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언론계의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에 언론비평 코너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이런 언론비평 코너를 보는 독자들의 반응이 곱지만은 않다. 언론비평이 언론의 뼈아픈 성찰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자사의 입맛에 쓴 보도를 반박ㆍ비판하거나 정치적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처럼 변질됐기 때문이다. 언론비평은 넘쳐나는데도, 정작 언론의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런 언론비평 풍토 속에서 언론인 김영호의 언론비평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언론 현장에 몸담았던 경험과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와 경제, 국제 정세, 사회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신랄한 비평의 '눈'과 '판단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번에 그가 <경향신문>, <미디어오늘> 등에 쓴 언론비평을 묶어낸 <언론비평과 언론권력>(미디어집 간)은 그 언론비평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나아갈 바를 고민하는 언론인,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 꼼꼼히 정독해 볼 만한 책이다.
***언론이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언론비평'**
그의 언론비평이 기존 매체의 언론비평과 특히 다른 점은 언론이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펜은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지만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에 주목한다. 그 신랄한 비판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그는 수많은 경제매체들이 늘어났지만 정작 기업경영의 문제점을 파헤치지 않는 한국의 언론현실을 따끔하게 비판한다.
"IMF 사태의 절대적 원인은 재벌기업의 집단부실화가 금융산업의 집단부실화로 직결된 데 있다. 그런데 과점신문들이 재벌개혁에 딴죽 거는 소리를 내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재벌 3세의 등극을 쌍수로 환영한다. 광고주의 보도내용 통제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달해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신문 주말 판을 꽉꽉 메우는 온갖 여피족의 라이프 스타일과 명품 관련 기사들 또 부동산 기사들도 그의 '눈'을 피해가지 못한다.
"무분별한 투기행각이나 사치스러운 소비행태를 조장하여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는 경제기사가 적지 않다. 빈부격차가 심각한 현실에서 다수의 국민에게 위화감과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지 모르겠다. 부동산 투기가 2년 넘게 기승을 부리면서 아파트 값이 크게 올랐다. 그런데도 언론은 어느 아파트 분양권, 어느 재개발 아파트를 사면 돈을 번다는 따위의 기사를 연일 쏟아낸다. 부동산 투기는 실수요자의 소득을 빼앗아가는 부도덕한 행위다. 그런데 언론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안겨줄 박탈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온 나라가 명품 열풍에 홍역을 앓는다. 신문 주말 판은 명품 특집을 다룬다. 거기에 명품 광고가 따라붙는다. 언론의 가면을 쓴 상업주의가 미소 짓는 모습이다"
그는 장래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할 수 있는 농업문제를 언론이 외면하는 것을 언론이 기본적인 제 역할을 방기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
"멕시코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가 세계화에 항거하여 자결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시장개방 압력에 눌려 농민들은 질식할 것 같지만 아무도 그들의 절규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언론은 눈과 귀를 막고 있다. 농업문제가 오래 전부터 언론에서 사라졌다. 농업시장이 개방되자 언론은 농업을 일몰산업으로 취급하여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전담기자를 두나 취재활동은 거의 없다. 소외계층을 철저히 외면하는 한국 언론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욕먹을 소리지만 아마 그곳에는 광고도, 접대도, 촌지도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농업은 화폐로 환산하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지구촌의 4분의 1이 기아의 고통에 울고 있는 현실에서 인구폭발, 기상이변이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파국의 순간에 언론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정부와 사주에게 펜을 두 번 뺏기다**
그의 언론비평이 갖는 힘은 언론의 '권력 중독'에 대한 저항의 체험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한국일보 재직 중이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 당했다. 국가 권력의 중독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펜을 놓은 것이다. 복직된 뒤에도 그는 다시 한번 권력에 저항했다.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다가 1997년 다시 한 번 펜을 뺏긴 것이다. 자본 권력의 중독 역시 거부한 셈이다.
'권력 중독'에 저항해 펜을 뺏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언론비평'의 길에 나섰다. '권력 중독증'에 빠진 언론과 동료 기자들을 향해 쓴 소리를 멈추지 않는 것도, '권력 중독'이 국가 전체를 좀먹는 현상임을 간파한 탓이다.
***언론 정치-경제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그는 고사 상태에 빠진 한국 언론을 향해 다음과 같은 쓴 소리를 일갈한다.
"언론이 진실과 공정을 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언론개혁이다. 여기에는 꾸준한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이 따라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쓴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론은 정치권력-경제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존재가치를 발휘한다. 언론은 '사회적 책임'과 '공중에 대한 봉사'라는 양축에 근거해야 존립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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