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동은 광주의 핫플레이스 가운데 하나이다. 이른바 뜨는 지역이다. 서울의 어떤 길을 빗대어(지금 그 길은 쇠퇴했지만) 동리단길이라 이름 붙인 카페거리가 즐비하다. 바로 5분 거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고 하늘마당엔 저녁이면 젊은 청춘 남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 일요일, 인근에 사는 친구에게 점심이나 먹자며 전화했더니 동명동에서 보자고 한다. 음식점도 맛이 괜찮고 커피숍도 분위기 있다고 말한다. 부부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일찌감치 시내로 나갔다. 산책 삼아 동명동을 한 바퀴 돌아볼 요량이었다. 지난해 전체를 눈여겨본 적이 있었던 터라 요즘은 얼마나 변했을까 싶어서였다.
1시간 쯤 먼저 도착해 문화전당 광장을 지나 동명동 길을 걸었다. 햇볕이 있었지만 바람이 산들거리고 구름도 제법 있어 걸어 다니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전당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주차장 한켠에 ‘광주여자고등학교 추억의 벽’이 있었다. 대나무 숲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하늘거리는 대나무를 보며 흰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찾았다.
서석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광주폴리 ‘아이 러브 스트리트’(THE I LOVE STREET)를 지났다. 아이들이 뜀뛰기를 하는 트램펄린이 3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가장자리 안전대가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노란 철제계단에 올라가 주변 공간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동명동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11시 반쯤 됐는데 한 외국인 가족이 벌써 점심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유행이어서 매운 떡볶이 집에는 서너 테이블에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테이크아웃 커피 두 잔을 시켜 거리를 걸었다. 곳곳에는 아직도 새로운 점포가 들어서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롭게 짓거나 완전히 탈바꿈한 곳도 있고 어떤 곳은 기존 건물을 그대로 살린 채 담장만 철거하고 내부분위기를 살린 곳도 있었다.
동명동은 옛날부터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인근에 형무소가 있었고 1971년 교도소가 옮기면서 70년대 이후 2층 양옥집들이 즐비하고 광주에서 방귀 깨나 끼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됐다. 그러다가 도시 확산으로 외곽에 아파트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옛 명성만 남은 채 쇠퇴한 동네가 됐다가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선 이후 다시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다.
친구 말에 따르면 핫플레이스가 맞기는 하지만 50~60대 나이를 가진 이들은 이곳을 다니면 안된다고 말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가게에 들어가면 ‘민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이 나빠지니 주인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라는 되새김을 했다.
그런데 친구 부부를 기다리는 동안 동명동을 돌아다녀본 소감은 ‘창피하다’였다. 내가 창피한 것이 아니라 요즘같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기간에 이곳을 찾았을 외국인들에게 창피하고 유명세를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부끄럽다는 것이다.
사거리 곳곳마다 쓰레기봉투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만이면 다행이겠지만 주변에는 1회용 테이크아웃 음료수잔은 물론이고 음식물쓰레기, 빈 박스, 스티로폼 등이 함께 그득했다. 더운 여름이라 냄새마저 풍겨 나왔다. 이 모습, 이 냄새에 누가 눈살을 찌뿌리지 않을손가.
사진을 찍어 신고하고 싶었지만 이런 일들이 하루 이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신고했을 것이고 평일이면 관할 지자체에서 치우기도 했겠지만 일요일이라 치우지 못했을 수도 있으려니 했다. 핫플레이스의 밤은 화려할지 모르겠지만 아침이면 쓰레기더미가 쌓이는 동명동을 생각하니 이곳은 ‘악플레이스’인 듯 싶었다.
광주시는 이곳에 일부러 돈 들여 문화마을을 만든다고 하니 걱정스럽다. 관에서 수억을 들여 이곳을 개발하면 이곳 커피숍이나 식당가만 좋은 일 시킬 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아침마다 청소를 하고 문화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프로그램 개발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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