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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사꾼들의 神' 범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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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사꾼들의 神' 범려 이야기

[신간] 중국상술 읽을 수 있는 역사소설 <상성(商聖)>

상성(商聖)이라는 조어는 한참이나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는 '성인(聖人)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이나보다'는 얕잡아보는 마음 때문인가. 그러다가도 지은이가 중국인이고 춘추시대 책사인 범려(范蠡)를 대상으로 한 소설이라는 데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지구의 성장엔진'이자 '전세계 투자의 블랙홀'인 중국이 이제는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 이젠 '경제인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는구나'라는 마음에......

<사진>

***춘추시대 정치가이자 경제인인 범려(范蠡)에 관한 일대기**

중국 역사소설 작가인 셰스쥔(謝世俊)이 범려를 소재로 쓴 상성(전 3권 중앙M&B 펴냄)이라는 역사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범려라는 인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중국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는 인물인 범려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 인물로 정치가이자 경제인이라 할 수 있다.

춘추시대 당시 패권을 잡은 제후를 춘추 오패라 하는데 이 오패에는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초나라 장왕, 오나라 합려, 월나라 구천이 속한다. 범려는 이 가운데 월왕 구천을 도운 최고의 책사다. 하지만 단순히 범려를 책사로만 규정짓기는 힘들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범려를 소개할 때 오를 멸망시킨 월나라 상장군으로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후세사람이 그를 재신(財神)으로 받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만큼 범려는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상업을 크게 일으켜 천하제일의 갑부가 된 경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오늘날 대만에서 관우가 숭배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부와 권력에 관한 그의 원칙과 책략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크게 어필 되었으리라. 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논했던 덩샤오핑(鄧小平)도 이 범려의 연장선상은 아닐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무협소설의 대가인 김용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실제로 전도유망했던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 부시장이었던 우민이(吳敏一)가 올해 4월 사영기업 취업을 위해 사표를 제출하면서 말했던 "행정분야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그동안 꿈꿔왔던 기업인의 길을 걷고자 한다. 2천5백년 전 범려가 그랬듯 말이다"라는 출사의 변을 들을 때쯤이면 범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범려,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생각하는 인물**

중국인이 범려를 존경하는 이유도 단순히 그가 권력과 금력을 모두 거머쥔데 있는 것이 아니며 경제우선주의로 달려가고 있는 중국적 현실의 반영만은 아닌 듯 하다. 일생동안 부와 권력, 미인을 얻었으면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삶을 살다 간 범려가 진정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가 소설일지라도 범려에게 성(聖)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책이 나오게끔 하고 중국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게끔 한 원동력이 되었을 터이다.

범려가 진정 아름다운 삶을 살았노라고 말하게 하는 데는 스승 귀곡자(鬼谷子)의 가르침이 컸다. 무엇이든 극단적으로 추구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을 설파한 춘추시대 대학자인 귀곡자는 "모든 것은 정점에 이르면 위험에 처해지게 된다"는 자연의 이치를 강조했다. 이런 가르침을 받았기에 삶의 최고점에서 자신의 권부를 털어버릴 수 있었으며 극단으로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이처럼 범려의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합리, 균형잡힌 사고는 그의 애민사상과 이어진다. 범려는 전쟁을 감행하면서도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으면서도 순간순간 백성을 위하는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범려의 이러한 점은 '부와 권력이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할 줄 알 때 영원한 위대함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애민사상이 중국인들이 범려를 그토록 이상적인 인물로 추앙하는 근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범려 스승 귀곡자(鬼谷子) , 사주(四柱) 처음 만들어낸 학자**

범려에 뒤이어 잠시 귀곡자에게도 눈을 돌려보자. 귀곡자의 제자 가운데는 우리 귀에 익숙한 인물이 꽤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장의와 소진이라는 인물도 있다. 장의라 한다면 연횡책(連橫策)이라는 외교술을 주장한 사람이고 소진은 합종책(合縱策)이라는 외교술을 주장한 인물인데 여기서 합종연횡이라는 어휘가 탄생하기도 했다.

귀곡자는 또 오늘날의 '사주팔자(四柱八字)'할 때의 '사주(四柱)'를 처음 만들어낸 학자이기도 하다. 이 귀곡자가 전수한 천문지리와 역(易)은 범려가 춘추시대 최고의 책사이자 상인이 되는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인데 오늘날로 따진다면 시대와 환경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이를 통한 앞날에 대한 예지력이나고나 할까. 사물과 인심의 흐름을 세밀히 관찰하고 이에 부합하는 책략을 펴고 이에 맞게 처신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와신상담, 토사구팽, 도주지부 등의 고사성어 모두 범려와 관련 **

소설에 대한 서설이 너무 길어진 듯 하다. 범려를 온전하게 복원한 첫 작품인 상성은 역사소설이라지만 예전 고사성어를 흥미있게 풀어놓은 듯하다. 전체 3권으로 돼 있는데 범려의 삶이 크게 세 번 바뀐 것에 따른 구성이다.

1부는 범려의 어린 시절부터 월왕 구천을 춘추시대의 패자로 세우고 조정에서 물러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2부는 월나라를 떠난 범려가 제나라 동쪽 해변에서 가업을 일으켜 천금을 쌓고 제 평공의 재상직 제의를 사양하고 나서 재산을 모두 나누어주고 떠나기까지, 3부는 송나라 도읍 땅에서 상업을 크게 일으켜 천하제일의 갑부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책 내용은 이렇게 대별되지만 이와는 달리 이야기를 크게 몇 가지 고사성어와 인물로 나뉘어 보면 딱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토사구팽(兎死狗烹), 도주지부(陶朱之富) 등의 고사성어와 절세가인 서시(西施)와의 인연으로 대별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

범려의 일생 가운데 젊은 시절은 이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와 관련돼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고사성어는 오나라 부차(夫差)와 월나라 구천(句踐) 사이에 얽힌 이야기다. BC 496년 오왕 합려(闔閭)가 월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왕 구천에게 패하여 전사한 후 합려의 아들 부차가 본국으로 돌아와 이 원수를 갚고자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했다. 이런 각오 속에 부차는 결국 오나라를 침입해온 구천에게 승리했다.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오나라에 항복, 겨우 목숨만은 건지고 귀국한 후에 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 맛을 되씹으려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끝에 구천은 20년후 다시 오나라를 공격해 구차에게 승리를 거두고 춘추시대 제후의 반열에 오른다.

이 와신상담의 고사 속에서 구천의 책사로 등장해 승리를 이끈 인물이 바로 범려다. 범려는 부차에게 패한 후 자결하려는 구천에게 "굽힐 때 굽히고 펼 때 펼 수 있어야 하며 후일을 위해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간해 후일을 도모한다.

이후 범려는 오나라의 사정을 알기 위해 월나라의 미인인 서시를 부차에게 바쳐 서시를 통해 정보를 입수, 결국 구천이 오나라를 정복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서시와 범려 사이의 관계를 아는 것도 이 책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토사구팽(兎死狗烹)**

한 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유행하기도 했던 이 고사성어는 범려가 와신상담 끝에 부차에게 승리를 거둔 구천에게서 떠날 때 인용한 문구에서 유래한다.

범려는 구천이 '공을 나눌 줄 아는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나서 세상을 평정하고 나서는 자신의 존재가 그리 환영받지 못할 것을 예견한다. 이 때 떠나면서 한 말이 "날아다니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도 거두어 들이며, 토끼가 죽고나면 사냥개도 필요 없어져 삶아 먹힌다(飛鳥盡良弓藏 ,狡兎死走狗烹)" 즉 토사구팽이다.

이와는 달리 범려와 함께 구천의 주요 신하 가운데 한 명이었던 문종은 칼날 위의 꿀물에 연연해 하다가 나중에 구천으로부터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도주지부(陶朱之富)**

서시와 함께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제나라의 해변 금구에서 새로 가업을 일으킨다. 그는 이름을 '치이자피'로 바꾸고 곡물 생산과 소금 제조, 각종 물품 제작과 판매를 시작한다. 기후 변화를 관찰, 예측하고 물건의 분포와 교류에 주목하면서 생산과 교역에 주력한 결과, 범려는 일국과 맞먹는 생산력과 부를 쌓는다.

이후 범려의 존재를 알게 된 제나라 왕 평공이 출사를 권유하자 이를 사양한 후 "집에 있을 때는 천금의 재산을 쌓았고 관직에 있을 때는 재상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자수성가한 평범한 백성에게 이것은 갈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본 것이다. 고귀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은 징조"라며 그동안 모은 재산을 전부 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그곳을 떠나 노나라로 간다.

노나라에서 본격적인 상업 활동에 들어간 범려는 완벽한 물건과, 합리적인 가격, 적기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사업기반으로 춘추 말기 최고의 부를 쌓게 되는데 이 범려를 일컬어 후세에 '도주지부'라 칭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읽을 때 무슨 교훈이 있을까 부러 찾기도 하는데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옛날 얘기 듣는 재미가 쏠쏠한, 그러면서도 살아가는 인물들의 자세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추운 겨울날에 따스한 방에서 일독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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