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 달아올랐다. 흠뻑 땀을 쏟았다. 러시아식 사우나, 반야에서 몸을 한껏 데웠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면 문을 박차고 나가 풍덩 호수로 뛰어들었다. 한여름 8월의 바이칼은 여전히 시리다. 차디 찬 물속을 첨벙첨벙 가르며 열기를 식힌다. 해가 져도 하얗디하얀 하늘에는 빠꼼 초승달이 걸렸다. 시베리아의 북극성도 투명하게 빛을 내기 시작한다. 지도에서 보노라면 바이칼은 길게 찢어진 몽골리안의 눈 꼬리처럼 생겼다. 영롱하고 초롱한 시베리아의 눈망울에서 헤엄치는 양 상쾌하고 산뜻하다. 그제야 천근만근 근심이 녹아들었다. 무지근하던 마음을 비로소 말끔하게 씻어내었다.
올 여름방학 모스크바행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본문에서 야심차게 예고하는바, 레닌도서관을 뒤져 북조선에서 발간된 <개벽신보>를 발굴하고 논문을 써보고자 하였다. 남한식 개화국가와 북조선식 척사국가와는 다른 제3의 길, 해방공간 재건된 청우당의 개벽국가 노선을 복원시켜보고 싶었다. 개화 좌·우파의 반목을 지나 개벽 좌·우파의 대연정으로 열어가는 앞으로 30년의 청사진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헌데 폐가식 도서관이라는 점이 복병이었다. 데이터베이스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료를 발품 들여 찾아낼 길이 원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손에 닿을 수 있는 자료는 1953년부터 1955년 사이 뿐이다. 혹시나 싶어 주밀하게 살폈으나 실망을 금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동학의 후예다운 기상과 기세를 한 치도 찾아보기 힘들다. 녹두꽃 개벽국가의 비전 또한 한 움큼도 없었다. 온통 김일성 만세요, 오로지 소련 만만세이다. 차마 더 읽어갈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읽어줄 수가 없었다. 탄성은커녕 탄식만 새어나왔다. 사흘 만에 발길을 싹 끊어버렸다.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북조선에서도 '다른 백년, 다시 개벽’의 기개는 결정적으로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훌훌 털어내기로 한다. 홀홀 흘려보낸다. 미련 또한 남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였다. 혼신을 기울였다. 1월 1일부터 6개월간 정과 성을 다 쏟아 생각을 익히고 문장을 다듬었다. 뜸을 오래 들인 책이다. 본디 <유라시아 견문> 3권의 머리말을 "개벽파 선언"으로 꾸리고자 했었다. 자그마치 1년이 넘도록 묵히고 삭힌 작업인 것이다. 아무리 쥐어 짜내도 써지지 않던 문장이 올해는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조성환 선생님과의 만남을 기폭제로 마침내 물꼬가 트인 것이다. '견문'에서 '선언'으로의 이행이 자연스러워졌다. 우연이었다. 인연이었다. 필연이었다. 운명이었다. 이 책의 제안은 내가 한 것이었으나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은 오롯이 조성환 선생님의 공이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또 다른 1년을 끙끙 앓으며 허송세월 했을지도 모른다. 두고두고 감사할 분이다.
돌아보면 지난 1년, 겹겹의 인과 연이 일파만파 블록체인처럼 엮이고 갈마들었다. 귀국 이후 처음 몸담게 된 원광대학교에서는 '동학쟁이' 박맹수 선생님이 총장이 되셨다. '다른백년'의 이래경 이사장은 기꺼이 연재 지면을 제공해 주셨다. '모시는 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셨다. 무엇보다 로드스꼴라와의 만남이 형질전환의 비등점이었다. 맑고 밝은 1020세대와 접속하면서 개벽파의 미래학교, '개벽학당' 또한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탁월한 청소년 교육가 김현아 선생님이 '미래인'들을 대거 몰고 와 주신 것이다. 마침 미래문명을 연구하는 여시재의 이광재 원장 또한 기운 좋은 터에 자리한 한옥 건물 대화당을 선뜻 빌려 주셨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 했던가, 일사천리 속속 진행되고 척척 해결된 일이다.
북방의 선선한 여름을 만끽하는 사이 한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100년 전 삼일혁명의 재연이라도 되는 양 일본과의 갈등이 첨예하게 폭발하는 모양새다. 먼발치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지긋이 조감해 본다. 단지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닐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서세동점의 끝물에 당도해서 벌어지는 분란이고 소란일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래 150년, 일본은 서구의 무의식적 대리인이었다. 주(主)가 아니요 종(從)이었을 따름이다. 그 종숙국가, 개화문명의 총아가 적폐의 정수임이 나날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진정한 극일이라 함은 일본보다 더 나은 개화국가가 되는 것이 아닐 터이다. 국력의 역전으로 해소될 사안 또한 아니라고 하겠다. 이럴 때일수록 민족주의적 정념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 이성에 회수되지 않는 지구적 영성의 계발이 절실하다.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대반전, 모시고 기르고 섬기는 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우리부터 솔선수범하여야 하겠다. 그로써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저 이웃나라에도 우정의 손길을 내밀어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당장 나부터 실행하려고 든다. 8월 말과 9월 초, 연달아 큐슈를 방문하여 '레이와 유신'을 도모하고 있는 일본의 개벽파들과 회합할 것이다. 지난 백년 문명개화는 각개약진 각자도생하였으나, 다른 백년 신문명개벽은 만국과 만인과 만물이 협동하며 상호진화하자고 설득하고 화합해갈 것이다.
<개벽파 선언>은 마흔을 넘긴 나에게도 획을 긋는 작업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과거를 발굴하고 탐구하는 역사학자에서 미래를 창조하고 탐험하는 미래학자로 거듭나려고 한다. '개벽파 미래학자'로서의 재출발과 새 출발이 설레고 든든한 까닭은 전적으로 벽청(개벽하는 청년)들의 존재 덕분이다. 그들로 말미암아 나는 생각과 생활을 결합하고 생명과 생산을 융합시키는 개벽학당의 당장 '로샤'(路思)가 될 수 있었다. 용맹한 시베리아의 호랑이를 닮은 개벽학당 1기 친구들에게 이 책을 드린다. 21세기는 오롯이 당신들의 것이며 온전히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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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EARTH+ 대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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