 귀화를 찬성했다. 그러나 조선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조선족 86% 이상이 한국에 영주할 의사가 없으며 한국과 중국이 축구 경기를 하면 당연히 중국을 응원하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한국을 일자리가 많고 열심히 일하면 돈을 모을 수 있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한족과 소수민족간 분열과 대립이 생길까 염려하여 조선족에 대한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1953년 60%에 달했던 연변조선족 자치주 조선족 비율은 1993년에는 40% 아래로 떨어졌다.

조선족 비율이 이처럼 축소된 것은 산업화.도시화 추세를 따라 조선족이 대도시로 이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족을 조선족 자치주로 이주시킨 결과라 볼 수도 있다.

한중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족 중세는 '이민의식과 정착의식' '손님의식과 주인읫기'이라는 이중적인 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중국 조선족의 이민 역사가 1백50여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 중에는 한반도에서 출생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 중에는 아직도 '나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40대 이하 젊은 조선족은 중국에서 태어난 세대다. 이들은 중국을 통하여 한국을 보기 때문에 중국이 바로 그들의 조국이며 모국이고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아니다.

중국 조선족은 비록 가난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왔으므로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수모와 멸시, 차별 대우를 참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만큼 원한이 깊어져 나중에 폭발하면 살인까지 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

한국인들은 자기들끼리도 출생지.학벌,빈부.연령에 대해 차별을 한다. 그런데도 조선족은 자신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제반 정책. 노동조건과 임금의 격차. 혹은 개인적인 태도를 모두 민족의 정이 약한 것으로 평가하고 특별히 조선족이라서 차별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 부족.무지.정당하지 못함 때문에 무시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한국 고용주도 나쁘지만 불법을 불법으로 인식하지 않는 조선족도 큰 문제다.

한국사회가 조선족 사회와 성공적으로 문화를 교류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중국내 소수민족이고 중국 국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조선족을 상대로 경제지원과 투자를 하여 조선족 사회의 경제를 발전시켜 중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해야 한다. 중국 사회에서 조선족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 한국 경제와 국가 발전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조선족 사회는 남북간 문화 충돌 완충 역할할 것**

또한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융합으로 이뤄진 조선족이 가진 이중적 문화는 한중 교류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조선족 사회가 지닌 문화적인 성격은 남북 정치의 결합과 문화의 이질성 극복에서도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북한 주민보다 훨씬 나은 중국 동포가 한국에서 모멸적인 차별 대우를 받는 걸 보면 남북 통일 이후 한국사람이 북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추측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문화적 갈등이 초래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 사회가 한국과 북한 사이에 문화 충돌 완충 지대로 부각될 수 있다.

이제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적극 협력하여 연변 지역을 동북아 경제발전 중심지의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정책으로 보아 당분간 북한이 개방 정책을 적극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과 적극 협력하여 연변을 동북아 경제발전의 중심지로 만든다면 더 많은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북한을 더 빠른 시일 내에 개방시킬 수 있으며 북한 개방에 중국을 적극 동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 경제권의 주임에 위치한 두만강 하류 삼각주는 동북아 지역에서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두만강 삼각주는 연변과 북한 변경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므로 이 지역 경제 무역 교류의 활성화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경제발전과 북한 경제회복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