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1992년부터 올해 초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간 가슴 아픈 역사를 알리고 일본에게 사죄을 요구하며 투쟁해 온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이다. 올해 2월 김복동 할머니는 망향의동산에 한 많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김복동'에는 그의 처절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김복동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며 감춰진 진실앞에 당당히 섰다. 이를 계기로 수 많은 아시아 피해 여성들에 용기를 냈다. 숨어지내야 했던 피해 여성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고 그들의 용기는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의 사죄를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는 김복동 할머니의 의지와 위안부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의 망언에 '내가 증인이다'라고 외치던 그의 처절한 목소리는 남은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김복동'은 단순히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세월이 흐르며 잊혀져 간 위안부 피해자들 모두의 슬픔이 담겨있다.
54명의 위안부 피해자 … 그들을 기억하는'법'
천안시 성거읍 망향의 동산 묘역과 봉안당에는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 54명이 안장 돼 있다. 위안부 피해자가 가장 많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사실을 최초 공개 증언한 날을 기억하며 이날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기념일 행사도 가졌다.
충남지역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아픔을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충남도는 지난 5월 30일 '충청남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공포하면서 법적 제도를 만들었다.
조례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인권증진을 위한 단체장의 책무와 기념사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교육·홍보 및 문화예술행사 등 기념사업 추진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천안시도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조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뜨겁다.
이미 147개 단체 및 기관, 1000여 명의 개인 성금과 시 지원금 등 1억 원 가까이 모금해 동남구 신부동 신부공원에 2015년 12월 높이 140㎝, 가로 180㎝ 크기의 '평화의 소녀상'도 세웠을 만큼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대한 시민들의 의지도 높다.
위안부 피해자 시민연대 관계자는 "아픔을 간직한 채 떠난, 그리고 남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를 받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사죄를 받을 때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잊지 않는 것이 우리가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사죄 할 때까지…'우리가 김복동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모인 천안평화나비시민연대와 천안아산 청소년평화나비는 14일 천안 신부동 소녀의 상 앞에 모여 친일청산과 과거사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내일 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이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의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이어 "일본은 일제시절 희생된 수많은 조선민중들에게 사죄는 커녕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결정을 이유로 우리나라에 경제전쟁을 선포했다"며 "역사앞에 사죄해야 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큰소리를 치는 통탄 할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천안평화 시민연대는 천안시민들과 함께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친일청산, 과거사 문제 해결이 이뤄질때까지 역사적인 투쟁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4일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끝까지 싸우겠다. 증거는 나다' 라고 외쳤지만 끝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떠난 김복동 할머니의 가슴 아픈 울림에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때까지 지치지 않겠다. 김복동은 나다'라는 국민들의 메아리가 곳곳에 울려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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