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박상연(가명·21) 씨는 지난주 내내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살다시피 했다. 개강을 한 주 앞두고 방을 구해야 했지만, 껑충 뛴 가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것. 월세도 월세지만, 500~1000만 원에 이르는 보증금을 구하기는 더 어려웠다. 결국 박 씨는 매달 43만 원을 내고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심한 방은 한 번 눕고 돌아누우면 어깨가 벽에 닿는 정도였다. 도저히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수준"이라고 푸념했다.
신학기를 맞아 대학가는 다시 학교를 찾은 학생들로 북적이지만, 치솟는 방값에 대학생들이 한숨 짓고 있다. 지방 출신 신입생들은 방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재학생 역시 점점 오르는 방값에 밀려 새 집을 찾느라 전전긍긍이다. 취업난, 학비난에 겹쳐 이번엔 주거난까지 대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후문에서 학생들이 하숙집 광고가 붙은 게시판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취업난·학비난에 주거난까지…치솟는 대학가 방세
요즘 서울 도심에 위치한 대학가 주거비는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6~7평 남짓 원룸의 경우, 대부분 월세로 40~60만 원 선의 돈을 내야 한다. 그보다 싼 가격대의 방은 찾기도 어렵지만,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쪽방 수준인 경우가 많다.
신촌의 P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3일 "대학가 주변은 대부분 상권이기 때문에, 공시 지가부터 일반 주택가보다 높은 편"이라며 "더구나 요즘엔 신축 원룸 붐이 일고 있어 건물주들이 대학생에게 더 많은 돈을 받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서강대 학생 이상윤(가명·26)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한 달 용돈으로 50만 원을 받는데, 방값 40만 원에 공과금과 인터넷 비용 7~8만 원을 합치면 용돈이 모두 주거비에 들어간다"며 "과외나 알바를 여러 개 하지 않고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학생들은 전세를 선호하지만, 대학가에서 전셋집을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신촌의 S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 은행 금리도 싼 데다가, 원룸 지어서 전세를 놓으면 타산이 안 맞기 때문에 전세는 거의 없다"며 "원룸 중 열에 하나 정도가 전셋집"이라고 말했다.
대학가 인근 '재개발 바람'에 갈곳 잃은 대학생
대학가 '주거 대란'에는 인근의 재개발 바람도 한몫을 했다.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으로 철거되는 주택의 세입자들이 인근 대학가로 이주하면서 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해진 것.
현재 서울 대학가 주변에 재개발이 진행 중인 곳은 이문·휘경 뉴타운 일대의 한국외대·경희대, 장위·길음 뉴타운 일대의 고려대·동덕여대, 흑석 뉴타운 일대의 중앙대 등 모두 6곳에 이른다. 대학이 밀집한 서대문구 신촌과 마포구 아현·상수동 일대는 인근 가재울·북아현 뉴타운의 영향을 받고 있다.
뉴타운 바람은 대학가의 값싼 하숙촌까지도 밀어냈다. 고려대 앞 안암동·제기동 일대의 하숙촌은 뉴타운 개발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며, 하숙집이 즐비하던 공간은 원룸 주택 단지로 탈바꿈했다. 중앙대 인근 흑석동과 경희대·한국외대가 있는 이문동·휘경동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한성대 근처의 하숙촌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로 하숙집이 일제히 밀려났다.
흑석동 중앙대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수준이었던 원룸형 자취방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60만 원 대로 뛰었다"며 "중앙대 정문의 하숙집도 재개발로 많이 줄었으며, 후문 쪽인 상도동에 신축 원룸이 들어서면서 자취 비용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서대문구 신촌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게시판. 인근의 재개발 바람으로 대학가의 주거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
재개발 바람만이 대학가를 잠식한 것은 아니다. '취업난'과 맞물린 '주거난' 역시 심각하다. 연초는 보통 졸업과 입학이 맞물리는 시기이지만, 학교 주변을 맴도는 취업 재수생·삼수생이 부쩍 늘면서 취업한 선배가 떠난 자리를 새내기가 채우는 구조는 무너진 지 오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방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
졸업반 대학생인 김나진(가명·25) 씨는 "취직 준비를 하려면 졸업을 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서울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같이 취업 스터디를 할 사람들도 찾을 수 있고, 스터디 룸이나 도서관 활용도 해야 하기 때문에 졸업해도 학교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대학가 '주택난' 때문에 기숙사 입주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편이다. 연세대의 이번 학기 기숙사 경쟁률은 재학생의 경우 3.5대 1, 신입생의 경우 2대 1이었다. 인근에 재개발이 진행 중인 중앙대의 경우 4대 1, 경희대의 경우 3대 1을 기록했다.
고학생 두 번 울리는 '호화 기숙사'…한 학기 기숙사비 하숙집보다 비싸
이렇듯 경기 침체의 여파에 방값까지 오르면서 많은 학생이 기숙사로 몰리고 있지만, 고학생의 안식처로 여겨졌던 기숙사마저도 설움을 더하게 하고 있다 .
점차 대학가에서는 민간 자본을 투입해 기숙사를 짓고 있는 추세지만, '호텔급 기숙사'라 불리는 이들 시설의 가격이 고학생에게는 '언감생심'이 돼버린 것이 대학 기숙사의 현주소인 것.
2006년 건국대가 최초로 410억 원 가량의 민간 투자를 받아 12층짜리 3개 동의 '쿨하우스'를 건립한 이후, 숙명여대·서강대·단국대·명지대 등이 줄줄이 민간 자본 방식으로 기숙사를 세웠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돈으로 건물을 짓고, 이후 기숙사 수익금으로 건설비를 갚아나가는 민간 투자 운영(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은 필연적으로 기숙사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 방식으로 지은 건국대 '쿨하우스'는 미용실·패밀리레스토랑·편의점까지 갖춘 '고급형 기숙사'다. 그러나 기숙사비는 한 학기(4개월)를 기준으로 1인실 206만7000원, 2인실 138만4000원(보증금 10만 원 포함)에 이른다. 1인실에 살 경우 한 달에 50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예전 4인실 기숙사보다 두 배 정도 비싼 수준이다.
커피전문점·헬스장·서점까지 갖춘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의 경우, 기숙사비는 한 학기(4개월)를 기준으로 185만 원(2인실·식비53만원, 보증금 10만 원 포함)에 이른다. 식비까지 포함되는 주변의 하숙비가 월 35~40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역시 비싼 편이다.
▲ 2006년 최초의 민간투자운영(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지은 건국대학교 '쿨하우스'. ⓒ건국대학교 |
대학 기숙사도 '바늘 구멍'…기숙사 수용률 턱없이 낮아
기숙사 입주 전쟁은 점차 치열해지지만, 기숙사 수용률은 턱없이 낮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4일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서울 지역 대학 중 학생 대비 기숙사 수용률이 20퍼센트를 넘는 대학은 없는 상황이다. 지방 출신 학생의 비율이 대체로 50퍼센트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숙사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기숙사 수용률이 5퍼센트 미만인 대학은 경기대 제2캠퍼스(0.6퍼센트), 광운대(1.8퍼센트), 동국대(3.7퍼센트), 성신여대(2.1퍼센트), 세종대(2.1퍼센트), 숭실대(1.9퍼센트), 한성대(1.5퍼센트), 중앙대(4.6퍼센트) 등이 있었다. 동덕여대와 상명대 등은 기숙사가 아예 없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김나진 씨는 "울릉도에서 유학 온 친구도 기숙사에 지원을 했다가 떨어졌다"며 "일부 학생들은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고시생 전용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실제로는 고시 준비를 하지 않으면서 PSAT(공직적격성평가) 시험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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