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배경으로 강제동원 문제를 풀기 위한 우리 정부의 진지한 대화 요청을 수차례 무시한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물으며 "국가적 자손심 훼손", "외교적 결례" 등의 용어를 동원해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23일 "우리로서는 진심으로 편견 없이 일본과 강제징용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었고, 이러한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차장에 따르면, 정부는 7월 두 차례 고위급 특사를 일본에 파견했다. 8월 초에는 주일대사가 일본측 총리실 고위급을 통해서도 협의를 시도했다. 8.15 광복절에도 고위급 인사가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본 정부에 유화 메시지를 보낸 문재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까지도 발표 전에 미리 일본에 내용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일본 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맙다는 언급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김 차장은 "일본의 대응은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의 무시로 일관했으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문제와 경제 보복 조치를 해결하기 위한 일말의 성의도 보이지 않은 일본 정부에 사태 악화의 책임이 있으며, 지소미아 종료는 국격을 유지하기 위한 응당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날 오전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 등 신뢰 관계를 해치는 대응을 계속하고 있어 유감"이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불만을 표한 데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김 처장은 이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외교적 돌파구를 찾지 못해 일본의 경제 보복과 안보 갈등으로 비약되면서 안보 환경과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보수층의 '안보 불안론'도 적극 반박하며 파장 진화에 주력했다.
김 차장은 지소미아 연장 문제를 놓고 미국 측과 수시로 소통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양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에는 매우 긴밀하게 협의했다"며 "7∼8월에만 총 9번 유선 협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 백악관 NSC와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소통했고, 지난달 24일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서울 방문 시에도 이 문제를 협의했다"고 덧붙였다.
김 차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미 국방부 대변인 등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표한 데 대해서도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미국 측이 우리에게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해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미국이 표명한 실망감은 미측 희망이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실망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기회에 한미동맹 관계를 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면서 "이번 결정으로 지금보다 더욱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은 국방예산 증액, 군 정찰위성 등 전략자산 확충을 추진하겠다고 보완책을 강조하는 한편 한미일 군사 정보 교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2014년 12월에 체결된 한미일 3국간 정보공유약정(TISA)을 통해 미국을 매개로 한 3국간 정보공유 채널을 적극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일 양국이 미국을 매개로 안보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TISA를 통해 군사정보 교류에 지장이 없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차장은 "지소미아와 TISA 모두 2급 비밀까지 다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도 우리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보면서 우리가 스스로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자립도를 높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외부로 인해 우리 경제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셨을 것"이라며 "안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거듭 "현재 국제정세는 불과 몇 년전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자주의가 쇠퇴하고, 자국 우선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정도의 국방력을 갖춰야만 안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밖에 지소미아 재검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단언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이날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통보 시한인 24일까지 이번 결정을 재고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밝힌 발언을 일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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