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향한 '정치적 올인'을 선언했다. 내년 총선결과에 자신의 재신임 문제까지도 연계시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벼랑끝 승부수'다.
노대통령은 24일 청와대 측근비서들의 총선출마를 격려하는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 대 노무현, 열린우리당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해 연말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내년 총선을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 양당 대결구도, 보다 노골적으로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노무현이냐 한나라당이냐"를 선택하도록 몰아가겠다는 노대통령의 전략구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권의 '총선승리 월별 시나리오'**
노대통령의 이같은 구상은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정가에서 예견돼 왔던 것으로 새삼스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노대통령이 지난 10월말 민주당을 탈당했을 때 정가에는 정치권내 노대통령 측근인사들이 작성했다는 '총선승리 월별 시나리오'가 나돌아왔다. 시나리오의 요지인즉 다음과 같았다.
11월, 열린우리당의 민주당 대거 탈당을 통한 민주당 쇠락.
12월, 대대적 개각 및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통한 국정 쇄신 및 이에 따른 지지율 제고.
1월,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에 따른 한나라당 분열.
2월, 노무현 지지 네티즌 및 개혁세력 재결집을 통한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 대결구도 완성.
여권의 이같은 구상은 근본적으로 노대통령 재신임 발언이후 드러난 '여론 추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신임 발언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의 공통점은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30%초반으로 변함없이 형편없으나, '국정 혼란'을 이유로 노대통령의 중도 하차에 대해선 60%전후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노대통령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선 불만이 대단히 높으나, 그렇다고 취임 1년도 안돼 대통령을 교체하기에는 '정치적 대안세력'이 부재한다는 이유등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라는 조사결과였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노대통령 진영에 상당히 '긍정적 민심 동향'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 구체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되기 위한 구체적 월별 시나리오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당의 동요가 노대통령의 쐐기박기**
하지만 그후 진행된 정치상황은 이같은 시나리오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우선 11월의 '민주당 쇠락' 전망이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조순형-추미애로 상징되는 민주당 대표경선이 여론몰이에 성공하면서 도리어 민주당은 정당지지도 1위로 오른 반면, 불법대선자금 및 측근비리 스캔들에 휘말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지지율 하락 및 정체위기로 내몰렸다.
12월의 국정 쇄신 시나리오도 기대를 밑돌았다. 정부여권은 노무현정부 출범후 야기된 부안 핵폐기장 사태, NEIS 문제 등의 연내해결을 추진해 NEIS 문제등에서는 극적 타결에 성공했으나, 연말 대대적 개각 및 비서실 개편에 필수적인 거물급 인사들의 영입 실패로 전면적 국정쇄신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실패했다. 대다수 영입대상이 "내년 4월총선이 끝나면 또다시 전면개각이 불가피할 텐데 서너달짜리 장관을 맡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로 자리를 고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초 시나리오가 제대로 맞아들어가지 않자 열린우리당 내부등에서는 적잖은 동요가 일어났다. 특히 수도권 현역의원 및 호남권 의원들의 동요가 커, '총선전 민주당과의 재합당' 또는 '총선후 연립정권 수립' 얘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정동영 의원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형제당"이라는 발언도 이같은 흐름의 산물이었다.
노대통령의 지난 19일 노사모 집회에서의 "위대한 노사모여, 다시 한번 뛰어달라"는 발언과, 24일의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발언은 이같은 여권내 동요에 대한 노대통령의 승부사적 '쐐기박기' 성격이 강하다.
***비판적 지지층의 동향이 최대변수**
일련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노대통령의 내년총선 전략은 '2파전' 대결구도이다. 내년초 열린우리당 입당후 선거참패시 대통령직 사퇴라는 극한카드를 앞세워 "노무현이냐 한나라당이냐"는 선택을 압박, 내년 총선을 치루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이런 배수진을 친 뒤 현재 지명도가 가장 높은 강금실 법무장관을 차출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강남갑구에 출마시키는 등 한나라당과의 극적 대립구도를 만들어내면 내년 총선에서 한번 승부를 걸어볼만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이같은 승부수가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치권에서 전망을 힘들게 만드는 최대 불확실요인으로 노대통령의 취약한 지지율을 꼽고 있다. 노대통령이 노사모 등 친노세력에 밀접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 지난해 노무현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비판적 지지층'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 비판적 지지층은 현재의 한나라당을 결코 정치적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냐 한나라당이냐"는 식의 노대통령의 벼랑끝 전술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는 강금실 법무장관도 최근 지적했듯 집권초 노무현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부의 집권초 낮은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딴지걸기 못지않게 노무현정부의 철학빈곤과 무능력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대통령의 현재전술은 '네탓 전술'이다. 그러나 '내탓'이 병행하지 않는 전술은 실패할 위험이 크다. 내년 총선의 최대변수인 '비판적 지지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추후 대응을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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