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이 생각하는 국제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힘(power)'이라는 것이다. 국가들을 통제하는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무정부상태(anarchy)인 세계정치에서 상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힘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다.
그런 세계정치의 생리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찾아가는 방안으로 현실주의가 또한 중시하는 것이 '자조'(自助, self-help)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는 것, 즉 자신의 능력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면서 약소국의 재량 공간을 좁혀놓는다는 점에서 현실주의는 그다지 매력 있는 국제정치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가 군비를 증강하면 상대는 군비를 더 증강해 오히려 안보상황이 불안해진다는 안보딜레마를 지적한 이래 마키아벨리, 토마스 홉스, 한스 모겐소를 거쳐 헨리 키신저까지 수많은 국제정치 거장들의 지지를 받아왔고 지금도 국제정치를 설명하는데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의 동북아국제관계는 특히 '자조'를 강조한 현실주의 이론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일본의 최근 퇴행적 행보는 역내균형전략(Intraregional Balancing Strategy)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적 현실주의자 존 미어샤이머가 강조하는 것은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이다. 강대국들은 다른 지역에서 강자가 출연하는 것을 막아 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 건너 아시아 대륙에서 중국이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일본은 범위를 좁혀 아시아 지역 내부에서 균형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합과 성장을 막아 아시아지역 내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수출규제로 한국의 성장을 저지하려 하고, 북한에는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남북 사이에서 반간의 계책을 부리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반대하고, 재한 일본인의 전시대비 훈련을 주장한 데에서도 일본의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니 그 이전 6자회담에 참석해서도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우선 강조하는 태도에서부터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문제의 진전은 일본의 관심 밖이었음이 여실히 나타나 있었다.
그런 기저에서 일본은 북한을 되도록 기묘한(idiosyncratic)한 존재로 몰아가고, 되도록 도발적인 국가로 부각시키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악마로 묘사해왔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의 정부와 언론이 공조를 해왔다. 북한 취재에 관한 한 일본언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성적인데, 그만큼 목표와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억누르면서 북한은 기이한 존재로 만들어 한반도 통합은 저지하고, 미국, 호주, 인도, 아세안과 손잡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대해보겠다는 것이 일본의 외교전략인 것이다.
우리의 동맹국 미국은 어떤가? 우선, 북핵문제 해결에 대해 유연한 입장으로 갈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게 문제해결의 길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임에도 미국은 그쪽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가끔 단계적 비핵화로 갈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그런 모습을 이내 감춰버린다.
신뢰가 부족한 국가 사이에서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북미 간에도 70년 이상 쌓인 불신이 있다. 이를 전제한다면 비핵화도 단계적으로 주고받기를 하면서 불신을 신뢰를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마무리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단계적 비핵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대선 정국으로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파기하는 빅딜이 아니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운신의 폭이 좁기도 하다.
대신 미국은 방위비를 증강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거리미사일을 동아시아에 배치하겠다는 생각도 피력했다. 동맹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라는 공공재를 공동으로 생산하기 위해 동맹을 형성하지만, 동맹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정치의 과정이 계속된다. '너는 돈을 좀 덜 내는 것 아니냐'는 의무을 제기하는 무임승차론, '너를 따라가다 나까지 전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연루(entrapment)에 대한 우려, '너무 상대의 얘기를 안 들어주다가는 버림받는 것 아니냐'는 방기(abandonment)에 대한 걱정 등이 동맹당사국을 밀고당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무임승차론을 노골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또, 이란과의 핵합의를 버리고 스스로 유발한 호르무즈 위기에 한국을 개입시켜 연루를 심히 염려하게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탈냉전의 관문 역할을 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파기하면서 동아시아에 중거리 핵전력을 배치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쳐 더 깊은 연루에 대한 걱정도 유발하고 있다.
비핵화협상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의 남북관계 개선 조치 등에 대해서는 범범한 태도를 보이면서, 동맹정치에 몰두하고 국익확보에 진력하는 모습은 66년 동맹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신냉전시대 남방 삼각협력의 핵심당사국 일본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관찰하면서 현실주의가 말하는 '자조'를 새삼 천착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신(self)의 능력의 중요성을 새로이 실감하게 된다. 일본과 미국은 셀프가 크다. 그러니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면서 다른 나라를 압박하기도 한다.
'자조'를 위해서는 셀프를 충분히 키우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남과 북을 우리의 셀프로 묶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경제를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하는 세력도 있으니 왜 어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향점은 그쪽이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나아가 정치적으로 가까워지는 남북만이 셀프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길이고, 주변국의 퇴행과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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