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출신의 재료공학자가 8편의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세계 과학계에서 망신을 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세계 물리학 관련 학회들이 표절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서두르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5년간 8편, 러시아 학술지 논문 등 표절**
세계적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 신년호는 '잘못에 대한 안이한 태도(Complacency about misconduct)'라는 제목의 1면 사설과 3면 보도를 통해 "KAIST 출신 재료공학자인 한국인 박모씨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방문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1997년부터 2001년 사이 발표한 논문 가운데 최소 8편의 논문을 표절했으며, 2편을 중복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표절에 대처할 가이드라인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네이처>는 박씨가 베낀 것으로 지적한 러시아어 논문과 박씨 논문의 사진을 나란히 싣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전세계 물리학 관련 학회들의 연합체인 '국제 순수 및 응용물리 연합(IUPAP)'이 지난해 10월 표절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워크숍을 개최했으며 올 가을까지 초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그동안 영어권 학자들이 읽기 어려운 러시아어 학술지 논문들을 주로 표절해 영어권 학술지에 발표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박씨는 1996년 KAIST 재료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2년 3월 금오공대에 임용되기까지 80여편의 논문을 발표해 왔는데, 이들 모두에 대해 표절 여부 조사가 이뤄지진 못했다고 <네이처>는 지적했다. 박씨는 2000년과 2001년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 두 편의 논문이 표절한 것으로 밝혀지자 2002년 7월 한 학기만에 사표를 제출하고 잠적한 상태다.
***논문 편수로 과학연구 평가하는 풍토가 바뀌어야**
앞서 2001년 11월에는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 통신학술지가 "동서대 백모, 경북대 박모, 포항공대 홍모 교수 등 3명이 6개월 전 이 학회지에 발표했던 내용이 기존 논문의 표절이며 논문의 주저자인 백 교수는 표절 논문으로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발표해 국제 과학계에서 망신을 산 적이 있다.
당시 표절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 백씨는 재직하던 동서대에 사표를 냈으며, 경북대는 2002년 표절 논문으로 백씨가 받았던 박사학위를 취소하고 백씨의 지도 교수였던 박 교수를 해임했다. 홍 교수는 포항공대로부터 3개월 정직 조치를 당했다.
국내 과학계에서는 2001년 이후 2년 만에 또다시 표절 사건이 불거진 데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연구 평가 관행 탓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의 한 박사 연구원은 "연구자들이 표절에 대해서 둔감한 탓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 학술지 게재 논문 편수로 과학기술 연구를 평가하는 현재의 관행"이라며 "연구를 하다보면 성과가 많은 해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해도 있는데 정기적인 연구 평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논문을 계속 생산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압박 속에서 개별 연구자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중복 발표나 표절의 유혹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학회 차원에서 중복 발표나 표절에 대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연구의 질을 장기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평가 관행이 시급히 자리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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