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자국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을 부인하는 내용의 공식 전문을 보낸 것으로 24일 확인되면서 앞서 러시아 측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힌 청와대의 섣부른 대응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반나절 만에 180도 다른 입장을 전한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혼선의 중심에 섰다.
윤도한 수석은 이날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러시아 측은 자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조종사들이 자국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방해했으며 안전을 위협하는 비전문적인 비행을 했다"며 러시아 측의 전문 내용을 전했다. 이어 "한국 공군 측이 향후 유사한 비행을 반복할 경우 러시아가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도 말했다.
윤 수석은 이에 대해 한국과 러시아 조종사 간 교신 음성 내용, 레이더 영상 등을 확보했다며, "침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니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밝혔다.
윤 수석은 불과 7시간 전인 오전 11시 경에는 같은 자리에서 정반대 내용의 브리핑을 했다. 러시아 측이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
윤 수석은 오전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 차석 무관이 전날 국방부 정책기획관에게 '러시아 국방부가 즉각적으로 조사에 착수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왔다"며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러시아 차석 무관이)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 국방부는 "기기 오작동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차석 무관의 입장이 러시아의 공식 입장인지에 대해선 "그 부분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무관의 개인 입장일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다.
국방부와 달리 청와대는 차석 무관의 발언을 러시아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였다. 정작 러시아 국방부가 전날 '객관적 비행 통제 자료에 따르면 외국 영공 침범은 허용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문을 낸 데 대해 윤 수석은 "공식 입장이 아닌 걸로 판단한다"고 했다. 그는 "방금 소개한 전문이나 러시아 무관의 입장이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러시아 측이 입장을 번복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외교경로를 통한 해명과 공식 전문 내용이 전혀 달라 이중플레이를 한 의심을 사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이 바뀐 이유에 대해 윤 수석은 "외교부나 국방부가 짐작하는 이유는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짐작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전문을 통해 "영공 침범이 아니"라고 밝힌 이상, 러시아 무관의 유감 표명은 개인 의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초유의 영공 침범 사태를 놓고 차석 무관의 입장을 무턱대고 러시아의 '공식 입장'으로 소개한 것은 섣부른 대응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윤 수석의 오후 브리핑 이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비판적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전날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청와대가 무관 이야기만 전한 것은 사건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청와대의 의도 때문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윤 수석은 "무관 입장은 공식입장"이라며 "전달할 만한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전 브리핑이 윤 수석 개인의 판단인지, 청와대 전체의 판단인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이어 '러시아 측 공식 입장이 바뀐 데 대해 책임을 물을 거냐'는 질문엔 "상대국 외교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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