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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구본무 잘못. 우리도 희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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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구본무 잘못. 우리도 희생자다"

LG카드 직원들의 '항변', 그리고 프레시안의 '회답'

LG카드 몇몇 직원들이 24일 오후 프레시안에 잇따라 항의전화를 해왔다. 항의의 이유인즉 은행에 돈 맡긴 고객돈 2조원을 정부 외압을 이용, 반강제로 자금 지원을 받은 LG카드가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한다며 5백명의 명예퇴직을 받으면서 10개월치 명퇴금을 지급하기로 한 점을 비판한 기사에 대한 반론이었다.

***"구본무가 원흉, 우리도 희생자"**

이들이 편 반론의 요지는 한결같이 다음과 같았다.

"우리 직원들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최대희생자다. LG카드 주가가 폭락하면서 우리가 입은 피해가 가장 크다. 우리사주를 주당 5만8천원씩에 강제로(?) 배정받았는데, 주가가 휴지값이 되면서 수천만원씩 손해를 봤다. 명퇴금 10개월치를 받아봤자 손해를 보는 셈이다."

"부실은행인 조흥은행이나 우리은행 합병때도 우리보다 많은 명퇴금을 받았다. 똑같은 거 아니냐. 왜 우리만 갖고 문제 삼냐."

"LG카드가 망한 게 왜 우리 잘못이냐, 구본무 잘못이지. 구본무 회장이 경영 잘못해 망해서 우리도 피해자인데, 왜 구본무만 비판하지 우리까지 비판하냐."

"대기업 다녀보면 시키는대로만 해야지 아무것도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다. 노조를 만들 수 있나, 평소 소신대로 주장을 펼 수 있나. 우리도 힘없는 희생자다."

대충 이런 요지의 반론이었다. 어떤 LG카드 여직원은 전화를 걸어 무조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만 하고 전화를 끊기도 했고, 어떤 남직원은 기자의 반론에 밀리자 역시 육두문자로 전화를 끝맺었다.

물론 전화를 건 직원들이 LG카드 전직원의 뜻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카드, 더 나아가선 LG그룹내에 이와 비슷한 기류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길 없다.

***LG카드 직원들에 대한 반론**

한 기업의 '수준'은 위기때 그 실체를 드러내는 법이다. 기업이 잘 나갈 때야 누구나 '유능하다'고 평가받고, '여유'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미국의 세계적 컨설팅그룹인 맥캔지로부터 수백억원을 주고 컨설팅을 받아 국내기업중 일선직원의 발언권이 가장 큰 '팀제'를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고 자부해온 LG그룹내 최대 금융계열사 LG카드 직원들이 드러낸 '직원 희생자론'은 LG카드, 더 나아가 LG그룹의 가려진 실체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들은 말한다. "모든 책임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있다"고.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틀린 말이기도 하다. 최대 책임은 구회장에게 있을지 모르나, 그 못지 않은 책임은 분명 LG카드 임직원들 몫이다.

대우사태의 여파로 2000년 경제상황이 불안해지자 정부는 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풀고, 카드사용액에 대해 소득세 감면을 해주는 등 본격적인 '플라스틱 버블' 양산에 나섰다. 정부의 '카드부양 메시지'를 읽은 카드사들은 일제히 카드회원 확장에 나섰다.

이때 카드사 직원들은 대학가나 길거리는 물론, 대형할인매장 등에 좌판을 설치해 놓고 오고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벌여 닥치는 대로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또한 수만명의 카드 모집인들을 내세워 건당 몇만원씩을 주면서까지 카드회원 유치에 열을 올렸다.

이때 국내외의 수많은 금융전문가들이 '묻지마 카드회원 확장'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나 오로지 사세 확장에만 관심이 있었을뿐이다. 카드업계 후발주자인 LG카드는 그 어느 카드사보다 회원숫자 확장에 공격적이었고, 그 결과 단기간에 은행-전업카드 모두를 통털어 랭킹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과연 이처럼 카드사들이 광풍에 휘말렸을 때 과연 LG카드 직원들이 '회사의 예정된 몰락'을 예상하면서도 그들 주장대로 '재벌기업의 독재적 분위기' 때문에 고위층에 직언을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성해볼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몇년간 기자가 만나본 은행-전업 카드사의 임직원들은 한결같이 '카드 환상'에 사로잡혀 리스크 헤징(위험회피 노력)을 도외시했었고, 지금 시장의 혹독한 시련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아울러 당시 주가보다 할인한 가격으로 주어진 직원특혜인 우리사주 공모시 큰 손실을 볼 것인줄 알면서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부득이 사들였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되집어볼 일이다.

이런 마당에 모든 책임을 재벌기업이라는 이유로 구본무 회장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비겁해보이는 일이며, 진정으로 이런 재벌총수의 횡포가 한국경제와 LG그룹의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다른 기업의 무수한 직원들처럼 잘릴 각오로 노조를 만들든지 할 일이다.

***지독한 모럴 해저드**

마지막으로 또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조흥은행이나 우리은행도 그랬는데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는 주장에 내포돼 있는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은 창간이래 조흥은행 사태 등이 발발할 때마다 일관되게 이같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이나 정부는 "사람을 짜르는데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선..."이라는 이유로 이를 관행화해 왔고, 그 결과 LG카드도 '형평론'을 들고 나오기에 이르른 것이다.

국민돈과 고객돈을 업수히 여겨온 정부당국이 초래한 한국금융의 병폐중 하나이자, 모럴 해저드의 일반화이다. 원칙없이 쉽게 쉽게 넘어가자는 식의 한국관료의 접근법이 한국금융 발전의 최대 걸림돌임을 이번 LG카드 직원들의 항변을 통해 다시 한번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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