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혐의로 구속중인 김성래 썬앤문 전 부회장(54)이 지난 9월 재판부에 제출한 40여쪽짜리 탄원서가 뒤늦게 정가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씨가 탄원서에서 주장한 노무현대통령과 문병욱 썬앤문회장간 회동 등 일부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다른 내용들로 사실이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탄원서에 거명된 여야 인사들은 앞다퉈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는 등 정가가 부산한 대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주목받는 "사기꾼의 말"**
김성래 전 부회장은 중앙대 졸업후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 민정당 지구당위원장을 지내면서 구여권과 맺은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지난해 썬앤문 문병욱회장과 만난 뒤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통해 썬앤문에 부과된 1백80여억원의 세금을 23억원으로 깎는 공을 세워 일약 그룹 부회장이 된 여성인사로 유명하다.
김 부회장은 그후 올 1월초 아동전문출판사인 (주)계몽사를 인수해 회장에 오르는 등 독자적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몽사 경영권을 60억원에 인수한 뒤 자금이 부족하자 문병욱 회장 소유 골프장의 회원권 대출관련 서류를 위조해 농협으로부터 1백15여억원을 사기대출받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문회장은 김씨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둘 사이는 하루아침에 원수사이로 바뀌었다. 김씨는 결국 지난 5월 검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혐의로 구속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김씨는 구속직후 이른바 '녹취록'을 통해 "썬앤문이 대선때 95억원을 노무현후보측에 지원했다" "이광재에게 준 1천만원짜리 수표 복사본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이른바 '썬앤문 의혹'을 정치권에 불러일으켰으나 당시 서울지검 조사부는 "사기꾼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일축했었다.
김씨는 이에 지난 9월 서울지법 형사합의 23부에 문제의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고, 최근 들어 이 탄원서가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서청원-한인옥 만나"**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정신없이 바빴다. 민주당-한나라당측 인사들과의 인간 관계 때문에 내가 맡은 책임이 있었고 이때 각 당에서는 도움을 많이 요청했다"로 시작되는 탄원서에는 지난해 대선때 썬앤문이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 양측 모두에게 집요한 로비를 폈음을 보여주는 증언들이 가득하다.
우선 이회창 후보진영과 관련해선, "대선 막바지인 지난해 12월3일 오전 여의도에서 열린 한나라당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 참석해 이회창 후보의 부인인 한인옥씨와 1시간 가량 면담하고 다른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1시간가량 대화했다"고 적고 있다. 또 그날 저녁에는 서초동 팔레스호텔에서 자신과 문병욱 썬앤문회장,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가 함께 만나 맥주를 마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김씨 주장에 대해 한인옥, 서청원 양측 모두가 펄쩍 뛰며 부인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이종구 전 특보는 19일 한나라당 대변인실을 통해 "한 여사는 김성래씨를 전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며 "다만 당 후원회 행사에서 (김씨가) 여러 사람들과 섞여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서청원 전대표는 이에 앞서 김성래 탄원서에 기초해 자신이 썬앤문으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검찰측으로부터 흘러나오자 지난 8일 기자회견을 갖고 "나도 원내 제1당의 대표를 지낸 사람"이라며 "썬앤문에서 한푼이라도 받았다면 의원직 사퇴는 물론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에서 수사하겠다면 내일이라도 자진출두할 것"이라고 자신의 무죄를 강변했다. 서 의원은 "단 검찰도 나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번 사건으로 당과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킨데 대해, 법무장관을 비롯해, 검찰총장과 중수부장 등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당선자, 1월4일 문회장과 4시간 면담"**
탄원서는 또 지난대선 당시 노무현후보측에 대해서도 집요한 로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원서에 따르면, 대선 막바지인 지난해 12월3일 오후 김성래씨는 노후보 핵심측근인 이광재 전 청와대상황실장을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나 한시간 가량 만났다.
김씨는 또 그해 12월5일 노후보의 부산유세에 참석하기 위해 그날 오후 5시 비행기편으로 문병욱 회장, 문회장의 부산상고 동기인 모은행 간부 김모씨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이날 저녁 7시 부산 구덕체육관에 도착한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와 신상우 부산상고 동창회장을 만나 다음날 약속을 잡은 뒤, 다음날인 12월6일 오전 8시반께 노후보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 노문현 후보와 30분간 대화하고 이광재 전실장과 30분간 만났다.
노무현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인 당선자시절인 지난 1월4일 김씨는 노당선자와 문병욱회장간 점심약속을 주선, 4시간동안 자리를 마련했다. 회동후 문회장은 들뜬 기분으로 "(노대통령에게) 호텔 하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김씨는 적고 있다.
김씨는 문회장의 이같은 말이 알려지면서 (자신과 문회장에게) 국회의원과 대통령직 인수위사람, 공직자 등에게서 골프를 치자거나 "멀고 외진 곳에서 만나자"는 제의가 쏟아졌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김씨 주장에 대해 청와대는 "검찰수사가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검찰수사를 통해 이광재 전실장이 지난해 대선직전 썬앤문으로부터 1억원을 받아 안희정씨에게 전달했고, 대선당시 노무현후보 수행팀장이던 여택수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해 12월7일 노후보 김해유세때 3천만원을 받았고, 신상우 전의원도 2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김씨 진술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은 김성래 탄원서에 적시된 내용들을 빠짐없이 점검해 금명간 실상을 발표한다는 입장이어서, 검찰 발표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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