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세종시 국민투표'를 시사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야당과 한나라당 내 친박 의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친이계 일부 의원도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친박 "헌정 질서 위기 불러올 수도"…민주 "몹쓸 결단"
박근혜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1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국회에서 정상적인 표 대결로 안될 것 같으니까 국민투표로 풀겠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국민투표 남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 만든 법을 국민투표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헌법 체계, 헌정 질서, 그리고 의회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고 위험한 시도"라며 "앞으로 전기요금 올리는 것도 국민투표로 하고 KBS 수신료 올리는 것도 국민투표로 할 것이냐"고 반발했다.
이 의원은 또 "얼굴 없는 청와대 인사가 이런 식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중대 결단 가능성'을 흘리기식으로 예고편을 날려 정치권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 불만을 표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몹쓸 결단"이라며 "이 대통령이 세종시 논란을 국민투표에 붙인다면 그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며 대통령의 헌법준수 의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변인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정권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것은 국민투표가 아니라 세종시 백지화 음모를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투표 가능할까?
그러나 정치권의 모든 논란과 별개로 국민투표는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대로 '결단'에 나설 경우 국민투표는 이뤄진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제는 세종시가 헌법에 규정된 국민투표 요건인 '국가 안위'와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당장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투표 방식에 대해서도 원안을 두고 찬반을 묻게 될지, 수정안을 두고 찬반을 묻게 될지 등 복잡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입법 절차를 밟지 않고 수정안을 발표한 후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붙일 경우 국회 무용론이 불거지는 등 정치권이 총체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심재철 의원, 차명진 의원 등 일부 친이계 강경파들이 "세종시는 수도를 분할하는 것인만큼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며 국민투표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같은 이유 때문에 친이계 내부에서도 국민투표에 부정적인 의원들이 많다.
한 친이계 의원은 "국민투표 주장하는 의원들의 말이 일리가 있긴 하지만 국민투표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친이계 안팎에서도 "세종시 국민투표가 정권 중간 평가 국민투표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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