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밟고 지나가 버리는 잡초 같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받은 상처는 어디에서 위로를 받으셨나요? 하루하루가 척박해서 감사 인사조차 마음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저를 위해서, 저희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평생을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 온라인 추모관에는 시민이 쓴 글이 빼곡했다. 추모집 크라우드펀딩은 3일 만에 목표금액(700만 원)을 달성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추모미술전시회에는 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추모학술토론회에서는 학자와 정치인이 모여 노회찬의 꿈을 되짚었다. 추모제와 추모문화공연에는 각각 1000여 명의 시민이 찾아왔다.
노회찬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일어난 일이다.
노회찬재단이 고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를 맞아 7월 15일부터 28일까지를 추모주간으로 설정하고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추모 행사는 추모미술전시회, 추모학술토론회, 추모집 발간, 추모제와 묘비제막식, 노회찬상 시상, 추모문화공연 등으로 구성됐다.
노회찬 서거 1주기 추모주간에 진행된 추모 행사
추모미술전시회는 '함께 꿈꾸는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7월 16일부터 7월 28일까지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다. 전시회에는 이동환, 이상엽 등 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회화, 조각, 비디오아트,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은 2500여 명에 달했다.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를 세세히 살피다가도 노회찬의 육성과 6411 버스 연설을 담은 1주기 추모영상 앞에 서면 눈물지었다.
전시회가 열린 장소가 전태일기념관이라는 사실은 각별하다. 노회찬이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선대본부장을 맡았을 때 쓴 일기를 모은 책 <힘내라 진달래>의 첫 문장은 "전태일의 영전에 바친다"였다. <힘내라 진달래>가 제13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을 때 노회찬은 "전태일의 이름이 들어간 상을 받게 되다니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라며 좋아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노회찬, 노동자 전태일을 만나다)
추모학술토론회는 '노회찬과 한국 정치: 현실 진단과 미래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7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기조 발제를 맡고,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의 발제문 발표를 했다. 이후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영국 정의당 의원,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들은 노회찬의 꿈을 '더 좋은 시장에서 더 나은 노동'으로 정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정당 정치의 힘을 키워, 민주주의가 더 튼튼히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삼성이 지배하는 사회, 노회찬 정신 이어가려면)
추모집 <그리운 사람 노회찬>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발간됐다. 추모집에는 시민의 추모 편지글을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전히 노회찬을 그리는 사람들의 글이 실렸다. 6월 18일부터 7월 14일까지 진행된 펀딩에 7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펀딩은 목표금액의 224% 모금 달성으로 마무리됐다.
7월 20일 오전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추모제와 묘비 제막식이 진행됐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1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노회찬 서거 1주기를 애도했다. 노회찬의 묘비 앞면에는 "노회찬"이라는 이름 석 자가, 뒷면에는 시인 장석이 짓고 캘리그래퍼 강병인이 쓴 "심장에 새겨 세우며"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유족인 김지선 씨는 인사말에서 "노회찬은 평생을 너무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마음과 신념은 너무 크고 유쾌하고 낙관적이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노회찬이 사는 동안 함께 가는 동지를 당신보다도 너무너무 사랑했다는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지었다.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인사말과 추도사를 남겼다. 배일동 명창은 묘비문을 주제로 판소리를 했다. 정가 가수 정마리와 베이시스트 신지용은 노회찬이 고등학생 때 작곡한 <소연가>를 연주했다.
추모제 당일 저녁에는 고려대에서 노회찬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노회찬상은 노회찬의 정의에 대한 신념과 행동을 기리기 위한 정의상과 약자의 권리를 지키고 확대해온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인권평등상 두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정의상은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판사 뒷조사 파일' 관리 등을 거부하며 판사직을 사직하고 이후 진상조사 과정에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실상을 밝히는데 기여한 이탄희 변호사가 수상했다. 인권평등상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김용균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수상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제1회 '노회찬 상'에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사법개혁 이탄희)
노회찬상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같은 장소에서 추모문화공연이 열렸다. 피아니스트 김재원, 4·16합창단 등 수많은 시민과 예술가, 음악가가 참석해 음악과 공연으로 노회찬을 추모했다. 노회찬은 생전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를 꿈꿨다. 음악을 사랑했던 노회찬은 실제로 수준급의 첼로 연주 실력을 갖고 있었고 오카리나도 곧잘 불었다.
진정으로 노회찬이 생환하는 길
노회찬 서거 1주기를 맞은 시민의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추모 행사를 주관한 노회찬재단의 후원회원 수다. 노회찬재단의 후원회원은 7월 10일 이후 1500여 명이 늘어 6000여 명이 되었다. 노회찬의 유지를 이어달라는 시민의 바람이 모인 결과였다. 정우성 배우, 이재웅 쏘카 대표 등도 재단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이재웅 대표는 "생전에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조승수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노회찬재단의 힘만으로는 추모주간을 이 정도 열기로 치러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조승수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어떻게 할지 어려웠는데 많은 분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제안해주시고 프로그램이나 전시 구성 등에도 참여해주셔서 추모주간다운 일을 할 수 있었다"며 "학자와 예술가는 물론 많은 시민이 각자가 노회찬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추모주간에 참여"한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밝혔다.
노회찬이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당부는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였다. 노회찬이 존경했던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환(生還)하는 것이다. 현재의 실천 속으로 생환된 역사만이 힘이 된다"라고 썼다.
추모 행사를 마무리한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이 당부한 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이를 통해 노회찬을 생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10월을 목표로 추진 중인 노회찬정치학교가 대표적이다. 조승수 사무총장은 "아무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제2, 제3의 노회찬을 길러낸다는 목표로 정치학교를 준비하고 있다"며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강사, 프로그램, 교재 등을 개발하고 보완해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정치학교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승수 사무총장은 노회찬상에 대해서도 "주변에서 받을 만한 분들이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노회찬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회찬상을 시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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