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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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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어요"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 1-②

이른바 '배달 산업'은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며 연간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노동자들의 희생이 감춰져 있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은 지난 수개월간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겪는 사건사고와 안전실태를 취재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배달 중 숨진 18살 김은범 군의 죽음을 통해, 청년 라이더들이 처한 비참한 노동현실과 비정상적인 법체계를 고발한다.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은 4차례에 거쳐 연재된다. 매편의 ①번 기사는 주요 취재내용을, ②번 기사는 취재기를 담고 있다. 편집자


'뉴스타파X프레시안' : '배달 죽음'...청년산재사망 1위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린 18살 은범이의 죽음
1-② "친구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어요"


아버지는 선원이었다. 한번 바다로 나가면 좀처럼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동생 은범이는 직장생활 하는 누나들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가정형편을 알았던 걸까. 은범이는 누나들에게 사소한 것 하나 사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나이 때에는 옷이든 신발이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군것질도 하고 싶은 나이다. 누나들은 그런 동생이 안쓰러워 "뭐 사줄까?" 하면 항상 괜찮다고 싱긋 웃기만 했다.

입는 옷도 신발도 늘 똑같았다. 한창 성장기인지라 자고 일어나면 커지는 발을 신발이 따라가지 못했다. 자기 발보다 작은 신발을 구겨 신는 동생을 보며 누나들이 신발을 사주려 했다. 은범이는 씨익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누나, 괜찮아, 뭐 하러 이런데다 돈을 써."

그런 어린 동생이 일을 시작했다. 전자마트 배달 일이었다. 무거운 짐을 업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왔다. 바쁘다보니 끼니를 건너뛰기도 다반사였다. 누나들은 은범이가 걱정됐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했지만 은범이는 "괜찮아. 아직 할 만해"라며 신발을 거부할 때의 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받은 첫 월급에 싱글벙글 기뻐하던 은범이 모습을 누나들은 아직 잊지 못한다. 은범이는 자기 용돈을 조금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어머니에게 드렸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전자제품 배달 일이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은범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잠시 쉰다고 누나들에게 말했다.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동생이 안쓰러웠던 누나들이었다. 일을 그만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쉰다던 은범이는 곧바로 족발집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홀 서빙 일을 제안 받았다고 했다. 말릴 수는 없었다. 오토바이 배달은 위험하니 그것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할 뿐이었다. 은범이는 자기는 면허가 없으니 그런 일은 안 한다고 했다.

그런 은범이가 일한 지 나흘째가 되던 날 저녁 무렵이었다.

"누나, 내가 일하는 족발집 정말 맛있어. 먹으러 와. 맛집이야."

이 말을 하면서 집을 나간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벼운 타박상 정도일거라 생각했다. 동생 은범이가 있다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 응급실. 동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응급실 침대에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그 앞에서 누나들은 오열했다.

족발 집에 놀러오라는 동생의 말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나들은 은범이를 어릴 때부터 챙겨왔다. 못 해준 게 많아 늘 마음 아팠다.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동생이 겨우 열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 제주의 한 납골당에 안치된 고 김은범 군. ⓒ공동취재진

배달하다 죽은 은범이, 사장은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사고를 당한 은범이는 오토바이 면허없이 배달 일을 하다 마주오던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서울에서 은범이의 어머니를 만났다. 경찰 조서, 참고인 진술서, 은범이가 일한 족발집 동료 진술서 등을 모두 훑어보았지만, 은범이가 죽게 된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다보니 궁금증이 증폭됐다. 은범이가 일했던, 그리고 사고가 난 제주도로 향한 이유다.

제주에서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김진우(가명·19) 군이었다. 은범이 집에서 진우를 만났다.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온 진우는 키도 크고, 어깨도 넓었다. 진우는 은범이의 친구이면서, 함께 족발집에서 일한 동료이기도 했다.

진우는 은범이를 족발집에 소개해줬다. 자기가 친구를 소개해줘서 그런 화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우는 여전히 자책하며 친구를 잃은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은범이는 족발을 배달하고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족발집에서 일한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은범이는 애초 오토바이 면허가 없어 홀 서빙으로 채용됐다. 그런데도 사업주는 은범이에게 배달을 시켰다. 은범이가 죽은 이유였다.

사업주는 사고 조사 과정에서 은범이에게 배달을 결코 시킨 일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자 수사기관은 사업주에게 가게 내부 CCTV를 찍은 화면을 보여주면서, 실제 배달을 시킨 게 아니냐고 압박했다. 사업주의 답변은 황당했다.

수사기관 : (CCTV 화면에서) 죽은 아이가 배달 음식 포장지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확인하면서 배달 나가는 장면, 그리고 포장된 배달음식을 가게 밖으로 들고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 헬멧을 착용하고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뒤, 배달 나가는 뒷모습을 사장이 보는 장면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배달하는 모습이 아닌가요?
사업주 : 아이가 포장된 배달 음식을 가지고 밖으로 들고 나가 배달 직원에게 건네주거나, 포장 손님에게 건네주는 장면일 수 있습니다. 헬멧 착용은 호기심에 썼을 수도 있습니다.

수사기관 : (사고 당일 CCTV를 보여주며) 아이가 헬멧을 착용한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까?
사업주 : 눈으로는 봤겠지만, 경황이 없었고 주문전화와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라 머리로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사기관 : (사업주 바로 앞에서 헬멧을 쓴 아이와 직원들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정말 헬멧 착용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사업주 : 못 봤다는 것은 아니고, 너무 경황이 없으니깐 눈으로는 봤지만은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였다.

은범이를 떠나보내고 자책하는 친구

▲ 은범 군 친구 김진우(가명) 군. ⓒ공동취재진

"그 사람도 자기 알바가 그렇게 됐으면 책임져야 되는 부분이 있기에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누가 돈을 달라고 했나요. 그냥 와서 은범이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가실 수는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안 했으면, 연락이라도 해서 '죄송하다' 이런 말이라도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어요. 진심으로 사과 한마디라도 했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싶어요."

사업주는 은범이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은범이 부모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진우는 그런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친구가 일하다 죽었지만 사업주는 도로교통법 위반만 적용돼 벌금 30만 원형을 받았다. 진우는 은범이의 목숨 값이 30만 원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솔직히 그 사장에게 엄청 화가 나 있었는데요. 사업주에게 내려진 벌금이 고작 30만 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부터는 아무도 믿지 못하겠더라고요.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경찰, 검사, 그리고 판사 자리에 앉아 있구나 싶더라고요. 사람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잖아요. 어릴 때부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배우잖아요. 정말 말 뿐이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목숨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도 사람 목숨을 그냥 이렇게 지나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 (울음) 사람 목숨은 재판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울음)"

고개를 떨군 진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가 죽은 뒤, 자책감에 시달렸다. 출구를 찾지 못한 괴로움은 자기 안에 그대로 남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무한히 이어지는 자책감이었다.

'내가 친구에게 그 일을 소개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친구를 떠나보냈지만, 진우는 하루도 친구를 잊은 적 없다.

"세상이, 그리고 그 사장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울음) 친구가 죽고 나서 제가 어떻게, 그리고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지, 어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 친구들이 그 사건 이후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울음)"

은범이가 진우에게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그 꿈은 열여덟 살 나이에 지고 말았다.

은범이 일했던 족발집, 이제 배달원 대신 배달앱 이용 중

▲ 은범 군이 일했던 족발집. 한 배달대행업체 라이더가 배달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공동취재진

진우를 만난 날 밤, 은범이가 일했던 족발집을 찾았다. 가게는 족발집 그대로였다. 다만, 은범 이에게 배달을 시킨 사업주는 다른 이에게 가게를 넘긴 지 오래였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직원이 홀 서빙을 보고 있었다.

가게의 모든 것은 경찰 진술서, CCTV 증거 화면 등에서 본 그대로였다. 사업주만 바뀌었지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다만, 가게 앞에 오토바이가 없었다. 궁금증이 생겼다. '은범이 사건 이후 배달은 하지 않는 걸까'. 착각이었다. 배달원은 쓰지 않고, 배달앱과 계약을 맺고 배달 업무를 계속 하고 있었다. ‘배달의 외주화'인 셈이다.

배달원 관리가 어려워서일까, 마진이 남지 않아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으나, 바뀐 사업주는 이전과 달리 배달 일을 하는 직원을 두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배달앱'을 집어넣었다. 결과적으로, 새 사업주는 은범이처럼 배달하다 사망하는 일이 발생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족발 하나를 포장해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 밤 12시가 넘었으나, 차도에는 '요기요', '부릉' 등 배달업체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내며 쉼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강혜인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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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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