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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 가려진 ‘숨겨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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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 가려진 ‘숨겨진 전쟁’

[신간] ‘킬링필드’ 초래한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

지난 1월 7일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된 지 25년이 됐다. 폴 포트 등이 이끈 크메르 루주 정권이 캄보디아에서 권력을 잡은 기간은 1975년에서 1979년까지 3년8개월하고 20일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이 기간동안 학살당한 캄보디아 국민은 1백70만명이 넘는다. 영화로도 제작돼서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잔인한 '킬링필드'의 주역이 바로 이 크메르 루주 정권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유엔의 도움으로 특별전범재판소가 설립돼, 이들 전범에 대한 역사의 단죄가 조만간 진행될 예정이다. 대학살의 주범인 폴 포트는 이미 5년전 사망해 진범을 가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당시 총리를 지냈던 키우 삼판 등 6명이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키우 삼판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잔인한 고문 끝에 교화소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지난 해 12월 31일에서야 최초로 인정했지만 모든 잘못을 이미 사망한 폴 포트에 전가하고 있는 서글픈 상황이다.

그 가운데서도 키우 삼판은 면죄부를 받으려는 심산이었겠지만 유의미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불행은 냉전의 과정에서 대부분 발생했다는 것이다. 키우 삼판이 말한 "냉전의 과정에서 발생한 불행", 과연 그 냉전의 과정이란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크메르 루주와 같은 잔학한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이 바로 이 <숨겨진 전쟁 :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SIDESHOW : Kissinger, Nixon and the Destruction of Combodia)>(윌리엄 쇼크로스 지음, 김주환 옮김, 도서출판 선인 펴냄)이다.

***캄보디아戰, 베트남戰에 가려 드러나지 못한 '숨겨진 전쟁'**

분쟁과 난민문제에 천착해온 쇼크로스는 영국의 저명한 중견 언론인으로 현재는 영국 BBC 방송에서 국제문제에 관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책으로 1979년 풀리처 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바 있다.

그가 쓴 이 책은 제목에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숨겨진 전쟁이란 바로 베트남전 당시 발생했던 또 다른 전쟁이었지만 부각되지 못했던 캄보디아 전쟁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으로, 약 1백20만명의 사망자와 약 3백만~4백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베트남전쟁이라는 장막에 가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숨져간 캄보디아 전쟁은 베트남전의 '희생양'이 돼 아직까지도 제대로 조망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놀랍다. 물론 베트남전쟁 시기 미국이 캄보디아의 병참기지를 폭격한 것은 간헐적으로 보도돼 알려지긴 했으나, 이 책이 밝혀낸 바와 같이 또 하나의 전쟁을 미국이 펼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진실'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닉슨과 키신저, 캄보디아전쟁 숨기기 급급**

이 책은 또 미국은 왜, 무엇 때문에 중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던 약소국 캄보디아를 유린했는지, 그리고 그 기간동안 캄보디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규명해주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1969년 3월, 미국은 캄보디아 영내를 통과하는 '호치민루트'를 봉쇄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 공습을 계획한다. 작전명 '조찬'(Breakfast)으로 명명된 이 계획에 따라 3월 17일 늦은 밤, 괌 앤더슨 미 공군기지를 이륙한 B-52 폭격기들은 5시간 뒤 캄보디아 상공에 도착하고, 곧이어 가로 2마일, 폭 0.5마일의 구획된 지역에 마치 도장 찍듯이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상황은 이처럼 급박하게 전개됐지만, 베트남전의 뒷전으로 밀린 탓에 캄보디아 문제는 여전히 '지엽적'인 문제로만 여겨졌다. 무엇보다 미국은 공습일지까지 조작해가며 캄보디아에 대한 공습을 은폐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물론 언론과 미 의회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주역은 닉슨과 키신저였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무려 4년여에 걸쳐 대대적인 공습이 이뤄진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투하한 총 16만톤의 4배나 많은 양의 포탄이 캄보디아 땅을 유린한 것이다. 그 결과 2백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고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숨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닉슨 행정부의 이 엄청난 음모와 범죄 행위는 4년 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지면서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이쯤되면 책의 원제가 왜 'SIDESHOW : Kissinger, Nixon and the Destruction of Combodia'인가를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킬링필드

***미국, 킬링필드로 악명높은 잔악한 크메르 루주 정권 탄생 도움 셈**

다시 원래의 의문, 어떻게 크메르 루주와 같은 잔학한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해 천착해보면 저자는 인도차이나가 공산화된 이후 지난 1970년대 중반 '킬링필드'로 악명을 떨쳤던 크메르 구주가 승리하게끔 발판을 제공해 준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1970년 3월 당시 캄보디아에서는 론놀이 CIA의 지원하에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를 권좌에서 쫓아낸 뒤 친미 정권을 수립한다. 친미주의자였던 론놀은 미군의 캄보디아 공습을 묵인한다. 캄보디아에 병참기지와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던 북베트남군을 섬멸시켜야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론놀 정권의 이러한 정책은 당시 미미한 존재였던 크메르 루주가 급성장하도록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북베트남과 중국이 당시 캄보디아 공산당인 크메르 루주에 대한 대규모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결국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집권으로 야기된 수백만명의 대량학살 참극은 베트남전쟁 뒤에 '숨겨진 전쟁'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북 정밀 폭격론' 주장 미 매파, 한반도 제2의 캄보디아화 할 수도 **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유엔 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 선거감시단원으로 캄보디아에서 활동한 인연이 있는, 이 책을 번역한 YTN의 김주환 기자는 캄보디아의 숨겨진 전쟁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우려스런 상황 전개를 빗대고 있기도 하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 증대 과정에서 미국내 일부 매파가 주장한 영변 핵 시설물 정밀 폭격론이 캄보디아 전쟁의 발단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해 3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매파들은 "미국이 한국 정부의 동의없이도 최후의 수단으로 북한을 공격할 수 있으며 그렇다 해도 김정일이 보복적 자살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이들 매파들은 정밀타격이라는 제한된 작전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있고 전면전으로의 확대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캄보디아 전쟁도 이같은 제한된 작전만을 수행한다는 주장에서 확대된 것을 생각한다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캄보디아 전쟁 당시 미군 수뇌부들은 몇 시간 동안의 공습만으로도 북베트남군의 전의를 완전히 꺾어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 같은 작전은 앞으로의 4년간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역자인 김주환 기자는 "미국내 역대 정권의 소수 강경파들이 수립한 대외정책의 골간이 해당 국가의 민중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는지,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이 혹시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을지를 생각한다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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