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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 담론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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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회의 평등' 담론은 허구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조국 정국'을 보면서…

'기회의 평등' 담론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기회의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 하는 학생에게 난이도가 같은 시험을 치게 하여 명문대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기회의 평등일까? 부자든 빈자든 누구나 같은 종류의 시험을 치게 하여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누는 것이 기회의 평등일까?

개인의 자질과 능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기회의 평등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자질과 능력의 차이에 더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권력과 자원의 격차가 존재하는 한 기회는 결코 평등할 수 없다. 인류 문명이 존재한 이래 기회의 평등은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허구

부자 부모를 만난 아이와 빈자 부모를 만난 아이가, 고학력자 부모를 만난 아이와 저학력자 부모를 만난 아이가 기회에서 평등할 수 있을까. 머리 좋은 아이와 머리 나쁜 아이가, 건강한 아이와 아픈 아이가, 강남에서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기회에서 평등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와 지방에서 자라는 아이가, 도회지에서 자라는 아이와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가, 자가를 소유한 아이와 전월세를 전전하는 아이가, 자식의 스펙을 도울 수 있는 부모를 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부모가 정규직 대기업 임직원인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기회에서 평등할 수 없다.

지역이 나뉘고, 계급이 나뉘고, 출신성분이 나뉘고, 학력이 나뉘고, 경제적 부가 나뉘고, 문화적 자본과 지식의 양이 나뉘는 사회 체제에서 기회의 평등은 허울 좋은 환상에 불과하다.

'결과의 평등'에 주목해야

기회의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존재하지도 않는 기회의 평등을 강변하기보다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실현 가능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게 현실적이다. 이를 통해 역으로 기회의 불평등을 보정(補正)하는 것이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여러 가지 정책들을 조합한다면, 임금과 소득에서 고학력자와 저학력자의 격차, 전문직과 비전문직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대기업-공기업 종사자와 중소영세기업 종사자의 격차,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격차, 남자와 여자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기회의 불평등이 야기한 구조적 격차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계급 간, 계급 내 '압착'을 고민해야

교육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교육을 통한 사다리 오르기는 막을 내렸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재학생 수는 한정되어 있으며, 사회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졸업생들이 계급 피라미드의 상층을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문제는 상층 계급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그들이 누리는 부와 차지한 자원의 규모다. 따라서 현실적 해결책은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 간의 소득 격차, 그리고 계급 내부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대압착(great compression)'이라 불렀다.

예를 들면,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찰총장을 하는 윤석열의 소득이 고등학교를 나와 검찰청을 청소하는 아무개의 소득을 지나치게 초과할 수 없도록 압착하는 것이다. 나아가 윤석열의 배우자가 소유한 자산에 과감하게 과세함으로써 돈이 돈을 버는 불로소득의 여지를 근절해야 한다.

임금과 소득과 자산에 대한 압착의 범위는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결정을 거쳐 입법으로 처리하면 된다. 미국의 전성기를 돌아보면 최고 부자 소득의 70~90%를 세금으로 내게 했다.

'경쟁주의'와 '능력주의'의 또 다른 표현

지금 대한민국에서 횡행하는 '기회의 평등' 담론은 '과정의 특권'을 당연시하고 '결과의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같은 일류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대기업-공기업에 입사했다는 이유로, 전문직 자격증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시를 패스했다는 이유로 과정과 결과에서 우대와 특혜를 누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불평등주의가 '기회의 평등' 담론 근저에 깔려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야기되는 '기회의 평등' 담론은 진정한 평등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사회 구성원 사이에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부당한 특권과 특혜를 정당화하는 '경쟁주의'와 '능력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아니다.

출발선 달라도 도착선 비슷해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슬로건은 허구다. 기회는 평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되려면, 기회는 불평등하더라도 과정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회보다 결과를 평등한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보정하고 이를 통해 과정을 보다 공정하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만들려 할 때, 모두에게 출발선이 같을 수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도착선은 비슷해야 하는데, 이는 인간들끼리의 협력과 조화 그리고 양보를 통해 실현 가능한 역사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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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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