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면 ‘선생님’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워낙 아기들을 잘 돌봐서 동네 꼬마들은 내차지였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배운 것들이 다 재밌어서 하교하면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 그대로 가르치곤 했다. 그걸 본 동네 어른들이 ‘넌 크면 선생이 되면 되겠구나’라며 부추겼고, 그래서 누군가 꿈을 물으면 ‘선생님’이라곤 답했다. 당시 교사는 같이 잘 놀고 잘 가르치는 사람이면 충분한 존재였으니까.
그러던 교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꾼 건 비정규직이 만들어지면서다. 다양한 고용형태의 교사가 생겨난 지 20년이 좀 넘었다. 요즘 기간제교사들은 ‘진짜 선생’이 아닌 양 취급받고 있다. 임금이나 휴가 등 처우를 정규교사와 다르게 차별해도, 그들이 실력이 없거나 일을 적게 하는 양 폄하되고 있다. 기간제교사는 1997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확대됐다.
'교육공무원법'에 ‘임시교사의 임용’ 조항에 ‘특정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하도록 필요가 있는 때’를 추가하면서 ‘기간제교원’이 확대됐다. 현재 기간제교사는 5만 명으로 전체 교원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 학교는 정규교사를 뽑아야할 자리에 비정규직인 기간제교사를 뽑았기 때문이다. 경력이 5년이 넘는 기간제교사는 51%나 되고, 저자처럼 10년이 넘는 사람들도 20%가 넘는다. 비용논리였지만 학교와 국가는 비용이 아니라 기간제교사의 실력 때문인 양 ‘이유 있는 차별’, ‘합리적인 차별’인양 책임을 기간제교사에게 떠넘겼다.
기간제교사가 겪는 차별과 인정투쟁
기간제교사들도 교사자격증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규교사처럼 담임도 맡고, 통지표 작성, 성적 처리, 생활기록부 작성 등의 일도 동일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기간제교사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쪼개기 계약을 하기도 한다. 임금도 방학 때는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파도 9일만 병가를 주고 성과급도 주지 않는다. 더 주는 것은 눈치와 업무다. 학교가 정규교사를 더 채용하거나 정규교사에게 수당을 지급하기 싫을 때, 기간제교사에게 재계약을 언급하며 수업을 더 할당한다. 동일업무지만 차등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각종 부당한 차별에 대해 기간제교사들은 소송하거나 국가인권위 진정 등으로 차별을 시정해왔다. 저자의 경험만이 아니라 동료 기간제교사들의 경험과 투쟁이 기록된 것이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기간제교사를 제외시켰다. 교원은 청년선호 일자리라 “사회적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핑계를 댔다. 논리적 현실적 근거 없이 ‘형평성’을 운운한 것이다. 정부나 일부 사람들이 기간제교사를 무자격자로 매도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임용고시’는 한참 후인 1991년에 생겨난 것으로, 50대 이상의 현직 교사들은 임용시험을 보지 않았다. 사립학교의 경우, 임용고시와 상관없이 정규교사로 채용할 수 있다. 임용고시는 교사의 자격을 묻는 유일 자격시험이거나 유일한 채용절차가 아니라는 뜻이다.
차별의 논리 알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간제교사들의 현실을 알게 된 계기는 세월호 참사다. 필자도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면서 고 김초원 선생의 아버님을 만나 기간제교사가 겪는 차별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교사 고 김초원, 고 이지혜 선생님은 기간제교사라 3년이 넘는 투쟁을 통해 순직인정이 되었다. 비참하게도 비정규직은 죽어서도 차별받은 것이다.
세월호참사 초기, 정부는 기간제교사는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공무원이지만, ‘교육연금법 시행령’에 전일제근무 공무원과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두 선생님들에 대한 순직처리를 거부했다. 법과 시행령이 모순되는 것도 기가 찬 일일 뿐더러,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기간제교사의 공무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무엇보다 시행령에 나왔듯이 기간제교사도 야근도 하며 전일 근무한다. 결국 여론에 못 이겨 정부는 순직처리를 하긴 했지만 모순된 시행령 조항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인사혁신처장이 인정하는 사람에 세월호 희생자를 포함시킨 것뿐이었다.
결국 비슷한 일로 기간제교사가 죽는다면 순직처리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 김초원, 고 이지혜교사는 사망보험금도 받지 못했다. 교사들에게 제공했던 맞춤형복지제도에 기간제교사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그 어떤 보험도 가입시키지 않고 기간제교사들은 세월호에 탑승시켰던 것이다. 살아서의 차별이 죽어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상 그렇듯 차별의 논리는 차별을 확산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의 여론몰이와 낙인으로 ‘차별이 당연한 일’로 변형되고 ‘차별 받는 자들의 삶을 왜곡’한다. 머리 위로 솟은 한낮의 태양이 사람의 키를 쪼그려놓고 형체조차 납작하게 만들 듯이, 차별은 사람들에게 불이익만이 아니라 자존감도 떨어뜨리고 공동체 성원으로부터 떼어 놓는다. 그런 세상이 조금이나마 변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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