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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민참여제도' 서울대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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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민참여제도' 서울대서 실험

학생들이 전자학생증 도입 타당성 직접 검토해

서울대에서 'S-카드'라는 일종의 전자학생증 도입 결정에 앞서, 학생들이 직접 도입 여부를 검토ㆍ판단하는 참여제도를 실시하기로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실시하는 참여제도인 '합의회의'는 이미 수년전부터 시민단체 등에서 그 도입을 주장해 왔으나, 정부가 외면해 왔던 것이다.

***전자학생증 타당성 학생들이 검토 후 판단**

서울대 본부와 총학생회는 오는 16~17일 이틀에 걸쳐 전자학생증 도입에 대한 합의회의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9일 오전 학생 패널 14명과 전문가 패널 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오늘 선정된 학생 패널들은 16일 오전부터 전자학생증에 관한 다양한 이해관계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패널로부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뒤, 두 차례의 내부 토론을 거쳐 17일 전자학생증 도입에 대한 학생 패널들의 최종 의견을 발표하게 된다.

현재 서울대에서 추진하고 있는 'S-카드'는 직불카드, 전자화폐, 교통카드 기능이 학생증과 통합된 것으로, 대학 본부와 업체들이 2000년부터 추진을 시도해 왔으나 일부 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3년째 합의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전자학생증 도입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학교 출입 통제 등으로 용도가 확장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이번 합의회의를 총학생회와 대학 본부에 최초로 제안한 이종민(26, 과학사과학철학협동과정 석사 과정)씨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장기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전자학생증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다수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서 "그 방편으로 일반 학생들에게 전자학생증에 관한 다양한 입장의 정보를 제공하고, 심사숙고와 토론을 거쳐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합의회의를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운용중인 공청회나 설문조사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고 덧붙였다.

합의회의에서 최종적으로 발표된 학생 패널들의 보고서는 교내 언론을 통해 일반 학생들에게 공개돼, 학생들이 전자학생증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또 이번 합의회의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서울대 본부도 "패널 선정의 공정성 등에 문제가 없다면 최종 결정에서 학생 패널들이 내놓을 최종 보고서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합의회의, 새로운 시민참여 제도**

합의회의는 주로 과학기술 영역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덴마크에서는 의회 산하의 기술평가국에서 1987년부터 1년에 한두 차례에 걸쳐 중요한 사안에 대한 합의회의를 개최해왔다. 국내에서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등이 준비해 1998년(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정성)과 1999년(생명복제 기술)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 개최된 합의회의는 새롭고 진지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과 정부ㆍ국회의 외면으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것은 합의회의를 10년 이상 해온 덴마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민간단체가 개최한 우리와는 달리 덴마크에서는 의회가 직접 주관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의회와 정부는 합의회의에서 나온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년이 넘게 시행되면서 지금까지 다뤄온 주제도 유전공학ㆍ인간 게놈 연구ㆍ대기 오염ㆍ불임 치료ㆍ소음 등 매우 다양하다. 또 언론들도 시민 패널과 전문가 패널들의 반복되는 질의ㆍ응답 과정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토론 후 나온 최종 보고서를 널리 알려 국민들이 입장을 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1989년에 열린 '인간 게놈 연구'에 관한 합의회의의 경우에는 시민 패널들이 최종 보고서에서 "고용 혹은 보험 등에서 유전자 검사의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이를 의회가 적극 검토해 1996년 법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시민들 합의회의로 정책 결정 주체로 거듭나"**

1998년과 1999년 합의회의 실무자로 참가한 한재각 참여연대 시민권리팀장은 "합의회의를통해 가장 놀랐던 것은 생명공학에 문외한이었던 일반 시민들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그 장단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하고, 균형 있는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충분한 정보만 제공된다면 시민들도 전문가들 못지않은 훌륭한 정책 결정의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재각 팀장은 "합의회의는 전문가들에게 특정 분야의 과학기술 등 본인의 자식을 비교적 정확하게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막연히 갖는 전문 분야에 대한 불필요한 편견을 없앨 수 있고,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관료들이 정책을 추진할 때 그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합의회의 같은 시민참여 제도가 전문가들이나 관료들에게도 오히려 득이 된다는 주장이다.

***"새만금ㆍ네이스ㆍ핵폐기장 문제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부재한 탓"**

많은 전문가들은 환경이나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 갈등이 첨예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번에 서울대에서 실시하는 합의회의를 정부나 의회가 정책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톨릭대 사회학과 이영희 교수는 "만약 합의회의 같은 제도를 통해 정책 결정 단계에서 '사회적 합의'를 모색했다면 새만금ㆍ네이스ㆍ핵폐기장과 같은 문제들은 상당 부분 사전에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은 전형적으로 결정ㆍ공포 후 밀어붙이는 식"이라면서 "이런 방식이 효율성 면에서는 나을지 몰라도 집행 과정의 사회 갈등 등을 고려한다면, 효과성 면에서는 오히려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참여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합의회의' 같은 시민참여 제도가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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